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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9일 10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9일 14시 12분 KST

[인터뷰]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의 임흥순 작가

올해로 120년 역사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 행사다. 홀수년에는 미술전이, 짝수년에는 건축전이 열리는데 작년 건축전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큰 화제를 뿌린 바 있다. 올해 미술전에서는 아시아 여성의 노동 문제를 소재로 만든 95분짜리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이 은사자상을 받으며 또 한 번 화제를 낳았다. 지금까지 국가관 전시에 참여한 전수천(1995), 강익중(1997), 이불(1999)이 특별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총감독이 초청해야 참여할 수 있는 본전시에서 수상한 경우는 한국 예술계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상을 받은 당사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8월 극장 개봉까지 시작한 <위로공단>의 아티스트, 임흥순에게 슬며시 대화를 청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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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PROFILE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노동자로 살아 온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치·사회·국가·자본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여러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품은 사회·정치적으로, 때론 감성적으로 사진, 설치미술, 공공미술, 커뮤니티아트, 영화 등 다양한 시각매체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2002, 2004, 2010), Dutch-Korea Contemporary Art: FACING KOREA, Media Art Center Montevideo, Amsterdam (2003), Aarhus Festival of Contemporary: Minority Report, Aarhus Museum, Denmark (2004), ​TV 코뮨, 백남준아트센터, 용인(2011), 샤르자비엔날레, UAE (2015), MoMa ps1(2015), 베니스비엔날레(2015) 등 국내외에 작품이 소개되었다. 최근 <비념>(2012), <위로공단>(2014/2015) 두 편의 실험적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 과정 속에 사라지고 왜곡된 공동체, 개인, 여성, 노동에 관한 작품을 선보였다. 현재 아시아, 전쟁, 여성을 키워드로 세 번째 장편영화 프로젝트 <환생>를 진행하고 있다.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정식 개봉까지 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세계 미술의 중심에서 전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랐기 때문에 수상으로 이어지리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어요.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위로공단>의 성공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아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이후에도 다른 작업을 계속 진행했거든요. 지금 일본국립신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요. 그래서인지 <위로공단>에만 묶이는 게 마냥 좋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위로공단>의 완성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드는 데 최소 2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과거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여공 분들을 인터뷰한 게 2011년 11월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제 첫 영화인 <비념>에 집중하면서 중간중간 신경쓰다가 2013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재개해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으로 선보였죠. 베니스 비엔날레 버전은 손을 좀 많이 댔는데 사실 이 것도 최종본이 아니에요. 극장판에 미세한 톤 조절과 크레딧 수정을 했거든요. 제게 완성이란 단어는 약간 먼 개념인 것 같아요. <비념>조차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 풀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른 전시에 알맞는 방식으로 다시 보여주기도 해요. 최대한 가능할 때까지 계속 건드리는 거죠. 작업의 목표는 작품의 완성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거라고 생각해요.

          회화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영화로 장르를 바꾸셨는데요.

처음 활동을 할 때부터 리서치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을 했어요. 기술의 발달로 영상 작업의 접근성과 활용도, 편집의 용이성이 높아지면서 영상이 현실 사회의 문제를 말하는 데 힘이 있다고 믿게 됐죠. 그러다가 촬영이나 후반 작업을 전문가가 분담하는 영화 시스템을 접한 후에는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있는 사람들만 미술을 하는 게 아니라 없는 사람들도 제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미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기에 영화의 대중성 또한 무시 못할 장점으로 다가오더군요. 영화를 하면서 지금까지 작업하며 얻은 경험과 실패의 과정이 자연스럽고 포괄적으로 녹아들어갔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활동과 미술, 2000년대 후반 임대아파트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작업할 때는 복지와 미술, 지금은 영화와 미술을 다루죠. 미술관과 현실 공간, 극장 등 공간이 계속 바뀌면서 그 경계에서 파생된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아요.

          그럼 스스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자신을 규정하는 건 피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감독이라고 부르면 감독이 되고, 작가로 부르면 작가가 되는 것 같아요. 10여 년 전에는 영상의 매력, 장점, 대중매체로서의 특성을 활용하는 작업을 주로 했죠. 즉 영상작가였어요. 물론 지금도 영상작가일 수 있겠죠. 근데 저는 커뮤니티 아트도 하거든요. 이럴 땐 커뮤니티 아티스트 아닌가요? 결국 스스로 정의하는 것보단 보는 사람에게 맡기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의를 내리면 상상력과 생각의 틀이 좁아져요. 그래서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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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공단>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의 의미, 노동의 의미에 대해 혼자 정의내리기보단 많은 사람을 만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지금 시대에 '노동'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멀어져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 의미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사실 노동에서 여성 노동은 소외돼있거나 혹은 신화화된 대상이에요. 일종의 화석화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여성 노동사 연대기를 만드는 게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전작인 <비념>이나 이번 <위로공단>에서 왜 여성에 천착하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이유은 간단합니다. 사랑하거든요. 그 애정의 원천은 가족 같아요. 어머니, 형수님, 여동생 말이죠. 아버지나 형님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정신적인 지지와 애정이 있습니다. 제가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보통의 삶을 살지 않는데에 대한 미안함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지난 10년 간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위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단순히 가족에 국한하지 않고 함께 시간을 공유했던 사회적인, 공적인 존재들에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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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의 영감을 가까운 곳에서 얻으시는 느낌이 들어요.

