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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0일 06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30일 14시 12분 KST

북촌 머슴 하랬더니 안방마님 노릇

지난달 개소한 한옥지원센터에 들렀더니 널찍한 한옥이 텅 비어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안쪽 방문을 두드리니 서류작업을 하던 직원이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한다. 안내책자 하나 달랬더니 "없다"며 문을 닫고 쑥 들어가 버린다. 잡상인을 내 모는 태도다. 서재로 들어서니 '반송재 독서루는 북촌주민 김홍남 박사(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기증도서로 이루어진 마을도서실'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그제야 이곳이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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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권문세족지였던 북촌에 반듯한 한옥 한 채 짓고 사는 것이 호사로 여겨지는 요즘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 지역에 매입해 공들여 지은 한옥이 몇몇 공무원들의 별장지가 된 모양새다.

지난달 개소한 한옥지원센터에 들렀더니 널찍한 한옥이 텅 비어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안쪽 방문을 두드리니 서류작업을 하던 직원이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한다. 안내책자 하나 달랬더니 "없다"며 문을 닫고 쑥 들어가 버린다. 잡상인을 내 모는 태도다.

한옥지원센터 옆에는 '마을문고'라는 현판을 단 정원이 예쁜 한옥이 마련됐다. 힐끗 창을 들여다보니 젊은 여자가 뭔가 열심히 쓰는 듯 기척을 모른 척 한다. 작가의 작업실에라도 잘못 들어왔나 싶어 조용히 나가려다가 싸리비를 들고 나오는 관리인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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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오셨다"고 부르자 여자가 마루 문을 열다 만 듯 젖혀놓고 얼굴 볼 새도 없이 역시 냉큼 방문을 닫아버린다. 방해꾼이라도 만났다는 듯 불손하다. 도서전을 알리는 입식 현수막이 바람에 쓰러져 바닥에 처박혀 있는데 살펴보는 이도 없다.

서재로 들어서니 '반송재 독서루는 북촌주민 김홍남 박사(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기증도서로 이루어진 마을도서실'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그제야 이곳이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본래 마루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안 보이는 것이 역시나 홍보는 전혀 안 된 채 한 여직원의 독점 사랑채가 된 꼴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북촌문화센터 안에 입점한 기념품 가게 북촌상회 페이스북에 개소식 날 박원순 시장이 왔다며 자랑하는 사진이 올라있는 게 전부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북촌문화센터 사무실에도 책상과 의자는 여럿인데 일과시간임에도 자리를 지키는 이는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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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머슴 노릇을 하라고 파견해놨더니 공공시설을 독차지하고 안방마님 흉내를 내고 있다. 그나마 양반문화의 중심지인 북촌까지 들어와서 손님맞이 하나 제대로 못한다. 그냥 지나가는 과객도 모셔 대접하는 것이 우리 전통문화 아니었던가. 응접까지 바라지 않아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공무원들의 자세까지 이러니 원주민들의 서울시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북촌 한 귀퉁이에 북촌 지구단위계획해제 비상대책위원회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살기 좋은 북촌마을이 서울시의 잘못된 정책으로 죽어가고 있다", "주민의 의견이 무시된 관광객 편의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서명을 받고 있다.

개·보수 비용 현실화와 서류 간소화 등 한옥 지원강화, 서울시가 매입한 공공 한옥의 투명한 고시·공고와 운영을 요구하는 항목도 들어 있다. 개소식을 떠들썩하게 한 한옥지원센터와 마을문고가 텅 비어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통신사 뉴시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