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0월 28일 13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8일 14시 12분 KST

[18일간의 미국서부 일주②]자동차로 달린 네바다 사막, 척박한 땅에도 마을이

2015-10-24-1445671601-7657436-_20150908_153040.jpg

▲ 9월 8일 오후에 들어간 라스베가스 대로(Las Vegas Boulevard) ⓒ 임은경

맏아이가 양보해 준 방에서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곯아 떨어졌다가 아침 6시에 잠이 깼다. 보통 때 같으면 더 잤으련만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보니 어서 나가서 미국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졌다. 어제 들어올 때는 깜깜한 밤이어서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띄엄띄엄 자리한 다른 아파트들 말고는 주변이 거의 허허벌판이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고작 2~3층짜리 건물들이니, 마치 사막 한 복판의 작은 오아시스 도시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막이라는 표현은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 같으면 이른 새벽인데 쌀쌀하기는커녕 햇볕이 너무 쨍쨍하다 싶더니, 7시가 되자 뜨거워서 더 이상 밖에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야자수를 비롯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나무와 꽃들에 정신이 팔려있던 우리는 서둘러 김 목사 댁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9월에도 낮 최고 기온이 40℃까지 올라가는 지역이다. 토론토에 있다가 하필 가장 더운 8월에 이곳으로 이사 온 김 목사 가족은 지난 한 달간 더위 때문에 심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더위는 저리 가라다. 에어컨이 없으면 도통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집에 들어가니 소녀 같은 긴 생머리에 수줍은 미소가 예쁜 사모님이 우리를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이미 등교했고, 둘째와 막내가 차례로 아빠와 함께 집을 떠났다. 목사 부부와 우리까지 넷이서 햇빛 잘 드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콩나물밥과 쇠고기 볶음, 내가 좋아하는 깻잎 절임 등 밑반찬과 김치가 갖춰진 완벽한 한식 밥상이다. 식재료는 한인 마트에서 사 오는데, 한국에서 먹는 것은 대부분 여기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깻잎 장아찌나 콩자반, 마늘쫑 볶음 같은 밑반찬도 한국과 똑같이 만들어 판다. 오랜만의 만남을 감사하고 우리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목사님의 기도가 끝난 후 맛있게 밥을 먹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때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아파트 공용 수영장 앞에서 야자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다음 날 숙소를 예약해 둔 라스베가스로 출발했다.

2015-10-24-1445671762-7186656-_20150909_102721.jpg

▲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의 사막을 가로질러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 임은경

치노힐스 시내로 접어드니 주차된 차들 중에 앞 유리창을 은박 돗자리 같은 것으로 가려놓은 차들이 간간이 눈에 띤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로 대시보드가 녹아서 망가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Non GMO(유전자조작식품)' 식재료만 쓴다는 멕시코 식당 치폴레(Chipotle)에서 점심으로 먹을 부리토를 하나 사서 차에서 나눠먹었다. 미국 식당의 1인분은 우리의 2인분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1인분을 시켜서 둘이서 나눠먹으면 양이 꼭 맞았다. 예전에 미국에 왔다가 패스트푸드점 콜라 컵의 크기를 보고 놀란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 사람이 마시는 콜라 컵의 크기가 족히 1리터~1.5리터 용량은 되어보였으니 말이다. 미국인들은 정말 많이 먹는다. 그러니 이렇게 뚱뚱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낮 최고기온 40℃, 가뭄 심각한 LA

라스베가스까지 차로 4시간. 캘리포니아에서 주 경계를 넘어 네바다로 가는 것이다. 구글 지도앱이 계속 길 안내를 해주었지만, 김 목사님이 미국 전역이 상세하게 나온 지도책 'Atlas'를 빌려주어서 그것도 유용하게 썼다. 고속도로(Freeway)로 접어들어 내내 북동쪽으로 달렸다. 미국의 고속도로라고 하면 사방으로 지평선만 보이는 광활한 대지에 딱 한 줄 2차선 도로가 나 있고, 그 위에 차라곤 우리 차 한 대뿐인 적막하고 쓸쓸한 풍경을 상상했는데(내가 미국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일 게다), 웬걸 앞뒤로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차들에 제한 속도는 시속 80마일(약 130km/h)이지만 웬만하면 140km/h씩은 밟아주시는 바람에 큰 트럭이라도 옆으로 지나가면 조금 무섭기도 했다.

