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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9일 13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9일 14시 12분 KST

[18일간의 미국 서부 일주 ③]유타의 하이네켄은 알코올 3.2%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을 먹는 것은 모르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스미스가 교시한 '건강 수칙'에는 이밖에도 고기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것, 술과 담배를 금하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덕분에 모르몬교도들이 주로 살고 있는 유타 주(전체 인구의 90% 가량이 모르몬)의 암 발생률은 미국 평균보다 남자는 35%, 여자는 28%나 낮으며 심장병 환자도 절반 이하라고 한다. 유타 사람들, 풍부한 홉의 향이 살아있는 진짜 맥주 맛은 영영 모를 테니 그거 하나는 좀 안쓰러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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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창밖으로 내다본 라스베가스. 멀리 시가지와 도시를 감싼 바위산이 보인다. ⓒ 임은경

9월 9일 수요일. 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덕분인지 이날도 신기하게 아침 여섯 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 낮에 피곤하게 돌아다녀서인지 밤에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고, 덕분에 시차 피로 같은 것도 별로 없었다. 아침햇살이 스며드는 커튼을 열어젖히자 멀리 이 도시 시민들이 거주하는 주택 단지와 그 너머로 도시를 감싸고 있는 바위산이 눈에 들어왔다. 풀 한 포기 없는 그야말로 사막의 누런 돌덩어리 산이다.

건조지역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한국보다 훨씬 청명한 날씨에,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누워 있는 황토빛 바위산이 참 신비로워보였다. 1층 카페에 내려가서 '라바짜(Lavazza)' 커피와 함께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조식(사과, 머핀, 오렌지주스가 담긴 종이 박스)을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에 나와 앉아있는 것은 노인들뿐이다.

젊은이들은 늦은 새벽까지 영혼을 바쳐 놀다가 깊은 잠에 빠져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이날 라스베가스에 사는 종혁 씨의 친구와 만나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가 갑자가 약속이 취소되었다. 우리도 솔트레이크 시티까지 먼 길을 떠나야 하기에 서둘러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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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타에 들어서자 조금씩 푸른 풀과 나무가 보여 숨통이 트였다. ⓒ 임은경

다시 주 경계를 넘어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까지는 자동차로 약 8시간. 이날 오후 5시에 열리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9시에 라스베가스를 출발했다. 한 시간에 한번쯤 휴게소에서 쉬면서 부지런히 달렸다.

온통 사막이거나 바위산뿐인 네바다를 벗어나 유타 주에 들어서자 주변의 식생이 달라졌다. 키 큰 나무가 자라고, 초록색 풀이 뒤덮은 들판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푸른 들판 위에 지어진 집들은 평화로워보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사막에만 있다가 푸른색을 보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푸른 식물과 나무가 있어야 사람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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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멋있다고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정면에 보이는 산에서 산불이 난 것이다. 전방에 있는 고속도로 전광판에 산불을 알리는 공지와 함께 '신고하지 말라'는 문구가 떠 있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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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를 키우는 목장. 유타를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에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 양떼를 많이 봤다. 우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낮에는 가축을 넓은 초지에 풀어놓고 방목한다. ⓒ 임은경

점심 식사를 하려고 적당한 곳을 찾다가 'Good Family Dining'을 제공한다는 'Crazy Cow'라는 고속도로 옆 식당에 차를 세웠다. 동네마다 주유소마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웬디스, 타코벨 등 프랜차이즈 식당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패스트푸드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큼지막한 레몬 조각과 사워크림을 곁들인 피시앤칩스는 조금 짰지만, 양상추와 토마토, 오이피클, 통으로 자른 생양파 등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따로 썰어져 나온 머쉬룸 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양송이 버섯은 진한 버섯 향이 살아있었고, 채소들은 신선하고 아삭했다. 하지만 역시 양이 너무 많아서 남은 감자튀김은 'Doggy bag'을 부탁해 싸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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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식사를 한 고속도로 옆 식당 'Crazy Cow' ⓒ 임은경

미국까지 와서 반지하 방이라니

바쁘게 서둘렀지만 오후 다섯 시를 조금 넘겨서야 솔트레이크시티 컨벤션장에 도착했다. 동쪽으로 주 경계를 넘으면서 시간선(Time Line)을 지나는 바람에 실제보다 한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을 미리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참석한 에센셜 오일 국제 컨벤션은 일 년에 한번 열리는데 올해는 전 세계에서 2만 8천여 명이 참석했다.

