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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4일 09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4일 14시 12분 KST

명조체와 고딕체는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는 온통 글자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한번 생각해보라. 길바닥에 뿌려진 브로슈어, 거리의 간판부터 지식을 전달하는 책, 스크린 속의 뉴스까지 과연 글자의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는지. 무엇보다 입으로 옹알대는 언어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글자야말로 우리가 적을 둔 물질 세계의 시각 문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글자인 한글을 세상에 구현한 가장 대표적인 서체인 명조체와 고딕체의 연원에 대해서 스스로 과연 얼마나 알고 있던가. 디자이너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개탄할 일이다. 지난 10월 9일 한글날 막을 올린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전>은 가장 친숙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련 정보는 극히 빈약한 '국민 글꼴' 명조체와 고딕체를 탄생시킨 주인공, 故 최정호 선생(1916~1988)의 발자취를 좇는 첫 단독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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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설계 중인 최정호 선생(『마당』, 1981년 10월호)

최정호 선생은 1950년대부터 민간 최초의 원도 활자인 '동아 출판사', '삼화인쇄' 활자체를 만들며 수많은 문학 전집과 백과사전을 제대로 된 한글로 구현한 장본인이었다. 그의 전성기는 사진식자 시대가 열린 1970년대. 일본의 양대 사진식자 업체인 샤켄과 모리사와는 한국에 기계를 팔기 위해 당대 최고의 활자 전문가인 최정호 선생에게 한글 서체의 원도를 앞다퉈 의뢰했다. 지금 눈으로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은 그의 사진식자체 일부가 1980년대 말 디지털 글꼴 시대의 개막에 맞춰 명조체와 고딕체의 기본 골격이 되면서 우리에겐 공기처럼 친숙한 한글 서체의 전형이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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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동아출판사체로 인쇄된 지면, [세계문학전집] 중 '펠릭스 크룰의 고백', (동아출판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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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체 모리사와 원도 모음, (주)모리사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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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설계 중인 최정호 선생 (『한국인』, 1986년 10월호)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선생이 작업한 다양한 사진식자체 원도 영인본과 더불어 말년에 심혈을 기울인 '최정호체' 원도와 사후 발견된 '초특태고딕'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다. 특히 현재 ag 타이포그라피 연구소에서 디지털 서체화를 진행 중인 최정호체와 초특태고딕을 재료 삼아 선생의 어록을 시각화한 디자이너 10명의 포스터도 함께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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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특태고딕 1985,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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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체(1988),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안상수 소장

최정호 선생이 활약했던 시대만 하더라도 한글 서체를 만드는 일은 디자인의 영역 밖의 일로 치부되곤 했다. 선생 자신도 '원도 설계가'란 단어로 자기 일을 정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명조와 고딕체 이후 수많은 한글 서체가 출시되면서 이제 타이포그래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 대중도 자신이 좋아하는 한글 서체 이름을 몇 개쯤은 아는 시대가 됐다. 그러기까지 척박하기 이르기 없던 한글 글꼴 계에서 '뿌리 깊은 나무'로 기능한 것이 바로 최정호 선생의 작업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대중의 눈까지 오롯이 혼자 감당했으니 말이다.

전시는 파주 출판 단지 내 안그라픽스 사옥 1층 '갤러리 16시'에서 11월 8일까지 계속된다. 최정호라는 이름에 가슴이 찡한 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 모두에게 뜻깊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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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선생의 원도 제작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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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활자 서체 연구소(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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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전

기간 2015년 10월 9일 - 2015년 11월 8일

장소 안그라픽스 파주 사옥 1층 '갤러리 16시'

입장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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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5년 11월호 'EXHIBITION'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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