고속도로에 트럭은 또 왜 그리 많은지. 트럭 한 대에 두 개나 세 개의 짐칸을 연결해서 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반 승용차들도 유홀(U-Haul)이라고 부르는 승용차 전용 짐칸을 뒤에 달고 자전거나 오토바이 등 물건을 운반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승용차 뒤에 달 수 있는 유홀의 사이즈는 다양한데, 심지어 이사를 할 때 커다란 유홀을 빌려 이삿짐을 싸서 넣고 자가 운전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큰 트럭들은 대부분 '탑차'라고 부르는 직사각형 모양의 높은 짐칸을 장착한 것이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게 넘어지기라도 하면 옆에서 달리던 승용차쯤이야 그 자리에서 빈대떡이 되고 말리라. 나중에 네바다에서 유타로 넘어가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실제로 트럭과 승용차가 충돌한 교통사고 현장도 목격했다. 뒤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앞의 트럭을 들이받은 사고였는데 승용차는 운전석을 포함한 앞쪽 절반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싫증나면 가져간 USB를 차에 꽂아 음악을 듣기도 하고, 이따금 사진도 찍었다. 덥고 햇볕이 너무 뜨겁긴 했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쾌청한 하늘에 구름도 눈부시게 하얗고 선명하다. 산이며 들에 자라는 것들은 기껏해야 사람 허리 높이밖에 안 되는 키 작은 사막 식물들인데, 그냥 눈으로 봐도 수분기 없이 빼빼마른 단단한 느낌이었다. 마치 폭탄 맞은 머리(?)처럼 사방으로 둥글게 가지를 뻗은 모습은 선인장을 연상케 했다.

그런 식물들도 그나마 듬성듬성 돋아나 있고 나머지는 그냥 회색의 맨 땅이어서 어디를 가나 빈틈없이 초록색 풀이 뒤덮은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랐다. 흙에도 물기라곤 하나도 없어서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처럼 푹푹 밟혔다. 이 지역이 원래 건조한 곳이기도 하지만, 요새 들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계속되어 캘리포니아 주 전체가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다고 한다. 내 집 앞 잔디에 물을 주는 것도 주 2회를 초과하면 벌금을 내야하고, 식당들은 '주 정책으로 인해 따로 요청을 할 경우에만 물을 드린다'고 써 붙여 놓았다.

2015-10-24-1445671850-6006460-_20150908_141612.jpg

▲ 네바다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길. 척박한 사막에도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산다. 미국의 도로는 보통 상행선과 하행선이 일정한 간격을 띄우고 떨어져 있다. ⓒ 임은경

화장실을 가기 위해 중간에 두 번쯤 휴게소에 들렀다. 미국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모두 무인휴게소다. 화장실과 음료수 자동판매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아담하고 예쁜 건물에 화장실도 깨끗하다. 이용객들은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용변을 보고, 휴게소 앞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며 지친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미국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느낀 점은, 화장실이 참 깨끗하고 화장지나 손 닦는 휴지가 잘 구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 식당과 술집 화장실은 대개 열악하고 지저분하고 화장지도 없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냄새 나는 화장실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이용객이 많은 공원 등의 공중화장실도 깨끗한 편이고, 편의점이나 레스토랑 화장실은 더 깨끗하다. 딱 한번 어느 시골 주유소에서 파리가 몇 마리 꾀는 화장실을 만나기는 했다. 미국인 여성 두 명이 화장실 문을 열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나가는 것을 보고 나 혼자 용변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선 이런 화장실이 보통인데 말이지.

주 전체가 사막이나 다름없는 네바다가 가까워지자 에어컨을 틀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늘 하나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햇볕이 드는 쪽 자리에는 앉아있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도 드문드문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 작은 마을은 100여 호도 안 되어 보였는데, 땅속으로 수도관을 끌어와서 건물을 짓고 마을을 조성해서 산다고 한다. 건물마다 에어컨 시설은 필수다.

