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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1일 12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1일 14시 12분 KST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영화로도 만들어진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 (Life of Pi)>에서, 주인공 파이는 홀로 생사를 넘나들며 겪은 227일 동안의 태평양 표류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얼룩말과 하이에나와 오랑우탄 그리고 오렌지 빛의 거대한 벵갈 호랑이가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또 하나는 그런 동물들이 등장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 나오는 보다 사실적인 이야기다. 그런 뒤 파이는 묻는다.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아마도 후자인 끔찍한 이야기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파이는 호랑이가 나오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냈고, 그것을 믿었으며, 이야기 속의 호랑이가 결국 그를 살려내었다. 그는 믿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파이 이야기>는 신과 삶에 대한 우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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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하자면, 신에 대한 내 입장은 "무신론자 - 불가지론자 - 왓에버"라 하겠다. 나는 창조주나 인격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종교적인 것'들을 좋아하고 때로 그것들을 적절히 이용하는 편이다. 실연이라도 하면 먼 곳의 절을 찾아가고, 오래된 성당의 경건한 공기 속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기도나 염불, 목탁 소리, 차분한 찬송가 같은 것들의 음향적 효과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좋아한다. 어쨌든 그것들은 나를 위로해 준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차가운 물에 서서히 잠겨간 그 배 안의 참혹했을 상황이 자꾸만 그려져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그 주 일요일에 나는 혼자 중구 정동 3번지에 있는 성공회 성당에 갔다. 한 달쯤 전에 그 근사한 성당의 내부가 궁금해서 친구와 함께 미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혼자 간 그날은 마침 부활절이라 사람이 특히 많았다. 사제는 강론에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신도석에선 훌쩍이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나도 소맷부리에 눈물 콧물을 닦아야 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서로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엄숙하고 경건한 공간에 모여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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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와일드>에서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는 아직 젊은 나이인 엄마가 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혼자 힘들게 두 남매를 키우면서도 항상 웃음과 춤을 잃지 않았고, 딸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던 엄마가 고작 마흔다섯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한다니, 셰릴은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동생과 나란히 누워 있던 셰릴은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남동생은 허튼짓을 한다는 듯 누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도 두 손을 모은다.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그럴 때 인간은 두 손을 모으게 마련이다. 정말이지 무엇이라도 잡고 싶을 때.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책 <만들어진 신>에서 신의 존재를 맹렬히 부정했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도킨스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위중한 병에 걸려 고통에 신음할 때 두 손을 모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도킨스의 병실에서 두 손을 모으고 중얼중얼거렸다간 단박에 쫓겨날 것 같긴 하지만.


사람들은 신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해서 믿고, 그러지 않았다 해서 안 믿는 것이 아니다. 믿기를 원하기 때문에 믿고, 믿으므로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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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스©스노우캣


반려동물이 저 세상에 가면 기다리고 있다가 주인이 저 세상 갔을 때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 세상'이라는 이야기 체계는 '이 세상'의 나를 위로해 준다. 생선을 뒤집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배를 탄 남편을 둔 여인은 차마 생선을 뒤집지 못한다. 위로 받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 설명되지 않는 '믿음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리처드 도킨스보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더 큰 위로를 받는 듯하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농담이 나온다. 미어캣 티몬과 멧돼지 품바, 사자 심바가 밤하늘 아래 누워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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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 티몬, 저 위에 반짝이는 점들이 뭔지 궁금하지 않아?

티몬: (한심하다는 듯) 품바. 난 안 궁금해. 난 알거든.

품바: 오. 저게 뭐야?

티몬: 저건 반딧불이야. 반딧불이들이 저 크고 검푸른 데 끼여있는 거야.

품바: 이런. 난 언제나 저것들이 몇 십억 마일 떨어진 곳에서 타오르는 가스 덩어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하하. 물론 품바가 옳다. 품바가 생각한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진실이다. 그런데 티몬의 이야기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다. 티몬의 이야기는 품바의 것과는 다른 층위에서 어떤 문학적 진실 같은 것을 품고 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검푸른 융단 같은 것에 반딧불이들이 끼여서 빛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만약에 반딧불이들이 거기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반딧불이들이 거기서 새끼를 낳는다면 밤은 점점 더 밝아져서 언젠가는 낮처럼 환해지는 걸까? 품바와 티몬의 대화 속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우주가 펼쳐진다. 과학의 우주와 이야기의 우주다. 이어서 그들은 심바에게 밤하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다. 머뭇거리던 심바는 이렇게 대답한다.

"언젠가 누가 말하길, 과거의 훌륭한 왕들이 저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대."

이렇게 믿음의 우주가 더해지고, 밤하늘은 더욱 풍성해진다.

* CJ E&M 트렌드 매거진 <트렌드C>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