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9월 14일 10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4일 14시 12분 KST

이준익 감독이 이야기한 '동주'

'왕의 남자' 이준익(56) 감독이 16일 개봉하는 '사도'에 이어 올해 말 한 편의 영화를 더 선보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1917~1945)의 반생을 그린 영화 '동주'다. 지난 3월말~4월말 한 달간 5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대세배우 강하늘(25)이 윤동주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12일 윤동주 서거70주기를 맞아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열린 2015 윤동주문학제 두 번째 날 초청강연을 맡은 이준익 감독은 처음으로 영화 '동주'에 대해 상세히 입을 열었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어 한 번도 영화화되지 못했던 윤동주의 이야기는 이 감독에 의해 어렵게 영상화가 이뤄졌다.

2015-09-13-1442147169-3678280-0055fe2d320a3f0e99f7d81c4123a122310b3387.jpg

◆ 어떻게 만들게 됐나 = 몇 년 전부터 찍겠다고 맘을 먹고 있었다. 저예산 영화 '러시안 소설' 등의 각본·감독을 맡은 후배 신연식(39)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윤동주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데 바빠서 몰입을 못하고 있다"하자 신연식이 쓰겠다고 해서 만들어지게 됐다. 자세한 자료는 신연식이 많이 찾아봤고 나는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참조했다.

"일본, 너희 반성 좀 해라"는 의도가 있었다. 일본 극우주의자, 군국주의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광복70주년에 맞춘 것은 의도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2015-09-13-1442147224-7527249-915a6858fc8f2a6c94990913c08756ce4b3155b6.jpg

◆ 구성은 어떻게 되나 = '사도'와 같은 시기 시나리오가 작성돼 똑같은 구조를 가지게 됐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형식인데 선입견 없이 맑은 눈으로 응시하면 쉽게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공동주인공인 송몽규 역은 신예 박정민(28)이 맡았다. 한 집에서 같은 해 같이 태어나고 자란 고종사촌 송몽규와의 건강한 우정과 경쟁을 그린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가 주가 된다. 윤동주에게 세 번의 열등감을 느끼게 한 송몽규와의 관계성 안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이를 위해 몇 개의 시를 매치시키기도 했다. 윤동주의 정체성은 송몽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선명해진다. 송몽규가 동물적 몽상가요 행동주의자였다면 윤동주는 식물적 몽상가로 관념주의자였다. 몽규가 없었으면 동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주를 만든 사람은 몽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는 1934년 말부터 시작해 1935년 1월 18살 동갑내기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 당선된 사건을 보여준다. 정지용의 시를 사랑했던 윤동주는 그동안 시를 차곡차곡 써왔는데 벼락을 맞은 듯 열등감에 시달린 첫날이었을 것이다. 평전을 보면 윤동주는 그날 자기가 쓴 시의 연표를 작성하고 '대기만성'을 되뇌었다고 한다. 윤동주가 '나의 존재가 송몽규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를 쓰지 않았을까 한다. 열등감은 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큰 힘이 된다.

신사참배 거부로 평양 숭실학교로 유학갔다가 다시 고향 북간도 용정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영화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뺐고,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건너 뛴다. 주권 없는 나라에서 식민지 국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젊은이로서 정체성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더 넒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희망으로 윤동주가 "연전 가자"라는 말을 먼저 던지게 된다. 송몽규와 함께 어머니가 싸주신 메밀전병을 먹으며 경성으로 와 연전 영문과에서 워즈워드의 시를 배우게 된다.

송몽규는 잘나가는 사상가였다. 등사기를 매고 다니며 문예지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이광수의 볼셰비즘에 대하여'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졸업식에서 송몽규는 당시 연전 교장 윤치호에게 우등상장을 받는다. 이날 윤동주는 다시 열패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송몽규가 윤동주에게 "일본에 가서 공부하자" 권유하게 되고 시모노세키(하관)로 가는 관부연락선을 타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게 된다. 타고 가는 배이름이 조선왕궁의 이름을 딴 '경복환'인데 일제가 조선 황제를 격하하기 위한 이름이다. 이 연락선을 타고 가는 윤동주의 얼굴 위에 '참회록'을 넣었다. 창씨개명 즈음에 쓴 시다.

