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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4일 12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4일 14시 12분 KST

[18일간의 미국서부 일주 ⑦]여름에 더 예쁜 솔트레이크시티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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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코튼우드 드라이브 코스. 위쪽은 하얀 바위산, 아래는 침엽수림의 식생이 특이하다. ⓒ 임은경

빅 코튼우드 캐년으로 가는 길. 산길로 접어들수록 길가의 집들이 점점 더 크고 멋있어진다. 이곳이 바로 부유층들이 모여 사는 소위 업타운(Uptown)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무조건 높은 곳에 산다. 집의 입지조건 중에서 '전망'을 제일로 치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가난한 동네인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집 구경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늘 정확한 한국말로 또박또박 길을 안내하던 구글 지도앱이 웬일인지 오늘은 길을 잘 못 찾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에는 빅 코튼우드와 리틀 코튼우드, 이렇게 각각 다른 두 개의 드라이브 코스가 있었다. 와사치 드라이브를 거쳐 빅 코튼우드인 줄 알고 처음에 들어간 곳은 리틀 코튼우드 캐년. 그런데, 와. 우리는 하던 이야기도 멈춘 채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구불구불 미끄러지듯 이어지는 2차선 도로를 따라 보이는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병풍처럼 하얀 바위산 아래로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녹색의 침엽수림이 푹신한 융단처럼 깔려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무숲은 더욱 울창해진다. 그렇게 한 30여분쯤 달렸을까. 넓은 주차장과 예쁘장한 리조트, 콘도가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이 계곡의 진짜 용도를 깨달았다. 이곳은 겨울이면 세계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한다는 그 유명한 솔트레이크시티 스키장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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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코튼우드 캐년 스키장과 주차장. 여름인데도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 임은경

하늘을 찌를 듯 그림처럼 서 있는 초록색 침엽수들 사이로 잘 닦인 스키 슬로프가 수십 개는 되어보였다. 지금은 스키 시즌이 아니지만 몇몇 사람들이 리프트를 타고 산 위의 전망대로 올라가거나 리조트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여름 레저를 즐기고 있었다. 경치를 구경하다가 발견한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계곡 바로 위쪽에 솔트레이크시티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원이 있으니,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주변을 깨끗이 유지해달라는 당부였다.

동계올림픽 열렸던 스키장, 코튼우드 캐년

솔트레이크 계곡에 흐르는 물을 막아서 만든 인공 저수지. 이곳이 바로 소금 사막 위에 도시를 짓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든 생명수의 공급원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서부개척사는 관개의 역사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황금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떠나온 사람들에게 금보다 더 귀한 것은 바로 물이었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서부의 대부분이 원래 사막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도 라스베가스 같은 사막 한복판 도시는 물론, 4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도 네바다의 고산지대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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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코튼우드 캐년 스키장과 리조트 ⓒ 임은경

스키 리조트를 찍고 다시 되돌아서 나왔다. 이 길은 제한속도가 40마일로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차들이 그보다 훨씬 천천히 달린다. 이 경치와 이 깨끗한 공기를 두고 어찌 마구 액셀을 밟을까. 이곳은 솔트레이크 시민들의 레저 공간이다. 산길 치고는 제법 차량 통행이 많다 싶었는데 대부분 주말 나들이 차량이었다.

리조트 말고도 곳곳에 산길을 오목하게 파내 예닐곱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는데, 그런 곳은 어김없이 트레일 입구였다. 차를 세워두고 숲으로 들어가서 하이킹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도 '리틀 코튼우드 트레일'이라고 쓰인 작은 나무 간판 앞에 차를 세우고 숲길로 걸어 들어갔다. 산이 높지 않아 헉헉대며 올라갈만한 가파른 길은 없다. 그저 나무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평지를 걷는 느낌. 산 위쪽은 그냥 맨 바위가 드러나 있는 곳이 많아서 나무가 있는 아래쪽으로 길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쪽은 하얀 바위산인데 아래만 푸른 침엽수림이다. 이처럼 특이한 식생이 발달한 것은 아마도 물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이 흐르는 아래쪽에만 식물이 살 수 있으니까. 흰색에 가까운 흙은 바싹 말라서 마치 고운 모래사장처럼 발이 푹푹 빠진다. 이런 현상은 산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심하다. 어딜 딛어도 차진 습기가 올라오는 우리나라의 산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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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코튼우드 캐년 리조트. 산을 넘어가면 솔트레이크시티에 수도물을 공급하는 상수원이 나온다. ⓒ 임은경

위쪽은 바위산 아래만 침엽수림, 한국과 다른 식생

숲길 안쪽으로 방향을 잡고 얼마 가지 않아 캠핑장이 나왔다. 낮 시간인데도 벌써 텐트를 치고 앉아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불을 피우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지만 군데군데 돌을 쌓고 까맣게 불을 피운 흔적도 눈에 띈다. 캠핑장 옆으로 졸졸졸 물소리가 들리기에 따라가 보았다. 물이 어쩌면 이렇게 맑을 수가.

