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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4일 12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4일 14시 12분 KST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라는 유령

우리나라에서 '파트너'는 갑-을 관계의 부정적인 면을 덮는 멋진 가면으로 전용해 쓰이곤 한다. 특히 갑-을 관계의 폐해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창작 직군의 경우는 환상적인 수준이다. 예컨대 디자인 기업의 회사 소개서를 보면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란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디자인 회사엔 '용역'을 따는 느낌이 없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전문 지식을 '가르침 받는' 기분도 없으며 요즘 세상이 환장하는 단어인 '크리에이티브'까지 더해졌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조합인가.

전종현

요즘처럼 소위 '갑-을'관계가 대형 이슈로 올라온 적이 있던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 요원을 무릎 꿇리고 폭행한 일명 '백화점 모녀', 선친의 회사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땅콩(실은 마카다미아 너트)의 포장을 뜯지 않고 서빙했다는 이유로 폭언과 함께 출항 중인 비행기를 유턴시켜 고객 안전을 책임지는 사무장을 내리게 한 '땅콩 회항' 등 서비스 직종에서 감정 노동을 하는 직업적 약자가 당한 처참함에 아랑곳하지 않은 이들의 행태는 '갑'이라는 호칭으로 묶여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기업-중소기업, 기업-대리점 등 경제적인 도식에 머물던 갑-을 관계가 개인 대 개인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갑-을 관계의 도식을 파괴하기 위해 지금껏 여러 방법이 제안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근원까지 가보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회사와 개인 차원에서 형성된 이중 철망은 매우 촘촘한지라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갑-을 관계가 사라지기란 요원해 보인다. 대신 갑과 을이란 지칭을 바꾸는 표피적인 해결책의 일환으로 언제부턴가 특정 단어가 공공연하게 장려되기 시작했다. 바로 '파트너(partner)'다.

파트너의 어원은 중세 앵글로-프랑스어인 '파스너(parcener)'로 그 의미는 '공동 상속자'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몫(portion)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르티툐넴(partitionem)'까지 닿는데 결국 파트너의 본질적인 의미는 어떤 부산물에 대한 소유 권한이다. 예컨대 법무, 회계, 금융 법인에서 승진의 끝은 법인의 잉여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 아니던가? 이런 모델을 차용한 글로벌 디자인 회사, 펜타그램은 실제 매년 정기적으로 파트너 모임을 주최해 그해의 이익을 동등하게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파트너는 사회적인 의미로 넘어가면 혼인 관계는 비록 아닐지라도 그 법률적 효력이 동등한 반려인을 지칭한다. 결국, 서로 긴밀히 엮여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걷는 '동반자'로서 지극히 진지한 단어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파트너'는 갑-을 관계의 부정적인 면을 덮는 멋진 가면으로 전용해 쓰이곤 한다. 특히 갑-을 관계의 폐해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창작 직군의 경우는 환상적인 수준이다. 예컨대 디자인 기업의 회사 소개서를 보면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란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디자인 회사엔 '용역'을 따는 느낌이 없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전문 지식을 '가르침 받는' 기분도 없으며 요즘 세상이 환장하는 단어인 '크리에이티브'까지 더해졌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조합인가.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상기시킨다. 의뢰인과 창작자가 작업의 기본 콘셉트와 방향을 함께 유심히 설정하고, 솔직한 피드백을 빠르게 주고받으며 조율에 조율을 거듭해 더 나은 작업을 만들어내는 성공적, 효율적인 상황 말이다. '창의적인 동반자'란 의미가 구축한 이런 이미지는 실제 마주한 현실과는 철저히 유리된 환상이지만 기약 없이 그 간극만 넓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누구도 감히 고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멀쩡한 모습'은 끊을 수 없는 달콤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라는 이름 아래 의뢰자와 창작자가 얻는 것은 인위적인 자존심이 일으키는 내면의 갈등, 더 좋은 작업물을 창조할 수 있는 여건의 말살, 그리고 갑-을 관계가 야기한 문제를 그대로 유지하며 욕을 먹지 않는 절대 방패 등 썩은 음식뿐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으면 다음 타자를 서로 손쉽게 찾을 수 있기에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일종의 영생 단계다. 그런데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존재의 유무다. 이제 그 여부조차 헷갈리는 대상에게 영생이란 단어가 유효할까.

결론적으로 당분간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 존재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고금의 전설 속 괴생물체는 이런 존재의 불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영생을 누려왔다. 증거의 확충, 그리고 실체의 확인을 통한 냉철한 현실 파악이야말로 공멸로 달려가는 기차를 멈추고 다시 되돌릴 기회를 만든다.

만약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의 실질적인 국내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표식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추적자가 되어야 한다.

thedesigncrac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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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5년 03월호 'Insight'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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