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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5일 06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5일 14시 12분 KST

미 대사 테러, 우습게 봐서는 안될 이유

외교관, 혹은 국빈이 직접 물리적 상해를 입는 사태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전쟁의 구실이 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외교관도 주요 국빈의 하나이고, 특히 대사는 실질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위 외교관이다. 이 때문에 외교관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상대국을 사실상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극도의 혐오를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사실 전쟁 중인 국가들조차 상대국 외교관에 대한 물리적 위해는 가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차 세계대전이다.

연합뉴스

오늘 아침,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칼을 든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해 부상을 입은 것이다.

벌써부터 이 사건을 진영논리로 감싸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등 좋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데, 외교관 테러라는 사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큰 문제다. 보통 외교관에 대해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은 전쟁 수준을 넘어 상대국가를 아예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한 국가에 대해 가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이자 테러이기 때문이다.

국빈에 대한 테러는 엄청난 외교적 결례

외교관, 혹은 국빈이 직접 물리적 상해를 입는 사태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전쟁의 구실이 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891년 일본에서 벌어진 오쓰 사건이었다.

1891년 5월 11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에게 경호원이던 경찰관이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황태자는 가벼운 부상을 입는데 그쳤지만, 당시만 해도 러시아와 대적할 힘이 없던 일본 정부는 그야말로 전쟁이라도 날까봐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비록 막판에 무기징역이 내려지기는 했으나 범인에 대해 일본 황족에 대한 범죄와 동등한 처벌을 내려 사형을 언도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정부는 물론 전 국민적으로 여기에 사죄하느라 애쓰는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비록 전쟁이나 배상 같은 마찰은 없었지만, 이것은 국빈에 대한 테러가 얼마나 큰 사태를 초래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외교관도 주요 국빈의 하나이고, 특히 대사는 실질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위 외교관이다. 이 때문에 외교관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상대국을 사실상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극도의 혐오를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전쟁 중인 나라들도 잘 안 하는 짓

사실 전쟁 중인 국가들조차 상대국 외교관에 대한 물리적 위해는 가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중 일본은 미국 및 영국 등 연합국에 대해 포로 학살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독일 역시 소련에 대해 인종청소를 자행할 정도로 극단적인 증오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주재 연합국 외교관들은 대부분 전쟁 개전 직후 중립국 함정을 통해 안전하게 귀국했고, 독일과 소련도 개전 직후 각각 외교관들을 안전하게 상대국으로 귀환시켰다.

물론 예외는 있다. 수년 전 리비아에서 미국 외교관이 테러 공격으로 살해당했고, 이란에서도 미국 대사관이 공격당해 직원들이 인질로 붙잡힌 일도 있었다. 미국 공관에 대한 테러행위도 지난 20여년간 드물지 않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국가가 아닌 테러단체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 대부분이고, 이란의 미국대사관 인질극 사건이 미국-이란 관계를 얼마나 오랫동안 악화시켰는지는 알만한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그냥 개인에 대한 폭행 정도로 치부될 사건이 아니다. 사람들이 진영을 떠나, 전쟁 반대라는 범인의 주장에 현혹되어 그의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옹호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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