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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7일 12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27일 14시 12분 KST

교육혁신지구, 국가주의 공교육에서 주민자치 공교육으로 가는 길

실제 학교가 시도나 시군구로부터 받는 지원 금액은 시도·시군구의 정책방향이나 학교장의 로비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이른바 조건이 좋은 지역의 학교일수록 로비력이 좋은 교장, 예컨대 장학관이나 장학사 출신이 와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학교지원예산이 실제로는 학교 부익부빈익빈의 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지자체의 학교지원예산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학교에 집중 지원돼 상향평준화를 이루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인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걸 바꿔야 한다.

연합뉴스

글 | 곽노현(전 서울시교육감)

요즘 '교육도시 서울' 카톡방에는 600명이 넘는 교육활동가들이 모여든다. 교사와 학부모, 청소년 활동가는 물론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명실상부한 교육도시 서울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자료를 공유한다. 두어 시간만 오가는 얘기와 정보를 쫓아가보면 이미 뭔가 불이 붙었고 곧 활짝 타오르겠다는 느낌이 온다.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박원순 시장과 조희연 교육감, 자치구청장과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교육혁신지구사업의 열기 덕분이다. 박원순 시장의 <마을이 학교다> 프로젝트가 조희연 교육감의 학교민주주의와 학교혁신운동과 맞물려 서울교육이 일대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2015년 현재,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에서 7개가 교육혁신지구로 지정받아 운영 중이다. 서울시와 교육청이 각 7.5억, 자치구가 5억, 총 20억 원씩 투입된다. 서울시 전체로는 140억 원이 투입되는 큰 사업이다. 교육혁신지구는 지자체와 교육청(학교)의 상호 열림을 지향한다. 학교는 지역사회를 향해, 지역사회는 학교를 향해 활짝 열리는 이중 열림으로 학교와 지역사회 사이를 가로막은 높은 담장을 허무는 일이다. 그 결과 지역사회는 학교밖 학교로 재구조화되고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허브로 거듭난다. 교육혁신지구에서는 교육청과 시도청, 시군구청이 협력하여 아이를 살리고 학교를 살리며, 마을을 살리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살리는 일이 진행된다. 재선 진보교육감 지역에선 거의 모두 규모와 속도에서 차이가 날 뿐 비슷한 철학과 비슷한 청사진으로 전개된다. 초선 진보교육감 지역은 좀 더 준비가 필요하지만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려서 이미 소규모로나마 교육혁신지구를 시작한 사례가 있다.

교육혁신지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기억에 선명한 2012년만 하더라도 서울에서는 교육청의 학교지원예산 외에도 서울시청이 매년 1,500억 원, 자치구청이 매년 총1,500억 원을 학교교육에 썼다. 서울의 학교가 1천300개라고 할 때 1개교당 평균 2억3천여만 원씩 돌아가는 셈이다. 인건비와 시설유지보수비, 냉난방비 등 학교의 기본운영경비는 모두 교육청예산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추가로 생기는 이 금액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다 꼬리표가 붙는 예산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목적과 용도에만 사용가능한 돈이다. 이런 예산을 지원받으면 대개는 쓰느라고 바쁘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해도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에선 풍요가, 다른 쪽에선 결핍이 판치는 것이 학교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꼬리표 달린 특별예산 비중이 높을수록 학교교육 전체로 보면 낭비와 비효율이 불가피하다. 이걸 바꿔야 한다.

위에서는 평균액수를 거론했지만 실제 학교가 시도나 시군구로부터 받는 지원 금액은 시도·시군구의 정책방향이나 학교장의 로비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이른바 조건이 좋은 지역의 학교일수록 로비력이 좋은 교장, 예컨대 장학관이나 장학사 출신이 와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학교지원예산이 실제로는 학교 부익부빈익빈의 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지자체의 학교지원예산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학교에 집중 지원돼 상향평준화를 이루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인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걸 바꿔야 한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역량과 자원만으로는 안 되는 교육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체험학습이 강조되면서 바깥으로 나가야 할 일이 많아진다. 삶의 기술이나 노작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칠판과 분필만으로 교육하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나아가서 무늬만 있는 진로직업교육이나 문예체교육, 민주시민교육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활성화시키려면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교육자원을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학교교육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이런 작업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학교와 지역사회의 학교밖 학교가 협력해야 한다.

