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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3일 10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23일 14시 12분 KST

콜트 파산에 얽힌 이야기들

1980년대 초반에 신형 소총인 M16A2의 군납에 성공한 콜트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접어든 민수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고 군납에 집중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1988년, 미 국방부는 M16A2소총의 납품 계약을 콜트사가 아닌 벨기에 총기업체인 FN사의 미국 지사에 넘겨버렸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콜트에게는 '야구 배트로 머리를 얻어맞는' 정도의 충격이었고, 어떻게 보면 이 때 콜트는 '이미 죽어버린'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6월 15일, 콜트는 챕터 11 파산보호신청을 제출했다. 쉽게 말해서 파산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180년 가까운 역사의 이 회사가 '망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사실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 부실 부문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지만 2천만 달러의 긴급 자금은 어떻게든 수혈받아 사업 자체는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매체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콜트사가 챕터 11을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992년에 이미 챕터 11에 돌입한 콜트는 사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불안정한 상태로 지내왔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콜트'라면 미국 최고의 총기업체처럼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군에서 오랫동안 쓰던 .45구경 권총이나 M16A1소총을 만든 곳이 콜트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 나라 언론에서도 마치 미국 총기산업의 '제국'이 무너진 것처럼 느끼고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과연 실상은 어떨까.

애당초 콜트가 미국 총기산업의 상징처럼 묘사되는 자체가 단순한 '이미지'의 산물일 뿐이다. 콜트는 2010년 기준으로 미국 총기회사 랭킹에서 20위에 머물렀다. 콜트의 2010년 생산량은 42,000정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1위인 스텀-루거(Sturm-Ruger)사의 90만정 이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탈리아와 브라질에 본사를 둔 베레타와 토러스사의 미국 공장들조차 콜트의 3배가 넘는 양을 뽑아냈다.

그래서인지 이번 파산신청 뉴스를 접한 미국 총기 애호가들은 '이름값만 믿고 바가지를 씌우던 중간규모 업체가 망했다'며 비아냥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미 미국 총기의 상징처럼 통하던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인 것이다.

(1873년에 나온, 콜트의 상징과도 같은 피스메이커 권총. 서부를 정복했다는 이 총이 콜트에서는 아직까지 판매되고 있다- 단 부품은 이탈리아제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현대의 콜트가 그만큼 팔 아이템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http://world.guns.ru/userfiles/images/handguns/usa/1287750278.jpg)

안일한 현실판단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안일한 현실판단'이었다.

콜트는 사실 1960년대부터 신제품 개발을 등한시했다. 1960년대 이 회사 최대의 히트 상품은 바로 M16소총이지만 정작 이 총을 개발한 곳은 캘리포니아에 본거지를 둔 중소기업 '아말라이트'였다. 콜트는 이 총의 권리를 사들여 약간의 개량을 했을 뿐인데 베트남 전쟁으로 특수를 맞아 '대박'이 터졌을 뿐이다.

문제는 이 대박이 경영진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몇백만 단위의 M16계열 소총 주문이 미국 정부에서 몰려오고 해외 수출도 활발하게 이뤄지자 다른 제품의 개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것이다.

특히 원래 이 회사의 주력상품이던 권총쪽을 등한시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미군이 1985년까지 주력 권총으로 쓰던 M1911A1, 즉 콜트 .45가 바로 콜트의 걸작이다. 그런데 이 총이 미군에 마지막으로 납품된 것은 1945년. 그 뒤로 콜트는 콜트 .45의 개량형 등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우려먹는' 수준에 만족했지 진정한 신제품 개발은 거의 하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콜트'라는 브랜드만으로 미국 민수시장에서 뭐든 제법 잘 팔 수 있었고, 또 군납이 워낙 짭짤하니 민수쪽에 신경을 쓸 여력도 적었던 것이다.

(1920년대부터 1985년까지 미군의 제식권총이던 M1911A1. 원형은 1911년에 개발된 M1911로, 이것까지 합치면 74년간 미군의 제식권총인 셈이다. 하지만 이 총의 생산 자체는 1945년에 끝났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3/M1911a1.jpg)

(현재 생산중인 콜트의 M1991A1. 콜트는 100년이 넘는 지금도 M1911(콜트 .45)의 개량형 외에 이렇다할 권총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http://www.colt.com/portals/0/productimages/2013/O2991_450w.jpg)

몰려오는 후폭풍

1980년대에 이런 안일한 판단의 후폭풍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1985년에 미군이 군용 권총을 콜트 .45에서 이탈리아에서 개발한 베레타 M9으로 바꾼 것은 직접적으로는 별 타격이 안됐다- 어차피 미군에 납품을 끝낸 지 40년이 지난 제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한 때 미군용 개인화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업체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권총 후보도 내놓지 못할 정도로 개발력이 떨어진 것이다. 물론 1960년대에 내린 안일한 판단이 그 바탕에 깔려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군납 시장보다 큰 미국 민수 총기시장에서 그대로 역풍을 맞았다.