뜨거운 사막 위 마을에도 사람이 살고

네바다 주 경계를 지나자마자 카지노 간판들이 눈에 띤다. 네바다는 주 전체에 카지노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꼭 라스베가스뿐만 아니라 길가의 작은 마을들, 여행객이 차를 몰고 지나가다 들를 만한 주유소, 식당, 편의점까지 카지노가 없는 곳이 없었다. 물론 딜러가 있는 정식 카지노는 아니고 슬롯머신 등 몇 가지 게임 기계가 설치된 소규모 카지노들이다.

2015-10-24-1445671951-7709808-_20150908_221317.jpg

▲ 길이 400미터, 폭 20미터의 LED 천장이 하나의 화면이 되는 라스베가스의 프리몬 스트리트 ⓒ 임은경

네 시간여를 달린 끝에 드디어 라스베가스에 입성했다. 번쩍번쩍, 건물 전체가 황금빛이거나 기하학적으로 휘어진 호텔들. 멀리서 봐도 남다른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이곳이 라스베가스임을 한눈에 알린다. 관광객들이 장난스런 즉석 결혼식을 올린다는 작은 교회당과 수백 그루의 야자수가 일렬로 심어져 있는 라스베가스 대로를 지나 우리가 예약한 숙소인 '다운타운 그랜드'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방에 들어갔더니 TV 화면에 우리의 이름과 함께 환영한다는 문구가 떠 있다.

피로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 6시. 라스베가스의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마침 호텔 근처가 라스베가스의 발상지인 다운타운이었다. 천장 전체를 뒤덮은 LED 쇼로 유명한 프리몬 스트리트(Fremont Street)가 바로 옆에 있어서 구경을 나갔다. 라스베가스에는 하루 저녁만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신시가지 격인 스트립(strip)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미라지 호텔의 화산 폭발 쇼나 하얀 호랑이, 실내 열대 우림,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 쇼 등 유명한 볼거리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 번 방문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프리몬 스트리트를 구경하는 데만도 하루 저녁이 다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프리몬 호텔, 골든 너겟 호텔, 퀸즈 호텔, 호텔 D, 비니언즈 카지노 등 이 거리에 위치한 유명한 업소들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경쟁적으로 뽐내며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호텔은 1층 입구가 카지노로 되어 있고, 어서 들어오라는 듯 저마다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다. 수백평 규모의 널찍한 카지노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것도 최근 경제 불황 탓에 손님이 줄어든 것이고 경기가 좋을 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2015-10-24-1445672024-2494299-_20150908_192632.jpg

▲ 라스베가스의 발상지인 다운타운의 화려한 옛날식(?) 네온사인. 호텔들에서 운영하는 1층 카지노에 손님을 끌기 위한 것이다. ⓒ 임은경

붉은 카펫이 깔린 실내에는 한국의 오락실 게임기처럼 생긴 수많은 게임기가 가득했다. 모두 버튼을 누르면 따거나 잃은 액수가 화면에 숫자로 표시되는 자동화된 방식이다. 손으로 당겨서 동전이 우수수 떨어지는 슬롯머신은 추억의 영화 속에나 등장할 뿐,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게임기의 종류도 무척 다양했는데, 심지어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는 네 명의 여주인공을 소재로 하는 게임도 있었다. 딜러들이 손님을 상대로 카드 게임을 하거나 룰렛을 돌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거리도 온통 볼거리다. 마술, 댄스, 난타 공연 등 발 닫는 데마다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고, 토플리스에 야한 란제리를 걸친 여자나 근육질의 젊은 남자들이 관광객과 포즈를 취하고 즉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웃통을 벗어제낀 젊은 남자와 선정적인 포즈를 취한 뚱뚱한 백인 아줌마는 좋아서 입이 벌어지고, 그 모습을 촬영하는 남편도 따라서 웃는다. 군데군데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각종 밴드 공연도 펼쳐졌다. 고개를 들면 프리몬 스트리트 천장을 끝에서 끝까지 관통하는 긴 줄에 사람이 매달려 마치 공중 비행을 하듯 날아가는 놀이기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8시 정각이 되자 갑자기 그 화려하던 네온사인들이 일제히 뚝 꺼졌다. 프리몬 스트리트 전체를 덮고 있는 길이 400미터, 폭 20미터의 LED 천장에서 진짜 쇼가 시작되는 것이다. 거리 전체를 덮은 천장이 하나의 거대한 화면이 되는 이 전광판 쇼는 스트립에 손님을 빼앗겨 침체되어 가는 다운타운의 인기를 다시 살리고자 1995년 이 지역 호텔들이 연합해 4천만 달러를 들여 만든 다운타운의 명물이다.

