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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6일 09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6일 14시 12분 KST

[18일간의 미국 서부 일주①]중국 공항 정수기에는 냉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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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4일 아침 요세미티 고도 1만 피트 정상의 한 호수(Mirror Lake)에서 ⓒ 임은경

올해 9월 7일부터 24일까지 18일 동안 미국 서부와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애초의 여행 목적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국제 컨벤션에 참가하는 것이었지만, 기왕 미국에 가는 김에 일정을 늘려서 미국 서부 일대를 여행하기로 했다. 마침 비행기를 갈아타는 중국 상하이에서는 비자 없이도 최대 72시간 동안 체류할 수 있어서, 귀국 길에 상하이도 둘러보기로 했다.

9월 7일 인천 공항을 출발해 상하이를 거쳐 같은 날(미국 시각) 저녁 미국 LA 공항에 도착, 9월 8일 라스베가스, 9월 9일부터 12일까지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13일에 네바다 서부로 이동해 14일 요세미티 국립공원, 15일 샌프란시스코, 16일 산호세와 몬트레이, 17~18일 피스모비치, 19일~20일 LA, 21~22일은 상하이로 이동, 23일 상하이 관광을 하고 24일 오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시간이다. 때문에 여행자는 평소보다 눈이 커지고, 귀가 열리고, 감각이 살아난다. 몇 달씩 오랜 여행을 떠나는 흔치않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여행이라는 일탈의 시간이 주는 삶의 가르침을 나도 조금 배운 것 같다. 겉으로는 이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안의 무엇인가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크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잠도 더 잘 잔다. 언짢은 일들을 오래도록 곱씹는 버릇이 사라지고, 이내 잊고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쥐고 있던 온갖 신경 쓸 일이나 걱정할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여행의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말고는. 저 바다 건너편에 지금껏 본 적 없던 넓은 세계가 있고,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18일간의 새로운 만남들을 통해, 나는 한국에만 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다시 서울 집에 앉아 2주반 동안 쌓인 빨래가 세탁기에서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적기 시작한 지난 여행의 기록을 여기에 싣는다.

9월 7일 월요일, 여행 첫날

출발 당일, 멸치와 다시마를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감자와 양파, 그리고 마당 텃밭에서 따온 호박과 고추를 썰어 넣은 된장국으로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저녁 6시 반 비행기여서 4시쯤에는 공항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전날 챙기지 못한 짐을 싸느라고 3시가 다 되어서야 남편과 집을 나섰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110V 전압을 쓰기 때문에 집에 있던 어댑터도 두 개를 챙겼다. 둘 중 하나는 내 것인데 아마 2~30여 년 전 한국이 110V를 병용하던 시절에 내가 쓰던 것일 게다.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인가. 전날 밤 적어둔 긴 목록에 있는 물건을 다 채워 넣고서 드디어 가방을 닫고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는 9월에도 아침저녁으로 춥다고 해서 챙긴 두툼한 스웨터와 바지, 재킷은 결국 입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갖고 돌아왔지만. 쓰지도 않을 거면서 부피만 차지하는 그런 짐들을 좀 줄이면 좋았겠지만, 멀리 떠나는 여행이 늘 예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탔다. 서울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요금도 4,150원으로 저렴한데다 지하철, 버스와 환승 할인까지 적용된다. 출발 전날까지 밀린 일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했던 우리는 공항철도를 타고서도 여행 기간 국내 휴대전화와 집에서 쓰는 인터넷을 일시 정지시키고, 미국에서 탈 렌터카 예약을 재조정하느라 각자 바빴다. 나는 내년 초 출간될 책 때문에 인천 공항에서 출판사에 전화를 하고 나서야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났다.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는 상하이를 거쳐서 LA로 날아가는 중국 동방항공(China Eastern).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고, 보안검색대를 거쳐 출국 심사를 마치니 드디어 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공항 면세점 앞을 지나 탑승구로 향하는 길.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만큼 더 가슴이 설렌다.

비행기 이륙이 지연되어 6시 반에서야 탑승을 시작해 저녁 7시에 인천 공항을 출발했다. 상하이에서 우리가 갈아탈 비행기 출발 시각이 저녁 9시(한국시각 10시)라서 환승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표를 판 항공사 책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비행을 즐기기로 했다. 승객을 모두 태우고 문을 닫고, 서서히 후진을 시작하는 비행기. 공항 활주로를 따라 느리게 움직이던 비행기가 어느 지점에 딱 멈춰 섰다. 이륙 직전의 순간이다. 잠시 후 '위잉' 하는 커다란 소리와 기체 전체가 떨리는 진동과 함께 급격하게 출력을 올리며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 비행기는 이내 거짓말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1초, 2초, 3초....... 공항 건물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멀어지면서 고층 빌딩들이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해외에 나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듯 가장 짜릿하고 스릴 넘치는 순간.