잘 들여다보면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체육관, 수련관 등 학교밖 학교가 제법 많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현재 학교밖 학교로서 잠재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가끔 학교아이들의 견학탐방을 받는 정도다. 청소년·아동 건강과 청소년·아동 복지에 전념하는 지자체 소속기관이나 지원단체도 적지 않다. 이런 기관이나 단체들도 아직까지 초중등교육에 큰 관심을 갖진 못한다. 학교담장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교육에 대한 적극적 기여를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의 하나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걸 바꿔야 한다.

위에서 개관했듯이 교육청과 시도, 시군구는 그동안 학교교육 지원과 관련하여 본격적인 조율과정 없이 제각기 움직였다. 그 결과 교육청은 혁신교육을 내세워도 시도청과 시군구청은 수월성교육에 돈을 퍼붓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육청은 사람 투자를 강조해도 시도청, 시군구청은 시설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청은 교육과정 정상운영에 주력해도 시도청과 시군구청이 특별프로그램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혁신지구는 교육청과 시도청, 시군구청과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바람직한 지역교육을 모색하며 인적·물적 협력방안을 체계적으로 강구하기 위해 태어났다. 지금의 구심력 없는 독자적인 학교지원 상황을 극복하고 힘을 모아 교육혁신에 탄력과 가속도를 붙이고자 탄생한 셈이다. 교육혁신지구는 교육청, 시청, 자치구청, 시민사회의 역량이 하나로 모이도록 자극한다.

교육혁신지구를 지정하고 운영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혁신지구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서는 서울교육청이 정식화한 교육혁신지구 4대 운영원칙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첫째, 거버넌스 우선의 원칙이다. 혁신교육지구사업은 지역의 교육관련 전문가들의 거버넌스(협력적 협의-실행관계)의 구축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 좋은 거버넌스가 토대다. 이것이 취약하면 교육혁신지구는 사상누각이다. 예산규모의 다과나 교육프로그램의 질은 지역 내에 참여와 협력의 민-관-학 교육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것에 비해 부차적이다. 기존의 민-관-학 협력이 간헐적이고 단면적으로 가치지향과 정책목표가 엇갈리는 가운데 이뤄졌다면 이제부터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며 전면적인 협력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지역학교들의 부익부빈익빈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지역교육을 상향평준화시키려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표성과 개방성, 활동성을 갖춘 민-관-학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학교교육 정상화의 원칙이다. 기존 공교육 기관인 학교의 기능이 비정상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교육혁신지구사업은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는 관점과 원칙을 분명히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교육의 문제들이 심화되고 그것이 지역 단위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일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프로그램의 남발이다. 학교는 정책프로그램보다는 정규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운영해서 모든 학생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교육혁신지구에서는 학교에 떠맡겨진 돌봄 기능이나 방과후학교도 지역공동체가 맡아서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혁신지구에서 1차적으로 강화되고 지원되어야 할 것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수업, 생활교육 혁신이다. 예를 들어 중학교 급당 인원을 25인 이하로 줄인다든가 특정학년에 보조교사를 집중 투입하여 학습부진 누적을 막도록 한다든가 학교단위나 지역단위 교사의 학습공동체를 지원한다든가 하는 일에 집중하여 학교 전체의 교육력과 아이 모두의 학습여건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면 수업과 생활교육의 질이 높아지며 모든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아울러 교육혁신지구사업은 진로직업교육과 문예체교육, 민주시민교육처럼 단위학교의 노력만으로는 내실을 기하기 어려운 고난도 교육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롭고 다양한 협력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교육혁신지구사업이 제대로 운영되는 지역사회에서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겨냥하여 지역주민과 학부모의 참여와 기여가 활성화될 것이고 그에 힘입어 교육협동조합이나 교육원탁회의 등 새로운 공공성의 영역을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셋째, 교육과정 지역화의 원칙이다. 농어산촌과 도시학교의 교육과정이 똑같은 것은 문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기 고장이나 지역의 인물과 역사, 산업과 문화예술, 지리와 환경을 배워야 한다. 자기 고장이나 지역의 문제를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농어산촌 학교의 교육과정에는 농어산촌생활의 리듬과 경험이 반영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농어산촌에 살면서도 머리로는 도시에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은 지역에 살면서도 머리는 중앙을 선망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육혁신지구사업의 거버넌스 체계가 내실 있게 운영되면 교육청과 지자체, 학교를 비롯한 지역 교육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교육과정의 새로운 모델들을 창출해내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지역주민들의 구체적 삶의 패턴과 리듬, 지역사회의 독특한 사회경제와 역사문화, 생태지리가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에 반영되는 수준과 정도에 비례해서 다양한 부문의 지역전문가들이 학교교육에 기여할 공간과 기회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책임과 보람이 늘어날 것이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역시 그에 비례해서 지역사회의 구체적 삶의 현장과 네트워크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실질적 의미의 교육지방자치가 실현되는 게 아닐까 싶다.