모든 공연이 36대의 컴퓨터로 조종된다는 이 쇼는 대형 화면의 화려한 영상과 218개의 스피커와 54만 와트(Watt)의 사운드 시설에서 나오는 음악이 12분간 계속된다. 2004년에는 LG전자에서 기존의 전구를 1,250만 개의 LED로 교체, 선명한 화면과 함께 다이내믹한 사운드가 한층 생생해졌다. 이 시간동안 천장 화면을 제외한 거리의 모든 불이 꺼지고,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를 껴안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2015-10-24-1445675940-6291134-_20150908_202337.jpg

▲ 프리몬 스트리트 군데군데 설치된 무대 위에서 밴드 공연이 한창이다. ⓒ 임은경

LG에서 시공한 라스베가스 천장 LED 쇼

세 시간 가량 걷기만 했더니 너무나 피곤했다. 호텔 앞 길거리 바에서 파는 칵테일과 맥주를 사들고 중국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미국은 중국 음식점이 정말 흔하다. 한국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중국집 간판을 걸지 않았어도 중국 요리를 종류별로 바에 진열해놓고 2~3가지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작은 가게도 많다. 그리고 어디나 그렇듯, 중국 음식은 값이 싸다. '치킨 오렌지'라는 음식은 밀가루를 묻혀 튀겨서 달콤한 과일 소스로 버무린 것인데, 재료만 닭고기일 뿐 한국의 탕수육과 비슷해서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나중에 한국의 탕수육과 비슷한 '스윗 앤 사워'라는 메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집에 가면 그것만 시켰다.

밥을 먹고 기운을 보충하고 나서 이번에는 프리몬 스트릿의 반대편 거리로 나서봤다. 이쪽은 호텔이 없고 작은 카지노 영업소들만 있는 거리다.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불빛도 별로 없는 썰렁한 길가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카지노들의 유리문 앞에는 '스트립의 카지노보다 이곳의 베팅 성공률이 몇 퍼센트 높은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적혀 있었지만, 가게 안의 손님은 많지 않았다.

모든 장사가 다 그렇지만, 카지노 산업이야말로 특히 경기의 호․불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쓰러지는 것은 바로 이런 소규모 영업장들이다. 휘황찬란한 호텔을 운영하는 스트립의 거대 자본들은 어떻게라도 한동안 버틸 힘이 있을 테니까. 이 거리에 카페와 바들이 있는 작은 공원 같은 몰이 있었는데, 들어가려니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제시를 요구한다.

숙박업소 천지인 라스베가스에는 화려한 호텔도 많지만, 미국인들이 로지(lodge)라고 부르는 소규모 모텔들도 적지 않다. 라스베가스 호텔들의 숙박료가 워낙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그 로지들의 숙박료도 호텔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럼 대체 어떤 사람들이 왜 호텔이 아니라 로지에 묵을까.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이 현금을 주고 이용하는 곳이 바로 그런 모텔들이란다. 호텔 예약은 보증금(deposit) 제도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신용카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달리 아무에게나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는 미국에서 신용카드가 있다는 것은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 혹은 신분 증명을 의미하는 셈이다.

'밤의 도시'인 라스베가스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다음 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는 자정이 되기 전에 호텔로 돌아왔다. 밖의 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밴드의 음악 공연 소리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한창이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프리몬 스트리트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참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용 후기를 꼼꼼히 읽고 숙소를 고른 덕분이다. 침대 맡에는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3M 실리콘 귀마개 세트가 놓여있었지만, 눕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그것을 사용해볼 새도 없었다.

2015-10-24-1445676093-2659296-_20150908_214256.jpg

▲ 인적이 드문 프리몬 스트리트 반대편 거리의 공원 겸 쇼핑몰 ⓒ 임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