인천→상하이 구간 동방항공은 좌석에 개인별 TV도 없는 작은 비행기였다. 하긴 총 비행 시간이 한 시간 반도 안 걸리니 거리로 따져도 거의 국내선이나 다름없다. 얼마나 오래된 비행기인지 좌석 팔걸이에 재떨이가 달려 있고(비행기에서 흡연이 허용되던 때가 언제더라?) 화장실도 꽤나 지저분했다. 국제선이라고 식사가 제공되긴 했지만 종이 박스에 담긴 도시락 수준이다. 식사 후 커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제공되는 음료는 물 뿐이란다. 한국 시각으로 저녁 8시 반, 현지 시각으로 7시 반에 상하이 푸둥 공항(PVG)에 도착했다. 이미 날이 어두워 깜깜했지만 여기저기 켜진 조명만으로도 공항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대한 활주로의 크기는 인천 공항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활주로를 따라 끝없이 뻗어있는 조명등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야경이 인상적인 공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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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 푸둥 공항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의 물을 받아 컵라면을 먹는 남자 ⓒ 임은경

공항 규모에 비해 갈아타는 것은 거리도 멀지 않고 수월했다. 나중에 귀국할 때 밝은 햇빛 아래서 보고 알았지만, 이 공항은 활주로의 크기에 비해 막상 건물은 그리 크지 않았고 입출국 터미널도 두 군데밖에 없었다. 잠시 기념품점 구경도 하고 9시에 출발하는 LA행 비행기에 늦지 않게 탑승했다. 아름다운 중국산 실크와 온갖 종류의 차, 상하이 동물원의 마스코트인 판다 인형, 심지어 북한산 '고려 인삼'까지 파는 가게들에 눈길이 갔지만 2주 뒤 상하이 방문을 기약하며 대충 일별하는 것으로 끝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푸둥 공항에서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정수기에서 나오는 식수에 냉수가 없고, 따뜻한 물(溫水, warm)과 뜨거운 물(熱水, hot) 두 가지만 나온다는 것이다. 뜨거운 물의 온도는 96℃. 심지어 이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인천공항만 해도 식수를 받으면 무조건 차갑게 냉장된 물인데. 중국인들은 차 문화가 발달해서 좀처럼 찬 물을 마시지 않는가보다 싶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제공하는 것도 언제든 차를 우려서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인 것 같다.

온수와 열수 두 가지만 나오는 상하이 공항 정수기

상하이→LA 구간 비행기는 훨씬 크고 좋은 A330이었다. 가운데 줄은 네 좌석이지만 맨 왼쪽과 오른쪽 줄은 각각 두 좌석으로 A380보다는 좀 작았다. 와인, 맥주, 주스, 커피, 홍차 등 음료와 두 가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식사도 나왔다. 똑같은 항공사인데 승무원들도 이전 비행기에 비해 훨씬 친절하고 승객을 대하는 태도가 여유롭다. 아마 어느 정도 비행 경력이 쌓여야 장거리 국제선을 타도록 하는 것 같다. 좌석에 달린 개인별 TV는 영화, 드라마, 게임, 음악, eBook, 운항 지도 등을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서 열 시간을 넘게 가는데 TV마저 없다면 장거리 비행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승무원과 항공사의 몫일 것이다. 승무원들의 친절한 태도를 포함한 소위 '기내 서비스'라는 것은 이 때문에 제공되는 것이리라.

기내 서비스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행의 한 즐거움이지만,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시스템이다. 돈을 더 냈다는 이유로 언제나 먼저 타고 먼저 내리는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석 제도도 그렇다. 공항에는 언제나 퍼스트클래스 라운지가 따로 있고, 심지어 공항의 퍼스트클래스 체크인 카운터 앞에 소위 '레드 카펫'이라 불리는 붉은색 카펫을 깔아놓는 경우도 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철저하게 시스템화 된 첨단 자본주의의 한 일면을 보는 일이다.

비행기 이륙 후 3~40분쯤 지나서 저녁식사(또는 야참?)가 나왔다. '피쉬 라이스(Fish Rice)'를 선택했더니 장어덮밥이다. 중간에 한숨 자고 다시 내릴 무렵에 먹은 아침식사(미국 시각으로는 다시 저녁식사?)는 '포크 라이스(Pork Rice)'와 '비프 누들(Beef Noodle)'을 하나씩 시켜 둘이 나눠먹었다. 곁들여 나온 차가운 훈제연어 샐러드도 괜찮았다. 비행기에서 먹는 식사는 이상하게 탈 없이 소화가 잘 된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한동안 소화불량을 겪었던 나였는데, 두 끼의 기내식을 먹고 나서 속이 편안해 잠을 잘 잤다. 한 끼 당 1만 원 이상의 금액이 책정되는 기내식은 배탈이 생기지 않도록 재료나 조리법 등을 세심하게 연구해서 만든다고 한다.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곤란할 테니까.