교육혁신지구는 국가주의에 찌든 공교육을 온전히 지역자치와 주민참여, 민주주의와 공공성의 영역으로 되돌려주는 공교육의 본질회복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장기적 전망 속에서 진행해야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를 갖는 교육혁신지구는 시도지사나 자치구청장,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단기간에 끝나서는 안 된다. 교육혁신지구의 비전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재정과 제도 양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오는 것이 마지막 네 번째 원칙인 자생력 확보의 원칙이다. 자생력의 원천은 교육혁신지구의 취지와 정신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합의와 지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뒷받침되어야만 크고 작은 열매를 얻을 때까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그래야만 자생력 확보에 필수적인 역동적 선순환을 창출하며 확고한 주민지지를 조직해 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육혁신지구를 시작하는 지자체와 교육청은 무엇보다도 먼저 학교소재 인근지역별로 광범위한 민관학 원탁회의를 규모 있게 조직하여 교육혁신지구의 취지와 비전을 공유하는 일에 앞장서며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바람직한 거버넌스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서울의 교육혁신지구에서는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주민참여방식의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서 학교매점이나 방과후학교, 초등돌봄기능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각자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자녀교육을 영리사업의 대상으로 방치하는 대신 학부모와 지역전문가 등 당사자들이 상부상조의 공동체적 정신을 발휘하여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셈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교육혁신지구가 지향하는 공교육의 지역화와 자치화, 공공화에 새로운 탄력과 자생력을 부여하며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혁신지구에서 주민과 학부모중심의 크고 작은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만들어져 아이들 교육의 다양한 측면을 부모와 주민, 지역의 눈높이에서 책임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혁신지구는 이때 비로소 주민들 사이에서 자생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교육혁신지구를 운영하는 지자체와 교육청이 위의 4대원칙을 제대로 실천할 때 교육혁신지구는 학교와 수업을 혁신하고 지역사회를 교육적으로 재편하며 교육을 매개로 일상의 시민참여를 활성화하는 가장 가까운 곳의 생활민주주의로 탄탄하게 자리매김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서울을 중심으로 몇 군데서 교육혁신지구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실은 현재 침체일로의 민주주의와 공공성, 시민참여를 되살리는 바람직한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공교육의 새 표준과 새 문화를 선보인 혁신학교의 성공이 진보교육감 1기의 빛나는 성과였다면 진보교육감 2기의 빛나는 성과는 단연 지자체와 교육청, 시민사회가 혼연일체가 돼 교육혁신지구의 성공을 확보하는 데 있다. 교육혁신지구는 지역사회에 학교교육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주민참여와 공공성의 정신을 불어넣으며 국가주의 공교육을 주민자치 공교육으로 전환하는 황금열쇠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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