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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3일 14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3일 14시 12분 KST

꽃삼겹살을 씹고 있는데, 그때의 우리가 생각났다

꽃삼겹살을 씹고 있는데, 그때의 우리가 생각났다 | <교대이층집>

차안에는 냉기가 흘렀다. 업무 차 내려온 부산 일정을 끝내기도 전에 우리는 그 먼데까지 내려와 사달을 냈다.

두어 시간 말도 한 마디 섞지 않고 한 사람은 차 보닛 쪽을, 한 사람은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좋은 봄날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차창으로 쏟아지는 기적 같은 풍광도 무심하게 흘린 채 그렇게.

​늦을 대로 늦어 배는 고프고 짜증은 짜증대로 나고. 우린 정말 맞지 않다, 서울 올라가는 대로 정리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차를 돌렸다.

"맞지 않다? 정리하자? 한두 번이야? 자신 있어?"

"그럼 너는?"

"난 뭐?"

"넌 헤어지고 싶으냐고"

"먼저 헤어지잔 사람이 왜 내 의중을 물어?"

"하... 됐다"

"무슨 말만 하면 됐대"

​종일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피 터지게 싸우는 것도 밥심이 있어야겠다 싶어 '일단 밥부터 먹고 보자'는 생각에 우리는 그 늦은 시간, 밥집을 찾아 근처를 뱅뱅 돌았다. 한참 뒤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허름한 고깃집을 찾아 들어갔다.

노포 특유의 눅눅한 냄새가 났다. 밤 10시. 그 시간에 고깃집이 한적하게 문만 열어놓고 있는 게 영 낯설었다. "저기요" 소리 몇 번을 해도 조용하더니 이내 바깥에서 문을 열고 주인장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영업 끝났나요?"라고 물으니 "니들 먹고 갈 때까진 문 안 닫는다. 앉아라" 라는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빨간 소쿠리에 삼겹살을 담아 테이블로 가지고 오셨다. 냉동상태에서 얇게 썬 삼겹살을 보고서 나는 "대패삼겹살인가 보다"라고 했다가 어마무시하게 혼이 났다.

"이기 으데서 무식한 소리를 해싼노. 함 무봐라. 이 고기가 그 고긴지"

세월의 흔적이 묵직하게 녹아있는 무쇠불판에 연세 지긋하신 여사장님은 고기를 하나하나 올려서 직접 구워주셨다. 선홍빛이 도는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니 바로 오그라들면서 보드랍게 익었다. 겉이 살짝 노르스름해지자 사장님은 파무침을 조금 집어 들어 고기와 함께 개인 접시에 내주셨다.

"무봐라"

맛은 정말 놀라웠다. 부드럽고 연한데다 그 고소함은 어디 비할 데가 아니었다. 차돌박이 같았다. 아니 차돌박이보다 더 연했다. 기름이 물처럼 맑고 깨끗한 걸 보고 도대체 이거 무슨 고기냐고 물었다.

그제 서야 픽 웃으시며 "맛 좋쟤? 새끼돼지라서 꼬숩고 연한 기다. 기름 맑은 거 봐라. 얼마나 깨끗한지."

앉은 자리에서 6인분을 먹었다.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사장님이 말리셨다. '이까지 왔는데 시락국(시래기국)에 밥 한 술 뜨야 안되긋나' 하시면서.

가스레인지에 다시 불을 붙이시더니 사장님은 냉장고에서 큼직한 김치 통을 통째로 꺼내오셨다. 뚜껑을 열자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장님이 직접 담근 김장김치였다. 제대로 익은 김치를 주욱 찢어 날 것 상태로 맛보게 하시더니 이내 불판에 올렸다.

그리고 큰 대접에 시락국을 가득 담아 밥과 함께 주셨다. 재래식 된장과 꽃게로 끓인 시래기국 맛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묵직하고 구수했다. 이거 한 그릇 마시러라도 다시 와야 할 것 같았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맛있는 삼겹살에 손맛 가득한 시락국과 김장김치도 실컷 먹었고. 배 두드리며 인사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한창 이쁠 때인데 싸우지들 말고 잘 가그라" 하셨다.

"어떻게 아셨지?" 하면서 우리는 픽 웃었다.

늦은 밤 서울로 올라오는 길,

햇볕 쨍쨍한 낮엔 보이지도 않던 벚꽃이 그 밤엔 어찌나 영롱하게 빛나 보이던지.

부산에서의 추억 한 소절이면 <교대이층집> 이야기는 다 했다.

이 집 고기를 먹는 순간 뜨겁게 행복했고 가시처럼 아팠던 작년 4월이 생각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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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나는 '교대이층집'에서 꽃삼겹에 소주를...

교대이층집 역시 새끼돼지의 삼겹살 부위를 판매하는 곳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먹었던 얇고 부들부들한 그 새끼돼지 삼겹살의 맛을 서울에서도 볼 수 있게 되다니!

이층집은 교대역 중심 상권에 위치해 있다. 말 그대로 2층에 있어서 이층집이다. 오픈한 지 1년 정도 됐다고 하는데 분위기를 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집 같다. 테이블이나 바닥, 벽면이 자연스럽게 낡아있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낡고 빛바랜 듯한 특별할 것 없는 고깃집. 이 느낌을 만들기 위해 영화 미술감독 팀과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고 한다.