앞좌석 등받이에 붙어있는 터치스크린을 이리 저리 눌러보다가 한국 영화도 있어서 '타짜 2'를 봤다. '아시아 영화' 리스트에 한국 영화가 꽤 많았다. 게임도 종류가 많았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아는 게임인 '테트리스'를 했다. TV set 아래 달려 있는 리모컨으로 좌우 방향 조절, 블록 회전, 빠르게 내리기 등 모든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어려워지고 흥미진진해지는 한국의 테트리스 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레벨 업'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끝없이 떨어지는 지루한 블록 맞추기의 반복에 싫증이 나서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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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본 LA 시내 전경. 우측 상단 다운타운 쪽에 보이는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고층빌딩이 거의 없다. ⓒ 임은경

미국 전자비자 ESTA,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수월해

12시간 가까이 동쪽으로 시간을 거슬러 날아갔다. 상하이는 제주도보다 훨씬 남쪽이라서 우리나라 상공은 지나지 않고 곧장 태평양 바다 위를 비행했다. 드넓은 태평양은 가도 가도 깜깜한 밤이다. 마침내 긴 비행을 마치고 LA 공항(LAX)에 도착했을 때도 같은 날인 9월 7일 저녁 6시였다. 9월 7일 밤 9시가 조금 넘어 푸둥 공항을 출발했으니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온 셈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LA는 그 높이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면적이 넓었다. 소위 '베드 타운(Bed town)'이라 불리는 10여 개의 위성도시까지 합치면 경기도만한 넓이라고 한다. 대도시이지만 고층 빌딩은 거의 눈에 띠지 않았다. 땅이 충분한데 굳이 위로 쌓아올릴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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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LA 시내 전경 ⓒ 임은경

미국은 비자 면제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대신 이스타(ESTA, 미국전자여행비자)라는 전자 비자를 일인당 14 달러의 수수료를 내고 발급받아야 한다. 전처럼 미 대사관 담벼락을 따라 긴 줄을 서는 대신 인터넷으로 비자를 받는 것이다. 그래도 입국 심사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미국 내 체류할 주소지를 대고, 심사대 앞에 설치된 작은 카메라로 즉석 얼굴 사진을 찍고, 손가락 지문을 찍는 것으로 끝이었다. LA 공항은 10여 년 전 기자 시절에 멕시코와 미국 취재를 하면서 잠시 들렀다 간 적이 있다. 그때 한국어로 방송이 나오는 것을 듣고 어리둥절했는데, 지금 다시 봐도 미국의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백인보다는 동양인과 중남미계가 많다. 공항의 규모도 다른 국제공항들에 비해 매우 작은 편이다.

미국에서 쓸 한 달짜리 휴대전화 유심 칩을 공항에서 구입하고, 이어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20분쯤 떨어진 렌터카 사무소로 향했다.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 알라모(Alamo) 렌터카에서 닛산의 중대형(Full Size)급인 짙은 회색의 알티마(Altima) 승용차를 빌렸다. 2주 이상 미국 전역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므로 소형차보다는 안정감 있는 중형차가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첫날 숙소는 LA 외곽의 치노힐스(Chino Hills)에 있는 남편의 대학시절 후배 김창섭 목사의 집. 구글 지도앱에 주소를 입력하고 40여분 밤길을 달려 찾아갔는데 한국의 내비게이션 못지않게 정확하고 우리말 음성 안내까지 나왔다. 이 구글 지도앱은 이후 미국 여행 내내 우리의 유용한 동반자가 되었다. 실시간 교통 상황을 반영해 우리를 더 빠른 길로 안내하기도 했다. 대중교통이 갖춰지지 않아 자동차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미국에서 이 앱이 없었다면 많은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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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공항 국제선 입국장 로비. 다른 도시의 국내선 공항 로비보다 작은 듯하다. ⓒ 임은경

김 목사의 가족은 원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십여 년 거주하다가 국경을 넘어 이곳으로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지인의 집에서 편하게 하루를 쉬고, 이튿날 아침에는 고맙게도 한식 밥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면 바로 기절이라도 할 만큼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끼리 그냥 잠만 잘 수 있나. 자정이 가깝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등학생 맏이와 중학생, 초등학생 세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 목사네는 캐나다에서 우리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정부의 양육 보조금을 받았으나 미국에 와서는 그것이 뚝 끊겨서 고민이라고 했다. 아이들 등하교 때 타는 스쿨버스도 한 달에 260달러나 해서 둘째와 막내는 아빠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큰 아이는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 다닌단다.

부담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목사 가족의 집은 2층짜리 건물 한 동에 네 세대가 사는 20여 동 규모의 작은 콘도형 아파트인데 한 달 월세가 2천5백 달러다. 우리 돈으로 3백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방이 세 개에 부엌 겸 거실이 있는 실내 면적은 30평 쯤 되어 보인다. 한국 집값만 비싼 줄 알았더니 미국 집세가 이렇게 비쌀 줄이야.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미국도 집값이 비싼 캘리포니아 북부의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실리콘밸리를 포함하고 있는 만(灣) 지역)의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같은 도시들은 방 하나짜리(One Bedroom) 아파트가 50만 달러(우리 돈 약 6억 원), 1에이커(약 1천200평) 대지에 지은 저택 한 채가 5백만 달러(우리 돈 약 60억 원)까지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물가는 우리와 비슷해 보였지만, 비싼 집세에 자동차까지 가족 수대로 있어야 하니 미국 살이도 만만치는 않겠다 싶다.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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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첫날밤을 보낸 LA 외곽 치노힐스의 콘도미니엄 아파트 ⓒ 임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