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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7일 05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7일 14시 12분 KST

디자인 세금 도둑을 잡아라

또 걸렸다. 이번 장소는 서산시다. 디자인의 탈을 쓰고 세금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세금 도둑이 출몰 5일 만에 잡혔다. 검거에 결정적인 물증을 제시한 주인공은 페이스북, 또 SNS다.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0월 20일 서산시는 제 2청사 회의실에서 여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산시 상징물위원회를 열고 10월 15일 선정 발표한 서산시 통합 브랜드인 '해뜨는 서산'의 브랜딩 디자인을 전격 무효 처리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에 빛이 퍼지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는 게 용의자의 주장. 물론 다양한 색의 곡면과 원이 방사형으로 흩어지는 로고를 보면 그 콘셉트에 능히 수긍이 가지만 문제는 독창성이 생명인 브랜딩에서 이 심볼마크가 2011년부터 이스라엘에서 열리고 있는 음악 축제 '썬비트 페스티벌(Sunbeat Festival)의 그것과 색상 차이만 있을 뿐 외형에서 거의 동일하다는 신고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SNS에 접수된 것이다. 표절 유무의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내리기 힘든 시각물을 대상으로 특허관련 전문가 왈 "80% 이상 유사한터라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니 항변의 작은 틈도 원천봉쇄 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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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걸 평범한 세금 도둑으로 치자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서산시와 브랜딩 제작 용역 계약을 맺은 곳이 일반 업체가 아니라 준정부기관인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이다. 지난 1970년 디자인 진흥을 위해 세워진 KIDP는 자타공인 한국의 디자인 진흥 정책을 총괄하는 K-디자인의 사령탑이다. 디자인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데 전념해도 시간과 예산이 부족할 텐데 왜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 기관은 서산시의 브랜딩 디자인을 맡은 '용역업체'가 된 것일까.

더 이해하기 힘든 점은 실제 9000만원에 수주해서 전문 회사에는 8000만원에 재용역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럼 중간에 붕 뜬 1000만원은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말이더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준정부기관에게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컨설팅 비용인 걸까.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지자체에게 '믿을 만한' 전문 회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종의 유통 마진인걸까. KIDP보다 나이 어린 나는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일지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 브랜딩 개발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됐다. 늘 시간에 쫒겨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기 벅찬 전문업체의 열악한 상황은 워낙 잘 알려져 있는데 이번 경우는 외국 유수의 사례에 견주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수준의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뜨는 서산'이란 마스크를 쓴 머리 부분만 빼고 몸뚱아리 전부를 다 외국에서 불법으로 훔쳐왔다는 점에 넋이 나간다.

이런 세금 누수의 현장에서 KIDP의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외 상표등록 가능성 조사에서 문제가 된 로고 디자인을 발견하지 못해 물의를 일으켰다. 디자인이 유사한 것은 인정하나 표절 및 모방한 것은 절대 아니다." 80% 이상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로고를 1년 동안 찾아내지 못한 것은 무능력으로 간주해야 하나, 아니면 리서치의 어려움으로 이해해야 하나. 참고로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물증이 SNS에서 나왔다는 걸 잊지 말자. 브랜딩 전문 사이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소통을 도와주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인 페이스북이다. 그것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이라면 응당 고소전이라도 벌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당사자들은 무척 평화로워보이는 게 가장 기이하다면 기이한 일이다. KIDP 관계자는 "디자인에 대한 유사성이 있는 만큼 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여 디자인 개발 초기단계부터 다시 추진하여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시 관계자는 "다행히 디자인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견돼 다시 추진키로 한 만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 세심히 챙겨달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고.

과연 1년 후에는 새로운 서산의 브랜딩이 우리 앞에 당당히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어쩌면 해가 서쪽에서 반짝이며 떠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서도 아무쪼록 디자인 세금 도둑의 갱생이 멋지게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다만 SNS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24시간 요주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은 명심하길. '이번이 유달리 재수 없는다'는 말은 이제 변명 거리의 부스러기도 안 되니까 말이다. 남의 돈 공으로 먹기가 어디 쉽나요. 제발 꿈 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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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5년 11월호 'INSIGHT'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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