1980년대에 미국은 경찰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탄창에 10발 이상 탄알이 들어가는 대용량 권총을 앞다퉈 찾았다. 그리고 경찰이 바뀌자 민수 시장도 그 흐름을 좇게 된다. 그런데 콜트는 이런 흐름에 거의 대응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실은 콜트는 이때부터 민수 시장을 거의 '버리기로' 했다. 1980년대 초반에 신형 소총인 M16A2의 군납에 성공한 콜트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접어든 민수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고 군납에 집중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때마침 이때는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 팽창으로 인해 베트남 전쟁 이후 축소 일변도를 걷던 미군이 다시 팽창하던 때다. 이런 상황에 신형 소총 납품에 성공했으니 이런 결정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다. 민수 시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의 신제품 개발도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소총 군납에만 거의 '올인'한 결정은 뜻하지 않은 역풍을 맞았다. 1985년부터 노조의 파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이 파업은 무려 5년이나 지속된다). 생산량도 당연히 떨어졌지만 품질관리는 더더욱 엉망이 됐고, 민수 시장에서도 판매고는 바닥을 쳤지만 진짜 문제는 군납이었다. 품질과 납기 모두가 엉망이 되자 콜트가 의지하던 최대 고객 미군이 '배신'해 버린 것이다.

1988년, 미 국방부는 M16A2소총의 납품 계약을 콜트사가 아닌 벨기에 총기업체인 FN사의 미국 지사에 넘겨버렸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콜트에게는 '야구 배트로 머리를 얻어맞는' 정도의 충격이었고, 어떻게 보면 이 때 콜트는 '이미 죽어버린'것일지도 모른다.

(M16소총은 1960년대부터 콜트사를 먹여살리는 효자상품이었다. http://www.hardscrabblefarm.com/images/vietnam/manual-of-arms/m16-26.jpg)

(M16A2소총을 사격하는 미 해병대원들. 1988년부터 콜트가 아닌 벨기에 FN사의 미국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http://www.militaryfactory.com/smallarms/imgs/colt-m16a2_7.jpg)

그 뒤의 콜트

1990년대에도 콜트는 민수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1992년에는 챕터 11, 즉 파산 보호신청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그나마 신형 소총인 M4카빈의 미군 납품을 1994년에 성사시키면서 완전히 망하는 것은 면했다. 게다가 2001년부터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군의 M4주문량이 급증했고, 2002년부터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오면서 콜트의 경영상태는 크게 호전됐다.

하지만 민수 시장에서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신제품 개발은 여전히 지지부진했고, 그나마 팔리는 아이템들은 이미 특허기간이 만료된 탓에 수십 곳의 경쟁 업체들이 '클론'을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이다. 곧 콜트 제품은 '개성도 없으면서 이름값만 비싼' 물건으로 통하게 됐다.

이 와중에 콜트는 빈축 살 일만 골라서 했다. 다른 업체들이 M4카빈을 모방한 제품을 내놓자 소송을 거듭한 것. 그러나 미국 법원은 M4라는 이름은 콜트가 소유한 상표가 아니라고 판결했고, 한 업체에 대해서는 소송 비용까지 물어주는 굴욕을 겪었다.

게다가 2009년부터는 미국 정부가 콜트 이외의 업체에도 M4카빈을 주문할 수 있게 됐고, 실제로 2013년에는 12만정의 M4카빈을 콜트가 아닌 다른 두 업체에 나눠 넘겨주게 된다. 콜트가 다른 업체들의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격으로 배짱을 부리다가 큰 코 다친 것이다.

결국 이 무렵부터 콜트는 경영 상태가 다시 악화됐다. 미 해병대가 2012년에 콜트로부터 12,000정의 권총을 주문한 정도로는 사태를 역전시키기 힘들 정도였다. 다급해진 콜트는 2009년 언저리부터 민수 시장에도 나름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랫동안 방치한 시장을 되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23년만에 또 다시 파산 보호신청을 내게 된 것이다.

(현재 미육군 주력 소총인 M4카빈과 액세서리. 콜트는 이 총의 납품도 2013년에 타 업체에게 빼았겼다. http://world.guns.ru/userfiles/images/assault/as17/m4sopmod.jpg)

이처럼 콜트는 이미 20여년 전에 한 번 파산한 전력이 있고, 그 뒤로 한 번도 과거에 누렸던 권위를 회복하기는커녕 근처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콜트의 파산을 두고 '미국에서 총의 시대가 끝났다'며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여기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총기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진작에 망할 회사가 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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