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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1일 12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21일 14시 12분 KST

SNS와 '선별된 자기제시'

문제는 이렇게 어떤 사람의 '전체' 모습이 아닌 '선별된' 모습만이 올라와 있는 페이스북을 보고 그 사람 전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기 쉽다는 데 있다. 친구가 취업에 성공해 기쁘다며 입사할 회사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고 할 때, '나는 왜 아직까지 취업이 안 되는 것일까' 고민하는 '사회비교' 과정이 개입된다. 또는 친구가 애인에게서 받은 꽃다발 사진을 보고 '저 친구의 애인은 저렇게 예쁜 꽃다발을 선물하는데 내 애인은 뭐 하고 있나' 하고 비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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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준다. 그래서 '타인의 실제적, 상상적, 암묵적 존재가 개인의 생각, 느낌, 행동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디어를 통해 타인이 상상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이용에는 사회심리학의 원리들이 매우 잘 적용된다. 미디어가 소셜(social)해졌다기보다는 원래부터 소셜했던 인간들 바로 옆에 개인 미디어가 갖춰지면서 사람들 간의 사회적 행동이 미디어의 소셜한 기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몇 가지 흥미로운 개념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이것으로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혹은 '이것만 있으면 따분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즉, 우리는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즉 스마트폰의 '어포던스(affordance)'를 지각하는 것이다. 어포던스라는 개념은 원래 지각심리학자 깁슨(Gibson)이 제안한 것으로,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기능을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말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볼 때 미디어도 하나의 환경이기 때문에 어포던스를 지닌다.

우리가 사람을 직접 보고 인상을 형성하듯,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된 사람에 대해서도 인상을 형성한다. 그리고 면대면 상황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리듯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ite/service)에서도 열심히 사진과 소식을 올리며 '소통적 자기제시'를 시도한다. 즉, 자기제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자기제시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새로운 소식을 올리는 것은 예전의 아날로그적 앨범 정리와 유사한 측면을 지니면서도 함께 연결되어 있는 친구들 모두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근황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며 답글을 달아 주는 것도 친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는 사회심리학적 대인관계 유지 행동에 해당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한 자기제시에 독특한 점이 있다면, 개인에게 발생한 좋은 일과 나쁜 일 중에서 대체로 좋은 일들을 더 많이 올린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앨범에 보관하는 사진 중에는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훨씬 많은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골고루 겪지만, 그 중 특히 좋은 일을 더 많이 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렇게 어떤 사람의 '전체' 모습이 아닌 '선별된' 모습만이 올라와 있는 페이스북을 보고 그 사람 전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기 쉽다는 데 있다. 친구가 취업에 성공해 기쁘다며 입사할 회사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고 할 때, '나는 왜 아직까지 취업이 안 되는 것일까' 고민하는 '사회비교' 과정이 개입된다. 또는 친구가 애인에게서 받은 꽃다발 사진을 보고 '저 친구의 애인은 저렇게 예쁜 꽃다발을 선물하는데 내 애인은 뭐 하고 있나' 하고 비교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도 미디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전달할 수가 없다. 현실 속의 일부분에만 조명을 비추는 것이 미디어의 속성이기에, 우리가 보는 미디어는 현실의 일부만을 반영한다는 전제 하에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도 사실은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의 일부만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모든' 정보를 다 알고 나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한다 해도 결국은 '일부'의 정보에 근거하여 '나의 주관이 많이 들어간' 판단을 하게 된다.

인간의 착각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심리적 동기로 인해 발생한다. 자기가 원래 좋아하던 사람은 좋은 일을 할 때, 자기가 원래 싫어하던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을 할 때 인지적 일관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던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라고 좋게 생각해 주는 반면, 자기가 싫어하던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하면 '그럴 줄 알았다'며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로 인한 착각은 우선 미디어의 선택에서부터 일어난다. 사람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애용하는 미디어의 종류가 다르고, 이렇게 각자 선택한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이 진짜 현실 전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은 조선일보가, 경향신문만 보는 사람은 경향신문이 보여 주는 현실이 진짜 현실 전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서로 성향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신문을 함께 읽어 보고 판단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도 선별적일 수밖에 없고,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100% 객관적이기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디어를 통해 걸러진 정보도 현실을 100%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눈과 귀를 통해 직접, 또는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 듣는 현실 속에서 착시와 착각이 일어나고 판단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나도 착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과 미디어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갈구하고 있고, 그 연결을 효율적으로 이루어 주는 것이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의미 공유와 소통의 질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진실한 마음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나은영 (2015). 『인간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소통 공간의 확장』. 한나래.

* 이 글은 한국심리학회 웹진 PS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