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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07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4일 14시 12분 KST

진보주의자들은 대학을 휩쓰는 정치적 공정성의 광기에 크게 불안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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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와 같은 진보주의자들을 위한 사설이다.

정치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보적인 생각은 인습적인 추정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상으로서의 진보주의는 생존을 위해 언론의 자유에 의존한다. 국가가 정치적인 이견을 억압하는 걸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적으로 좌파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한 대화가 공론장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역사를 보면 인종, 젠더, 종교, 경제 등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 굵직굵직한 인권 운동들은 논란이 되는 생각들이 꽃을 피웠기 때문에 전진할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생각들에 화를 냈을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들에는 논리적, 도덕적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그건 자유로운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당신이 언론의 자유를 갖고 싶다면, 남들의 언론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의 93%가 '캠퍼스에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매우' 혹은 '다소' 중요하다고 믿는 반면, '보수적인 입장을 듣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이 학부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학생들은 74%에 불과했다(남부연방기를 날리는 것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이 수치는 곤두박질 친다).

역사적으로 억압 당했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경험한 트라우마와 연관될 수 있는 말과 심볼은 '폭력 행위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조사 대상 학생 중 53%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 논리는 최근 예일, 웨슬리언, 미주리 대학교에서 있었던 시위의 수사에도 드러난다(예일 대학교에서는 인종적인 편견이 깃든 특정 할로윈 커스튬을 금지하라고 시위하는 학생과,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교수가 설전을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이 시위들에서는 신문 사설과 모욕적인 말, 할로윈 의상에 이르기까지 다향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시각들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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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 현장

지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은 단순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니엘 W. 드레즈너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 사설에 이렇게 썼다.

20년차 교수로서, 대학생들은 대학생이라는 게 생겼을 때부터 멍청한 말들을 해왔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오늘날의 다른 점은 소셜 미디어 때문에 대학생들의 의견이 바이럴로 퍼지기가 쉬운데, 그게 원래 의도는 아닌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은 우리의 역사를 이뤄왔고(60년대를 떠올려보라), 나는 내가 바드 대학에서 학부생이었던 2003년~2006년 동안 있었던 일 중 지금 일어났다면 전국적으로 헤드라인에 올랐을 경험들을 개인적으로 기억한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졸업식 연사로 초대되었다가 난리법석이 났던 것, 2004년에 조지 W. 부시가 재선되었을 때 뉴욕 주 레드 훅에서 경찰과 실갱이가 일어났던 일, 카페테리아에서 '증오 발언이 아닌 언론의 자유를'이라고 외치며 시위했던 것(어떤 일 때문이었는지는 지금 생각이 안 난다) 등이다. 만약 이런 일들이 2015년에 일어났다면 소셜 미디어의 - 그리고 물론 일반 미디어도 후에 뒤따를 것이고 - 서커스가 일어나 모든 일을 크게 부풀리고, 학생들에게 학교를 망신시킬 수 있는 더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즉, 학생들은 언제나 이런 일들을 해왔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는 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연결하고 있고, 감정은 확대되고 그에 따라 결과도 더 커진다.

이런 일은 주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불쾌하지만 비교적 흔한 일이 엄청나게 확대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상황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심지어 제도적 검열을 정당화하기가 쉬워진다.

특정 종류의 발언과 그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혹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일어난) 심각한 잠재적 피해를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아주 미약한 연결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피해가 일어난다는 것은 본래 참아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는 공개적으로 자기 발언을 취소하고 속죄하거나 일종의 벌을 받아야 한다.

웨슬리언에서 일어난 일이 그것이다. 학생 신문이 #BlackLivesMatter 시위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잃었다(신문은 후에 사과했다). 동시대 정치적 올바름의 기본적 상정을 비판했거나 비판을 허용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와 교수진들이 사임했거나 사임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도를 넘어서는 일인 것이다.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말 자체가 금지되어야 한다거나, 학생 시위에 대한 매체 보도가 학생들의 '안전 공간'을 침해한다는 논의는 늘 이런 식이다. 두 가지 모두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그걸 무기로 삼아서 실재하는, 혹은 잠재적인 비난을 억누른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대의명분은 유효하다는 게 비극이다.

미국이 점점 더 다양화되면서, 문화적, 사회적 태도 역시 더 다원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전통적으로 소외되었던 집단에 대한 감수성을 퍼뜨리는데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건강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사고에 도전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경향이 위험한 것이다. 인종, 젠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퍼뜨리는 대신, 발언에 대한 경찰 노릇과 위반자로 보이는 사람을 수치 주는 것으로 초점을 옮기기 때문이다.

우리 진보주의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행동은 우리 사상의 두 가지 근본적 가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우리는 사회로서 기능하며 사유뿐 아니라 연민도 보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우리 생각을 말할 권리를 얻기 위해 남들의 말할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도덕적 의무이고, 후자는 도덕적이자 전략적 의무이지만 둘 다 침해되 어선 안 된다.

여기에 불을 붙이는데 소셜 미디어를 이용했다면, 그 불에 물을 끼얹는데도 이용할 수 있다. 많은 원칙들과 약간의 상식이 필요할 뿐이다.

*이 글은 Good Men Project에 먼저 기고됐다.

허핑턴포스트US의 Liberals Should Be Deeply Disturbed by Political Correctness Craze Sweeping College Campuse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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