두 사람은 교토에 가서 시험을 보는데 송몽규는 교토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합격하지만 윤동주는 떨어진다. 이때 송몽규에게 세 번째로 열등감을 느꼈을 것이다. '삼단콤보'로 영혼의 그로기를 겪은 것이다. 윤동주는 도쿄에 있는 릿교대 영문과에 입학해 아나키스트로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반대는 다카마츠 교수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교련수업을 거부한 것이 적발돼 호되게 맞게 된다. 송몽규를 찾아 교토로 가서 도시샤대학에 편입한 후 몽규가 검거되면서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당시 후쿠오카감옥에서 생체실험으로 죽은 사람이 1800명이다. 알 수 없는 주사를 혈관에 맞고 두 사람 모두 사망하게 되는데, 혈액대체제 개발을 위한 실험에서 바닷물주사를 맞고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윤동주가 죽어가는 괴성을 같은 수형자가 듣고 증언한 것이 있다. '시대적 환경의 지배를 받는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큰 행적들만을 골라서 구성을 했다.

몽규가 검거되는 장면에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배치했는데, 몽규를 보고 쓴 시라고 상상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서 몇 달 차로 태어나 같은 감옥에서 며칠 차로 죽는 것이 보통 인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표작 '서시'가 나오기 전 '자화상'을 넣었다.

현재 용정에 있는 윤동주의 비석에는 끊임없이 꽃이 놓이는 것을 보면 '대기만성'을 소원을 풀었는가 싶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윤동주에게 열패감을 안겨주었던 송몽규는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몽규가 훨씬 아름다운 과정을 살았고 본능에 충실했다. 그러나 결과가 없었다.

2015-09-13-1442147105-9677404-IMG_3974.JPG

◆ 상상력을 가미한 부분은 =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상상력이 많이 더해졌다. 영화가 가진 독자적 형식이 있으므로 장르 간 격차를 좁히는 과정에서 허구가 가미 됐다. 기록에는 없지만 죽음을 맞는 28세 때까지 여성과의 '썸'이 없었겠나. 연전에서 살짝 '썸'을 타는 여자를 넣어 몽규와 삼각관계를 이루도록 했는데, 날조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썸'탈 때 쓴 시가 '별헤는 밤'이라고 봤다. 릿교대 재학 중에도 약간 '썸'을 타게 만드는데, 윤동주에게 여자를 상업적 목적으로 붙인 얄팍한 상술이라고 욕을 호되게 먹을 각오를 하고 있다.

◆ 예산부족 극복은 = 돈이 없어서 흑백영화로 찍었다. 영화란 것이 장르적으로 마음에 남아있는 이미지 속 공간을 찾아가는 것 아니겠나. 용정 장면은 강원도 고성에서 찍었다. 집성촌을 리모델링해서 전통관광체험 단지로 만든 곳인데 북방식 가옥이 남아있다. 연전, 릿교대, 교토대는 연세대에서 나눠서 이리저리 가려가며 찍었다. 후쿠오카 감옥 신은 전주에서 찍었고, 윤동주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 장면은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수용소에서 찍었다. 일제시대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문둥병이 유전되는 줄 알고 환자의 성기를 자르던 단종대에 강하늘을 눕혔다.

◆ 윤동주 역의 강하늘은 = 강하늘은 영화 '쎄시봉'에서 윤동주의 육촌인 가수 윤형주 역을 맡았는데 이는 우연일 뿐이다. 그보다 앞선 2010년 내 영화 '평양성'을 통해 정식 데뷔했다. 당시 연개소문의 세 아들 역을 윤제문, 류성룡, 강하늘이 나란히 맡았다. 당시 중대 1학년생이었는데 연기를 너무 잘했다. '평양성'이 쫄딱 망하는 바람에 은퇴망언을 했었다.

2015-09-13-1442147024-2739470-IMG_397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