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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8일 07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8일 14시 12분 KST

안병직, 이영훈, 그리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필자는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 안병직 교수의 제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와는 안병직 교수 아래에서 동문수학했다. 2005년경부터 시작된 이영훈 교수의 역사 교과서 비판은 지금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진원(震源)이다. 근원을 파헤치지 않으면 잘못을 바로잡기 힘들다는 마음에서 스승과 선배를 정면 비판하는 부담을 감수하고자 한다.

안병직 사단과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

안병직 선생. 대학 시절 내내 가슴을 뛰게 만든 이름이다. 박정희 독재가 절정에 달하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숨이 막혀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던 시절에 안병직이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도 같았다. 그의 책 『3.1운동』은 정의에 목마른 대학생들이 어렵게 구해 읽던 재야 교과서였고, 그가 『창작과 비평』 등에 기고한 한용운, 신채호 관련 논문들은 암울한 시대를 비춘 한 줄기 빛이었다.

암울했던 시절 안병직 선생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였다. 수많은 서울대 학생들이 그의 문하로 집결했다. 학부생들은 직간접으로 그의 지도를 받아서 험난한 삶을 선택했고, 대학원생들은 그를 닮은 지식인이 되고 싶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다. 그가 대학원 강좌를 개설하면, 경제학과는 물론이고 국사학과나 사회학과 등 인근 학과의 대학원생들도 수강 신청을 하는 바람에 수십 명이 한 세미나실에서 수강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생의 전공 분야는 한국경제사였다. 요즘은 여러 대학에서 강좌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이 분야를 전공하려고 한 해에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 신입생 40명 중 절반이 그에게 몰려들기도 했으니, 당시 그의 영향력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당히 박정희·전두환 독재에 맞서는 결기와 함께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연구 열정을 품고 제자들을 지도했던 안병직 선생, 그 시절 그는 나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사표(師表) 그 자체였다.

안병직 사단, 사람들은 그의 제자 그룹을 이렇게 불렀다. 안병직 사단의 멤버들은 경제학에서 변방 중에 변방인 한국경제사를 전공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을 존경하는 스승과 함께 걷는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공부에 매진했다.

안병직 사단에는 수제자라 부를 만한 인물이 몇 명 있었다. 지금 서울대 경제학부에 재직하고 있는 이영훈 교수는 그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사료들을 몽땅 다 읽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사료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서 직접 확인할 정도로 철저하기도 했다. 내 개인에게 그는 신들메 풀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하늘같은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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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1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시민운동' 창립대회에서 안병직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뉴라이트 운동과 이영훈 교수의 역사 교과서 비판

그런데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초는 1980년대 후반 일본 동경대학의 초청으로 2년간 일본에서 연구하고 돌아온 안병직 선생이 식민지 시대에도 조선인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현대 한국경제와 관련하여 중진자본주의론을 설파하는 논문을 집필하기도 했다. 중진자본주의론이란 한국경제가 이미 자립경제를 달성하고 중진국 단계에 들어섰으며 조만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었다. 이런 선생의 변신(나중에 선생은 이때 연옥을 통과하는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다)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사람이 이영훈 교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안병직 선생이 기존 식민지사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한 부분을 새롭게 조명하는구나 생각했지, 식민지 근대화론을 피력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선생은 단지 식민지 시대에 조선인의 성장이 있었다는 주장을 넘어서 일제의 식민지 개발이 해방 후 한국 고도성장의 물질적 기초가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한국의 캐치업(catch-up) 과정을 순조롭게 해서 고도성장을 견인했다는 개발독재 미화론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노무현 정부 시절 뉴라이트 재단을 만들어 극우 성향의 정치운동을 펼치면서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초기에 약간 갈라진 길이 이렇게 큰 간격을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

안병직 선생의 뉴라이트 운동이 '성공'을 거두게 된 배경으로 이영훈 교수의 '맹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이 변신의 조짐을 보이던 초기에 극력 반발했던 이영훈 교수는 금세 입장을 바꾸어 스승의 견해를 전폭 수용했고,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로 자리를 옮긴 후부터는 한번 수제자는 영원한 수제자라는 듯이 스승을 능가하는 뉴라이트 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작금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의 진원(震源)은 이영훈 교수가 주도했던 교과서포럼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비판이었다.