물론 미국 참가자가 제일 많고, 호주와 유럽,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등에서 많은 사람이 이번 행사를 위해 솔트레이크시티로 날아왔다. 우리는 한국 참가자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예약한 시내 민박집으로 향했다.

부부 모두 아직 퇴근하기 전인지 집에는 어른은 없고, 열 살이 좀 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수줍게 우리를 맞아 방을 안내해준다. 작은 반지하 방이다. 미국까지 와서 반지하 방이라니. 처음에는 좀 실망했는데, 나중에 동네를 산책하면서 오해가 풀렸다. 이 동네는 미국의 다른 지역처럼 2층집이 아니라 반지하+1층짜리 집이 대부분이다. 1층엔 주방과 거실, 그리고 부부의 침실이 있고, 다른 곳 같으면 2층에 위치할 아이들 방이 그 아래층에 있다.

아마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추운 지역이라서 냉난방상의 이유로 그렇게 했으리라 짐작이 갔다. 이 집 역시 9월인데도 낮에는 종일 에어컨을 틀다가 밤이 되어서야 껐다. 솔트레이크시티는 1800년대 중반 모르몬교도들이 이주해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소금사막이었다. 건조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지하라고 습기가 차는 현상도 없고 오히려 쾌적했다. 도착한 날인 9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밤을 여기서 보냈는데 침대에 누우면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개운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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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박집 동네. 반지하+1층 구조의 낮은 주택들이 대부분인 거리에는 푸른 가로수가 울창해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조용하고 평화롭다.

9월 10일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 머리 감고 샤워하고, 위층 부엌에 올라가 통밀빵 토스트를 오븐에 구워 전날 사다둔 과일과 함께 먹었다. 통밀빵은 이집 주인 부부인 미치와 엔젤, 그리고 세 아이도 함께 먹는 것이다. '오호, 이집의 음식 취향이 우리와 비슷한 걸' 하고 반가웠는데,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을 먹는 것은 모르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스미스가 교시한 '건강 수칙'에는 이밖에도 고기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것, 술과 담배를 금하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덕분에 모르몬교도들이 주로 살고 있는 유타 주(전체 인구의 90% 가량이 모르몬)의 암 발생률은 미국 평균보다 남자는 35%, 여자는 28%나 낮으며 심장병 환자도 절반 이하라고 한다. 이들은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에 가까운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에센셜 오일 등 천연 의약품, 화장품 산업이 유타에서 유난히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 좋은데 우리 입장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런 종교상의 이유로 유타 주 내에서 판매하는 술의 알코올 도수가 상당히 낮다는 것이다.

맥주의 경우 라거는 3.2%, 에일은 4%까지만 허용하도록 주법으로 강제되어있어 어떤 맥주를 마셔도 심심하고 맹물 같았다.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등 전 세계에서 다 파는 맥주들도 이곳 슈퍼에서는 라벨에 모두 3.2%라고 찍혀있는 것을 보니 좀 신기하기도 했다. 와인을 비롯한 다른 술들도 다 이런 식으로 알코올 도수 규제가 있으며 독한 술은 아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유타 사람들, 풍부한 홉의 향이 살아있는 진짜 맥주 맛은 영영 모를 테니 그거 하나는 좀 안쓰러운 걸.

어제 집근처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라고 쓰여 있는 슈퍼 체인 '스프라우트(Sprout)'에 들렀다가 탐스러워 보이는 자두와 사과, 바나나를 사서 아침으로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어딜 가나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자두, 사과, 배, 복숭아, 수박, 포도, 멜론 등 과일별로 크기와 색깔과 종류가 각각 다른 다양한 종들이 있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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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트레이크시티 한 슈퍼마켓의 주류 판매 냉장고. 하이네켄, 코로나, 버드와이저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3.2%이다. ⓒ 임은경

나중에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을인데도 엄청난 면적에 걸쳐 노지 딸기가 자라는 것을 보고, 달리던 차를 멈춰 중남미계 농부의 밭에서 갓 수확한 딸기를 사먹었다. 400g쯤 되는 작은 바구니 하나에 2.5달러. 한국보다 훨씬 싸고 노지 딸기라서 맛과 향이 더 훌륭하다. 과일 한 가지만 봐도 미국이 과연 농업 대국이라는 것을 알겠다.