제 작업은 항상 눈에 보이고 느낄 수 있는 주변에서 영감을 받아요. 제가 서있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 실제로 보고 느끼는 걸 좋아해요. 상상력이 부족하달까요.(웃음) 구체적인 현실, 피부에 닿고 부딛치는 게 끌리는 거죠. 첫 인터뷰가 구로공단을 다룬 이유도 제가 그때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해있었기 때문이에요. 옛날 그 자리에 있던 구로공단은 어떻게 변했고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알고 싶었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죠. 이번 <위로공단>에서 다루는 '노동'은 가족과도 밀접히 연결돼 있어요. 어머니는 공장에서 40년 동안 일을 하셨고 형수님은 전화 교환원에서 지금은 보험 설계사로, 동생은 마트 직원으로 일해요. 아버지는 철공소에서 일하시다 손도 다치셨고 지금은 일을 못하시죠. 어쩌면 사회 입장에서는 흩어지는 먼지처럼 느낄지도요. 이런 비슷한 환경에 처한 분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내면을 보고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끄집어내면서 훈련되지 않은 그들의 고백을 제 상상력으로 재해석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불안과 고통의 심리를 대신 이야기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이 얘기가 전부가 될 순 없어요.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게 훨씬 더 많으니까요. 저는 단지 어둠의 상상을 해보는 것 뿐이죠. 제가 지금까지 배우고 해오던 게 미술이라 그런지, 작업이 삶의 일부, 제 자체가 된 느낌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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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한 시적 다큐멘터리'라는 평가가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영화에서 나오는 퍼포먼스 영상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면서 압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느낌인데요.

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자매애와 자연을 들 수 있습니다. 산업과 기계와 대비되는, 여성성과 따뜻함의 상징이죠. 퍼포먼스 장면은 인터뷰하며 느낀 감정을 이미지로 풀어낸 결과물이에요. 예를 들어 메인 포스터에 나오는 천을 뒤집어 쓴 두 소녀의 모습은 통풍시설이 미약하던 옛 봉제공장 이야기를 들은 후 죽은 사람을 염하는 상상에서 비롯된 건데요. 폐에 쌓이는 검은 먼지와 소음을 흰 색 천으로 가려주면서 우리가 묻어두고 터부시하고 버려두고 관심을 가지지 않던 잃어버린 사회 이야기를 은유하고 있어요. 대숲에서 눈 가리고 뛰어다니는 건 일종의 놀이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공간에서 도망치는 행위가 합쳐진 거에요. 콘크리트 바닥과 비닐봉지를 돌아다니는 개미 영상은 구로 공단 인터뷰이의 꿈 얘기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꿈에서 노조를 만들고 일기를 쓰던 주인공 앞에 경찰이 들이닥치는데 일기장을 숨길 곳이 없었데요. 사방이 모두 콘크리트였거든요. 이 말을 듣고 1960년대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변하는 정서가 생각나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일하는 느낌도 받았고요. 비닐봉지는 시위 현장에서 농성하는 분들이 깔개나 담요 대신 덮고 주무시는 장면에서 착안했어요. 이 정도만 알려드리고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는 게 좋겠네요,(웃음) 대신 한 장면도 쓸데 없는 장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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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노사문제에서 특히 사 측의 문제점을 고발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사측을 비난하기 보단 여성 노동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며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무지, 무관심, 대중에게 던지는 질문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죠. 사건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면서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되는지에 대해서요. 사실 <위로공단>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노사 문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데요. 똑같은 질문에 계속 대답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만큼 사람들에게 더 자주, 많이 알려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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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위로공단>을 꼭 접했으면 하는 특정 관객층이 있나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만들고 나니 20대가 생각났어요. 인생에 다리가 있다면 20대는 시작점이잖아요. 동일방직에서 일하시던 분은 이제 70세가 넘으셨는데요. 자신들이 건너온 인생의 다리를 이제 젊은 세대가 어떻게 건널지 걱정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과거의 노동을 얘기하는 게 꼭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자는 의미에 국한시키기 보다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꼭 보고 질문을 던저봤으면 좋겠다는 애뜻한 감정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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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콕 찍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타이밍은 이제 지나간 것 같아요. 뭐라고 해야할까...뭔가 채우고 욕심내기보다 본격적으로 비워내는 인생이 끌려요. 단순한 욕망과 물질은 이제 무의미한 것 같아요. 남에게 더 시선을 주고 고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단적으로 정의내리기엔 질문이 너무 어렵네요.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게 제 매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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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사람들의 눈물, 분노, 감동의 이야기를 생생한 인터뷰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풀어낸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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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5년 09월호 'PEOPLE'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www.c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