2006년 11월 교과서포럼이 개최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관련 심포지엄에서 안병직 선생과 이영훈 교수가 4.19 관련 단체 회원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뺨을 얻어맞고 질질 끌려 나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나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치 못난 아버지와 형님이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가 낭패 당하는 꼴을 지켜보는 심정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 기개를 지키고 민주주의와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대열의 최선봉에 섰던 두 분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황당한 생각을 품은 확신범으로 바뀌어서 저토록 험한 일을 겪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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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이영훈(오른쪽 두번째) 서울대 교수가 '대안교과서'로 완성한 '한국 근ㆍ현대사' 공식 출간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칭 자유민주주의자 이영훈 교수가 국정화를 지지한다고?

이번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계획 발표로 논란이 빚어지기 시작할 때 이영훈 교수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자못 궁금했다. 희한하게도 그와 원조 뉴라이트 인사들은 조용했다. 그 와중에 충남대 류동민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래도 국정교과서는 아니다"라고 선언해 주시기를 복망한다며 이영훈 교수를 상대로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영훈 교수와 원조 뉴라이트 인사들이 조용하기에, 나는 혹시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위배되는 국정화 방식에 반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이영훈 교수가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등장해서 기존 역사 교과서가 민족·민중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판하며 국정화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 동안 조용히 있었던 것은 국정화가 자신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국정화를 추진하는 집권층의 서툰 전술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꽉 쥔 손을 펴려고 하지 말라'고 했던 중국 공산 혁명가 마오쩌뚱의 교훈을 상기시키면서 현 집권층이 바로 마오쩌뚱이 금했던 그 방식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편이 용이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부터, 또 경제·사회·정치·윤리 교과서부터 고친 다음에 '꽉 쥔 손'에 힘이 빠질 때에 가서 국사 교과서 개편 작업을 추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해서 국사학계를 포위하고 고립시킨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현 정권이 섣불리 추진해서 저항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현실 진단이다.

나는 자유주의를 그토록 강조하는 이영훈 교수가 어째서 교과서 발간에 자유시장의 원리를 적용하자고 주장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민민주주의 혁명 노선을 그토록 폄하(나도 그 노선에는 절대 반대다)하는 그가 어째서 공산 혁명가 마오쩌뚱의 전략 전술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 그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 교과서의 이념이 민중사관이라고 단정하거나,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령 중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헌법적 법통, 4월 혁명, 부마 민중 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을 계승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는 구절을 두고 민중사관의 충실한 복사판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흔히 활용하는 허수아비치기 수법으로 보아 그냥 넘기더라도, 자신의 역사관을 인간 개체의 자유와 독립 이념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사관이라고 우기는 것을 어떻게 봐줘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상찬하고, 국가의 교과서 독점 발행을 적극 옹호하는 것이 인간 개체의 자유와 독립 이념과 조화된다고 보는 것일까? 만일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는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병직 선생, '괴물'을 낳았다

이영훈 교수의 이번 발제문에는 위험해 보이는 내용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것(6.15선언)은 악마의 유혹이었다"라든가, "새로운 사태의 본질은 자유사관과 민중사관의 투쟁이다. 우리의 역사를 해석할 권병을 누가 장악하는가라는 절체절명의 이념전쟁이다. 마성화된 민족주의 권력으로부터 우리의 자유이성을 해방하는 종교전쟁이기도 하다"는 구절에서 나는 광신적 근본주의의 빗나간 영성을 읽는다.

이영훈 교수와 그가 몸담은 '애국'진영은 현 교과서를 집필한 '좌파'들이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나라로 기술하지 않는다고 맹렬히 비판한다. 이런 교과서로 공부를 하니 요즘 청소년들이 모든 문제를 나라 탓으로 돌리는 불순한 태도를 갖게 된다고 푸념한다.

한 가지만 질문하자. 왜 대한민국 국민들이 무조건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겨야만 하는가?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부끄러운 부분은 감추고 자랑스러운 부분만 드러내며 살자니, 아니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자니, 국민들더러 아편 맞아 정신 나간 상태로 살아가라는 말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오류 없는 신(神)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쯤 된다는 말인가? 마치 가장의 역할은 했지만 일중독, 알코올중독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성공한 아들더러 자기 아버지가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고 여기며 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자는 주장을 민주정부 10년에는 적용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건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해괴한 주장과 자기모순적 논리 전개가 너무 많아서, 옛적 그렇게 영민하고 진중했던 이영훈 선배가 한 말이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런 '괴물'로 만들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안병직 선생의 잘못이 크다.



*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