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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2일 10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3일 14시 12분 KST

트럼프 당선, 단순히 한미동맹의 문제가 아니다

Lucas Jackson / Reuters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후보자 도널드 트럼프는 이단이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민주주의의 규범, 그리고 미국 예외주의로 치장된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지녀온 지구적 패권의 정통을 모조리 거부했다. 과연 대통령 트럼프는 후보자 트럼프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혹은 얼마나 '주류화'될 것인가? 대통령 트럼프가 몰고 올 변화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후보자 트럼프가 제시했던 '불구국가 미국'의 진실 혹은 그 반패권 담론의 충격과 당선자 트럼프의 행보를 따져보면, 대내외적으로 기존의 미국 민주주의와 패권질서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트럼프의 '불구국가론'이 짚어낸 미국의 문제

2015년 11월 출간된 『불구국가 미국』(Crippled America: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 Threshold Editions)은 트럼프의 대선 출사표이자 오바마정부의 국가건설과 패권재건 기획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오바마정부는 전임 부시정부로부터 이라크전쟁의 수렁과 대침체의 역사적 유제(遺制)를 승계하면서 출범하여, 군사적 개입을 자제하고 미국경제 재건 및 가치와 제도 측면에서 미국의 리더십 부활에 집중했다. 전후 미국 패권의 역사에서 보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이후 개입 자제로 선회한 아이젠하워와 닉슨 정부에 이은 제3의 축소전략이었다. 케네디와 레이건 정부의 팽창주의 정책이 이들 축소전략에 대한 반발이었던 반면, 트럼프의 불구국가론은 실제 실업률이 20퍼센트에 육박하고 이민과 난민, 테러리즘의 위협에 시달리는 '전혀 위대하지 않은 미국'의 진실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가리는 것은 위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자신의 갱생을 도모할 절실한 상황에 있는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거나 민주주의나 인권 등의 가치를 수출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반패권주의 선언이었다.

트럼프의 불구국가론은 미국사회의 세가지 문제를 읽어냈다. 구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병폐, 인구변동과 문화적·인종적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흑인 대통령 당선 이후 강화된 백인들의 반발, 그리고 이들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양당체제를 포함한 기성질서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트럼프의 불구국가론이 지니는 반패권적인 성격은 이후 미국 우선주의의 구호로 정리된다. 계기는 2016년 3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였다. 적대국뿐 아니라 동맹에 의해서도 미국이 피해를 입어왔다고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는 적극 동의했다. 전세계의 방어책임을 지면서 부채에 시달리고, 자유무역을 시행하면서 중국의 반칙과 부상을 허용하고, 중산층의 붕괴를 방관하는 기존의 패권정책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우선주의, 미국 우선주의, 백인 우선주의

이후 후보자 트럼프의 공세는 기성질서에 도전하는 독단적 리더십인 '트럼프 우선주의',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주의 패권에 반대하는 '미국 우선주의'로서 경제적 민족주의와 일방주의, 그리고 이민과 소수인종 급증에 대한 '백인 우선주의'의 토착주의적, 인종주의적 반발로 정립되었다. (정치적 올바름과 다문화주의로 보호되는)민주주의-패권-기성질서로부터의 반발도 격렬했다. 민주당은 7월 하순 전당대회 이후 트럼프의 자질과 품성에 대한 공격에 집중했다. 10월 초 그의 과거 성희롱 발언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수세에 몰리자, 트럼프는 10월 22일 게티즈버그연설에서 반이민·반테러 정책, 중산층 복원과 워싱턴 부패청산을 한층 강화한 취임 직후 정책구상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개인적 부덕보다 기성질서의 문제가 더 심각했다. 민주당의 패인은 트럼프의 자질과 품성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느라, 냉전 종식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지구화로 인한 미국사회의 병리현상, 즉 백인-미국 우선주의 축선이 동원해낸 (특히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계급의 절망과 분노에 주목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선자 트럼프는 기존 동맹의 가치를 재확인하기도 했지만, 일일 정보보고를 거부하고 트위터를 놓지 않으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에 반하는, 대만 총통과 통화하는 등 트럼프-미국 우선주의의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내각 인선은 소수의 충성파와 재계·군부의 인물을 대거 포섭하면서 워싱턴의 기성질서를 뒤흔드는 트럼프 우선주의의 면모가 보다 분명하다. 또한 12월 1일부터 17일에 걸쳐 중서부와 남부에서 이루어진 당선사례 유세에서는 주류 언론과 전문가, 클린턴 진영에 대한 조롱과 함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천명한 트럼프-백인-미국 우선주의 정책공약의 실천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한미동맹 차원을 넘어 새로운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

트럼프의 도전은 단순히 한미동맹 재조정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미 2009년 이래 한국의 보수가 다짐해온 안보는 물론 경제와 가치의 측면에서도 미국과 일체화되는 전략동맹의 기조는 무너졌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가치를 수출한다거나 자유무역의 관리자가 되려는 의지가 없다. 게다가 국제질서의 관리자라는 미국의 신뢰성이 아니라, 적이든 동맹이든 상대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의 기술, 특히 협상의 판 자체를 깰 수도 있다는 예측 불가능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당선자 트럼프가 구체화하고 있는 반중노선도 문제다. 탄핵 정국에 가려져 있지만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한 긴장에 더해서 미중의 무역전쟁이 현실화된다면,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과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의 정상 상태는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현재의 촛불/탄핵 정국은 박정희와 박근혜 시대를 넘어, 한국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