커다란 양파망에 넣어서 파는 오렌지는 어찌나 흔하고 싼지 낱개로는 팔지도 않는다. 우리가 개당 천 원씩 주고 사먹는 캘리포니아 오렌지는 미국에서 넘쳐나다 못해 외국에 수출하는 것이고, 품질이 훌륭한 정말 좋은 과일들은 대개 미국 내에서 소비하는 것 같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때우고 나갈 준비를 했다. 모르몬교의 금욕적인 생활습관 때문인지 이 집은 커피도 마시지 않아 티백에 담긴 진한 홍차를 우려서 한잔 마셨다. 미치가 엔젤을 '걸프렌드'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닌 것 같다.

거의 성인이 다 된 큰 딸은 미치의 아이고 그 아래의 아들과 딸은 엔젤의 아이인데 둘이 살림을 합친 지 얼마 안 된 듯, 거실 한쪽에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짐들이 쌓여 있고 주방도 어수선하다. 집이 지저분해서 미안하다고 엔젤이 거듭 사과하기에 "우리집은 이보다 훨씬 난장판이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다.

모르몬교 가르침 따라 소박하게 사는 유타 사람들

아침의 밝은 햇빛 아래서 보니 동네가 참 평화롭고 아름답다.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획이 나누어진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저마다 앞뜰에 파란 잔디밭을 가꾼 아담한 집들이 늘어서있고, 그 앞으로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무성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거리는 한적하기만 하다. 뒤뜰에 주차해둔 차를 타고 오전 8시부터 시작하는 컨벤션에 참석하기 위해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시내의 행사장으로 향했다.

이번 컨벤션은 솔트레이크시티 중심가에 위치한 농구경기장인 에너지 솔루션 아레나(Energy Solution Arena)와 솔트 팰리스 컨벤션센터(The Slat Palace Convention center) 두 곳으로 나누어 개최되었다. 어제 오리엔테이션에 늦는 바람에 미처 하지 못한 참가 등록을 하러 우선 컨벤션센터에 먼저 들렀다.

차에서 막 내리는데 종혁 씨가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단다. 그래서 내가 먼저 들어가서 등록을 하고 기다리기로 했는데, 컨벤션장이 너무 넓어서 만날 장소를 서로 착각하고 자꾸 엇갈리는 바람에 오전 세션을 거의 놓치다시피 했다. 내가 휴대폰 해외 로밍을 해가지 않아서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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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트레이크시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에너지 솔루션 아레나 농구경기장.

두어 시간 만에야 아레나 경기장 앞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까지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 아닐까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컨벤션 입장을 위한 목걸이 명찰과 플라스틱 팔찌를 받아 겨우 행사장에 들어갔다. 드디어 2만 명 이상의 수용 규모를 자랑하는 아레나 안으로 입장. 바닥에 위치한 넓은 중앙 무대와 거대한 네 개의 대형 화면, 드넓은 경기장을 아래서부터 위까지 가득 채운 사람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세 시까지 7,8개의 강연과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이날 점심은 우리를 미국에 초청한 패트릭 세디비 씨가 내기로 해서 다른 한국인 참가자 2~30명과 함께 근처의 이탈리안 식당인 '카페 몰리스'에서 식사를 했다. 파스타와 라자냐, 샐러드 등 한 끼 식사가 10~20달러 정도로 비싸지 않은데 비해 신선한 자연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의 수준은 일품이었다. 식후에 나온 커피도 맛이 훌륭했다.

웨이터에게 가벼운 레드 와인을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해서 시실리 와인도 한 잔 마셨는데, 꼭 물을 섞은 듯 너무 가벼운 바디감에 떫은맛이 강해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맛이었다. 이태리 식당답게 식사에만 점심시간으로 할당된 두 시간을 꽉 채우고 다시 아레나로 돌아가 오후 세션 강의를 들었다.

오후 세 시에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차로 약 30여분 떨어진 플레즌트 그로브에 있는 본사 건물을 방문했다. 올해 완공된 이곳은 물이 흐르는 정원과 방문자 센터, 사업자들을 위한 비즈니스 미팅 룸,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비롯해 대강당, 스파,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에센셜 오일 등 몇 가지 제품도 사고 부근을 구경하다가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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