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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4일 08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4일 14시 12분 KST

부품 사회

gettyimagesbank

이대로라면, 시간 속에 완성되어지는 예술가까지 볼트와 너트가 될 것이다

최근 전해오는 한국의 뉴스 가운데에서 아직도 내 머리채를 놓지 않고 있는 뉴스는 기업도 미용실 운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그 탐욕의 진격이다. 식품의약품안정처는 이미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를 끝냈고 총선이 끝나면 바로 20대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2년 전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이 내게 웃음기 어린 눈으로 던졌던 그 농담이 떠올랐다.

"자, 이제 우리 현실을 볼까요? 오늘날 현대화된 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기술은 죄다 컴퓨터에 의해 접수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리해고 됐죠. 노동자들이 이런 농담을 하더군요. 곧 공장에는 두 종류의 살아 있는 생물만 고용될 거랍니다.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개. 사람은 개에게 밥을 줘야 하니까 고용된 거고, 개는 그 사람이 뭐라도 만지면 안되니까 지키라고 고용된 거죠."

이 말을 마치고 선생은 농담섞인 풍자라며 웃음 띤 제스추어를 보였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개밥 주는 노동자를 부러워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숙련된 귀한 손으로 대접받던 20세기 노동자의 신세가 처량해서다.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빠져나간 후 수많은 미국의 중년 노동자는 허무감에 사로잡혔다. 비록 새 일자리를 잡았지만, 자부심을 가졌던 기술을 자랑하기에는 일이 매우 단순해졌다. 남은 곳은 슈퍼마켓과 같은 서비스직뿐이었기에 줄어든 보수보다 씁쓸함이 커졌다. 정리해고 뒤 집단 우울의 거대한 쓰나미가 덮친 것이다.이는 한국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안희경 저, p.185-186)

1년 전, 한 의대에서 강연을 하며 위에 쓴 바우만의 농담을 들려줬다. 한 본과학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개밥 주는 사람도 고용할 필요없습니다. 기계로 프로그램해 놓으면 돼요."

강연을 마치고, 한참이 지나도 그의 말이 윙윙거렸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며 잡힌 두 가지 상념. 하나, 곧 의사가 될 그 청년은 부품이 되어버린 뛰어난 숙련 노동자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구나. 둘, 그는 아직 자신이 의사가 되어 살아갈 세상이 전문직에 마음만 잘 먹으면 사랑과 봉사 의료발전을 이룰 수 있던 20세기 말의 그때, 혹은 그보다는 좀 어렵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는 희망 속에 있구나. 청년 의학도는 삼성이 추진하는 원격진료 시스템이 자져올 '의사 전문직'의 부품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메르스 이후 그 진격은 더욱 현실화된다)

전문직의 영역이 규격화 계량화된다면 전문직일까?

내게 있어 그 어떤 분야보다 미용업계에 기업의 진출을 정부가 허용하려 한다는 뉴스는 분노를 일으킨다. 왜? 나는 미용실에 있는 디자이너들을, 아직 디자이너라 불리기 어려운 미용사까지도 예술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현대미술에는 개념 미술이 있어 수지연마(손의 내공)를 쌓지 않은 이들도 스타 작가로 떠오르지만, 헤어디자이너는 다르다. 투자한 시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경지가 있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미용업계란 어떤 곳인가? 그들 속엔 성공한 흙수저의 반격이 아직 있다. 입시경쟁, 사교육이 만드는 성적, 수리 언어 영역의 뇌만 알아주는 찌그러진 제도에 뺨이라도 찰싹 날려주는 통쾌함이 아파트 단지 상가마다, 골목 입구마다 버티고 있기 때문에... 난 그 영역이 자본의 힘으로 오염되는 것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