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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6일 11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대한민국 디자이너 매혈기(賣血記)

피를 팔아 다시 피를 유지하는 매혈의 여로가 천리만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다큐멘터리 소재라고만 믿는다면 그 것은 큰 착각이다. 글자 그대로 피를 뽑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명력과 원하는 것을 교환한다'는 의미로 매혈을 해석하는 순간부터 곧 우리는 '매혈 사회'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문단의 제 3세대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소설가 위화(余華)는 우리에게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의 작가로 익숙하다. 1995년 발표한 [허삼관 매혈기]는 한 여자의 남편, 세 아들의 아버지인 주인공 허삼관이 한평생 매혈(賣血), 즉 피를 뽑아 팔면서 중국 현대사의 큰 굴곡을 통과해 좌충우돌 가족들을 부양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결혼을 위해, 자식을 살리기 위해, 혹은 땡기는 걸 먹기 위해 목숨을 건 매혈의 길을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익살스럽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은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진한 페이소스를 전달한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게 삶이라고 했던가. 실제 중국에는 집단적으로 매혈을 하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가진 게 없고, 무언가 생산할 여력도 없는 상황에서 제 몸의 피를 파는 행위는 생명을 담보로 한 가장 극단적이고 원초적인 노동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피를 팔아 다시 피를 유지하는 매혈의 여로가 천리만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다큐멘터리 소재라고만 믿는다면 그 것은 큰 착각이다. 글자 그대로 피를 뽑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명력과 원하는 것을 교환한다'는 의미로 매혈을 해석하는 순간부터 곧 우리는 '매혈 사회'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매혈에 친숙하다. 공부라는 미명 하에 잠을 줄이고, 바깥 공기를 제대로 즐길 여유도 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숨을 참은 채 수학 문제와 영어 단어에 집중한다. 이들이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진학하면 다시 취업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기 위해 스펙이란 신전에 자신의 피를 바치길 마다하지 않는다. 원하던 직장에 취직해도 노력한 만큼 더 나아질 것이란 꿈을 품고 안정된 삶을 갈망하며 매혈을 멈추지 않는다. 매혈의 숭고한 의식-새벽 출근, 야간 근무, 밤샘 작업-에 빠짐 없이 참여하면서. 그러다 오르던 절벽에서 미끄러질 일이라도 생기면 피에 대한 믿음 하나로 절박히 매달려 지푸라기 움켜쥐는 심정으로 다시 생명력을 쏟아 붇는다.

이런 매혈 천하에서 디자이너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화실에 들어갈 때나 화실에서 나올 때나 세상은 언제나 일출이었다"고 담담히 말하던 어떤 재수생의 골방에는 어김 없이 수학 문제와 영어 단어가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 후 자신이 하고 싶던 분야를 마음껏 배우고 시도할 수 있다는 즐거움 하나로 끝없는 과제와 밤새 씨름하며 퀭한 얼굴을 훈장 삼아 얼마나 많은 날밤을 뜬 눈으로 샜나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는 매혈의 용사들. 이들에겐 한 학기 퀘스트를 끝낸 기념으로 상장이 수여된다. 실습비, 기자재비라는 명목으로 타 전공보다 늘 숫자가 높게 찍힌 등록금 고지서는 또 다른 종류의 매혈 의뢰서다. 졸업 후 그들이 들어간 첫 직장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전문 디자이너로 변신하는 프로 매혈인의 세계다. 뽑은 피가 다시 채워지기도 전에 이미 주사 바늘을 준비하는 이 곳은 창작과 생명력의 컬래버레이션이 최고의 덕목으로 추앙받는 매혈의 성지와도 같다.

매혈 사회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순위 놀음을 해본다면 디자이너야말로 드라마 속 '실장님'의 당당함을 뽐내며 남들이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하이 클래스'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시간 대비 뽑아내는 피의 양은 물론이고 매혈의 총 절대량 또한 웬만한 업종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을까. 물론 디자이너가 모든 면에서 매혈 셀러브리티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매혈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효율성, 그리고 매혈의 지속 가능성은 평균치보다 분명 낮을 것이라 확신한다.

업계 사람들끼리 비전으로 공유하는 주문인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나는 무척 행복합니다'를 되뇌며 매혈업계에서 알아주는 인재로 자리매김하던 디자이너는 갑자기 날라든 '매혈 불가능 판정' 도장이 찍힌 진단서를 받고서야 비로소 잠시 멈춰서서 지금껏 생명력을 불태우며 성취한 인생의 성과를 되짚어본다. 하지만 다들 손쉽게 차린다는 치킨집을 시작하기에 여건도 자존심도 허락치 않는 이 땅의 창조 인재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피,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는 아직 백이십 근이 넘는 살과 뼈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디자이너 매혈기가 쉼없이 쓰여지고 있다. 생명력과 땀으로 만든 잉크를 듬뿍 듬뿍 흡수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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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10월호 'Insight'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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