무심해 보이는 테이블과 냉장고,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있을 법한 낡은 구식 텔레비전, '보광당'이 적혀있는 옛날 달력, 1980년대 이발소에 있을 법한 묵직하고 큰 거울.

쉬는 날이라 평일 오후 4시쯤 낮술 하러 갔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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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꽃삼겹부터 주문했다. ​밑반찬이 푸짐하게 깔렸다. 쭉 훑어보니 달래장아찌, 갓김치, 파무침, 백김치, 명이나물이 보인다. 테이블 한쪽 인덕션에는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해물나베를 올려준다. 이 해물나베는 기존 미식가들과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서 입 아프게 칭찬받고 있는 서비스메뉴다. 청경채와 배추, 파, 가리비, 바지락, 홍합, 꽃게를 푸짐하게 넣었고 청양고추로 칼칼하고 매운 맛을 가미했다. 고기를 다 먹고 난 후 남은 소주를 비우기에도 탁월한 칼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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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에 열이 오르자 이모가 와서 고기를 집적 구워준다. 꽃처럼 피어있는 비주얼 때문에 꽃삼겹이라고 이름 붙인 것인가. 꽃삼겹은 육질이 연한 삼겹살 부위를 아주 얇게 썰어내기 때문에 불판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어야 한다. 차돌박이 익히듯 센 불에 살짝만 익혀 바로 먹어야 그 보드라운 육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전라도에선 '애저찜'이라고 해서 새끼돼지를 전피, 인삼, 생강, 은행, 밤, 대추 등을 넣고 끓여 귀한 날에만 먹었다. 도시인들에겐 생소한 지방 향토음식을, 부산의 <서초갈비>와 이곳 <교대이층집>에선 '삼겹살구이'라는 친숙한 메뉴로 내고 있는 셈이다.

부산에서 먹었던 그 맛 그대로, 이 곳의 꽃삼겹 역시 기름이 정말 맑다. 두께가 얇아 불판에 올리자마자 금세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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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집도 부산 <서초갈비>처럼 담백하게 무친 파무침을 내주긴 하나 사실 순태젓갈과 갓김치가 훨씬 맛있다. 전남 여수 돌산에서 공급받는 갓김치는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적절히 익어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참 좋다. 앉은 자리에서 갓김치를 두어 번 리필했다. 보드랍게 익은 꽃삼겹은 쿰쿰한 순태젓갈에 찍어먹어도 별미다. 순태젓갈은 갈치 뱃살과 내장, 전어를 섞어 숙성시킨 것으로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오징어젓갈이나 낙지젓갈, 창란젓보다 식감이 풍부하면서 갈치속젓이나 멜젓에 비해선 비리거나 쿰쿰함이 덜한 편이다. 과하게 짜지 않아 뜨거운 쌀밥에 쓱쓱 비벼 먹어도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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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배 밥 배' 따로 있는 대식가라면 한우된장전골을 주문해도 좋다. 경기도 연천에서 5년간 숙성한 재래식 된장에 한우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넣고 폴폴 끓여낸다. 봄에는 냉이와 달래를 올려내고 나머지 계절엔 부추로 대신한단다.

한우된장전골을 주문하면 큰 대접에 흑미밥을 가득 퍼준다. 국물과 함께 두부와 소고기, 부추를 가득 올려 강된장 스타일로 비벼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평소 소식가인 동행한 친구 녀석도 된장국물에 밥을 비벼먹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이내 숟가락을 들이민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가볍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을 선호하는 이들의 입맛엔 안 맞을 수도 있겠다. 나는 고향이 경북 상주 촌동네지만, 서울 토박이 친구 몇 놈은 아직까지 진한 재래식 된장 특유의 묵직한 맛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집은 음식 맛도 맛이지만 우선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교대 상권의 특성에 맞게 테이블 곳곳마다 전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고기에 소주를 걸치고 직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일을 전쟁 같이 '견디듯' 보내는 그들이 바라는 게 무어 그리 큰 것이겠나. 푹신한 의자에 걸터앉아 '이모' 소리 한 번에 고기와 소주도 서비스 받고 그러면서 정도 주고받고. 그게 사람 사는 풍경이다.

각자의 삶에서 각자가 지난 무게만큼 오늘 하루 고생했지만, 여기서만큼은 다 같은 마음으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한 잔 마시고 털어내자! 라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게 녹아있는 공간.

가장 기본적인 것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이 곳 주인장은 알고 있는 듯하다.

20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에게, 비빌 언덕 없이 황량한 벌판 위를 홀로 싸우며 걸어야 했던 당신에게 따뜻한 품 내주지 못해 미안한 시간이었다.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아픔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것은 사랑인 것이다. 그걸 조금 일찍 깨우쳤더라면 적어도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미리 생채기를 남기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사랑을 지나 이별을 지나 그 추억을 모아보니 너는 나의 20대 끝자락을 나누었던 청춘의 마지막 조각이다.

그러니 반드시 행복해야 돼.

그래야 나도 행복할 수 있어.

꼭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담담하게 묻어두는 것.

나는 그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