수천, 수만 년 계곡물에 씻기고 씻긴 둥근 돌들 위로 세찬 소리를 내면서 냇물이 흘러간다. 계곡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더운 날씨에도 계곡물만은 얼음처럼 차가운 것도 똑같다. 신이 나서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가 10초도 못 버티고 도로 빼내고 말았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나무 그늘이 만들어낸 서늘한 공기,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오후의 햇빛을 은은하게 투과시켜주는 나무들. 잠시 꿈을 꾸는 듯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을 쉬다가 일어났다.

나올 때 길을 헷갈려서 바로 지척에 있는 우리 차까지 오는데 20분을 넘게 헤맨 것만 빼면 다 좋았건만. 비슷비슷하게 생긴 길들에 갈림길까지 많아서 이 길인가, 싶어서 가다보면 방금 전에 지나온 곳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결국 지나가던 중년 부부에게 길을 묻고 나서야 처음에 들어갔던 큰길을 다시 찾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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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울퉁불퉁하지 않고 평지에 가깝다. ⓒ 임은경

리틀 코튼우드 캐년을 빠져나와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오려는데 바로 옆에 빅 코튼우드 입구가 있는 것을 그때서야 발견했다. 아직 해도 남았는데 안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이곳 역시 대부분 바위산인 것은 리틀 코튼우드와 비슷했으나, 확실히 덩치가 더 큼직큼직했다. 산 위쪽으로 드러난 바위의 색도 더 검었다. 지형도 이쪽이 훨씬 험해서 군데군데 바위를 깨고 길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딱 길을 낼 만큼만 바위를 파내고, 나머지 바위는 깨진 채 길 양옆에 그대로 서 있다. 원래 있던 것을 최대한 그대로 둔 것이다. 아기자기한 경치는 리틀 코튼우드가 더 예뻤다. 20분쯤 차를 몰아 들어가다가 차츰 해가 지기에 적당한 곳에서 그냥 되돌아 나왔다. 빅 코튼우드 역시 세계 정상급 스키장으로 유명한 겨울 레저의 천국이지만, 근처 가게에서 얻은 브로슈어를 보니 최근에 지방 정부에서 완공한 역사탐방로(Historic Walk)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깊은 산 아니라고 우습게 봤다가 길 헤매고

솔트레이크는 모르몬들만의 땅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살던 토착 원주민과 서부개척시대에 금을 찾아 이주해온 백인 이주민들도 섞여 있는데, 이런 지역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코튼우드 헤이츠(Cottonwood Heights)다.

가벼운 하이킹에 적당한 2마일(3.2km) 남짓의 '빅 코튼우드 캐년 트레일(Big Cottonwood Canyon Trail)에는 옛날 목공소와 광산을 비롯해 최초의 우체국, 교회, 학교 등 원주민과 광산 노동자, 덴마크 이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복원되어 있다. 만약 다음 기회(가 있을까?)가 있다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이 길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튼우드 캐년 입구에 있는 작은 몰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미국의 몰은 널찍한 주차장 둘레를 상점끼리 벽만 공유한 단층짜리 건물이 길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어디든 신축 건물만 지으면 제일 먼저 병원이 들어서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개인병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몰에 유일하게 입점한 병원은 치과(Dental Clinic)뿐이다. 이 몰은 아마도 이 근처 언덕 위의 부자 동네 손님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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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튼우드 캐년 입구에 있는 쇼핑몰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 임은경

세탁소, 스파, 네일샵, 커피점, 아이스크림가게가 있는 몰 한쪽에 자리한 몇 개의 식당 중에서 태국 식당에 들어갔다. 맥주 생각이 나서 블루문 한 병을 주문했는데, 역시 테이블에 나온 것은 3.2%짜리 밍밍한 맥주다. 먹을 것이 귀한 옛날에는 고깃국 대신 '소가 헤엄치고 간' 국을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유타의 음식점에서 '맥주병 안에 남겨진 희미한 홉의 냄새'를 찾아 헤맨 셈이다. 라스베가스의 마트에서 미리 IPA를 사오지 않았더라면 자기 전 침대맡에서 여독을 풀기 위한 '맥주 한 잔'의 여유마저 없을 뻔했다.

음식은 피곤한 하루를 달래줄 매운 국물을 기대하며 똠양꿍을 주문했는데, 채소는 아삭하니 적당히 익었고 큰 새우도 여러 마리 들어있었지만 정작 간이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손님도 별로 많지 않은데 종업원은 아무리 불러도 감감 무소식이다. 한참만에야 우리 테이블로 온 종업원에게 음식과 서비스에 대해 항의했더니 '추가로 주문한 팟타이는 값을 받지 않겠다'며 사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