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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2일 07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2일 14시 12분 KST

디자이너 제 머리 깎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불교로 귀의하는 사람의 머리를 깎는 데 선수인 스님이 막상 자기 머리는 제대로 못 깎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일컬는 말이다. 예전만 해도 스님이 머리를 깎을 때는 전용 기구가 있었다. 번뇌를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잘라내는 그 칼은 삭도(削刀)라 불렀다. 나무로 된 칼집과 놋쇠로 된 칼몸을 금속으로 연결해서 사용했는데 그 무게가 상당했단다. 그래서 혼자 머리를 단정히 할 때 유혈 사태가 종종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이제 삭도는 면도기가 대체했고 전처럼 제 머리 못 깎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맥락으로 위 속담의 인기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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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시작됐다.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그래픽 디자인 기획전인 <交, 향(Graphic Symphonia)>이다. 이제 미술관에 디자인이 들어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디자인 전문관이 아니라 일반 예술을 다루는 기획관에서 디자인을 전시의 주체로 삼은 것은 유례가 없던 터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 한일 양국의 1세대 디자이너 작업부터 시작해 총 100여 명, 4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는 기대한 것보다 실망이 더 컸다. 디자이너와 작품의 선정 과정에 대한 어떤 기준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 말 그대로 '구경'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확한 섹션 구분 없이 펼쳐져 있는 책들과 벽이 걸린 포스터 풍경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와 의도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 때 즐길 수 있는 건 작업 스스로 풍기는 아우라와 이를 배치한 디스플레이 감각에 한정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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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디스플레이가 문제였다. 액자 뒤에 닌자처럼 숨어 있어야 할 흰색 테이프는 검은 벽 덕분에 제 존재감을 명징하게 뽐냈고 자석으로 고정한 포스터들은 판판한 제 모양에서 벗어나 곡선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게다가 관람객을 위한 정보 체계는 거의 무너진 상태였다. 전시장 안내도는 온데간데 없었으며 구석마다 숨겨진 사이니지는 기억력 좋은 사람만 편애하고 있었다. 나만 해도 포스터 정보를 확인하려고 몇 번씩 몸을 움직여야 했다. 평상에 배치한 책들은 어디까지가 누구의 작품인지 구별하기 힘들었고 일본 디자이너 작품 정보는 영어와 일어로 써있어서 마치 외국어 테스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한 마디로, 정보 체계는 불편하고 그 전달력이 떨어졌으며 기본적인 작품 고정도 안 된 상태에서 마감마저 깔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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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놀란 부분은 이런 슬픈 풍경이야말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수많은 디자이너가 평소라면 결코 넘어가지 않고 '버럭' 했을 모습이라는 점이다. 전시를 전시답게 만들어주고 관람객과 작품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디스플레이야말로 디자이너가 늘 두 눈 부릅뜨고 치밀할 정도로 신경 쓰는 완전무결함의 세계 아니던가. 클라이언트에게 소통과 디테일의 중요성을 매일 같이 강조했을 그들이 막상 제 작품을 전시할 때 이리 허점투성이였을 줄이야. 이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늘 챙기는 기본적인 덕목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른 전시장에서 이런 문제점은 완벽히 거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위해 '중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존재하는 걸까.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그 옛날 스님들은 다른 이가 깎아주면 안전할 텐데 왜 굳이 스스로 하다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을까. 그건 아마 스님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 아니었을까. 내 일을 스스로, 제대로 하겠다는 수행자의 자존심 말이다. 디자이너는 면도기가 삭도를 대신하는 혁신 그 이상의 변화를 겪어왔다. 손으로 일일히 작업하던 1세대 디자이너에 비해 지금의 작업 환경과 재료의 변천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러나 이번 전시의 모습은 지난 수십 년간 발전한 단면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물론 이것저것 눈에 거슬리는 것을 잡아내는 데 선수인 디자이너가 제 눈의 티클을 찾기 어려운 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작업이 국립 미술관에 걸리는 역사적인 시점까지 그 상황을 지속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이건 디자이너가 매일 부르짓던 디자인의 중요성을 스스로 망가트린 직무유기다.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미술관에 들어온 사실에 미소만 짓는다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thedesigncrac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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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5년 09월호 'INSIGHT'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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