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9월 10일 07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0일 14시 12분 KST

해외 유명작가 국내전시 유감

극동아시아 소국에서 해외 유명작가의 전시를 유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꾸준히 세계 적 미술가들의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고 있지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만족스러운 전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접한 두 거장의 전시도 나날이 오르는 입장료에 비해 실망감을 안겼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디에고 리베라, 프라이드 오브 멕시코' 전의 중심을 이룬 것이 벽화작품이다. 반출이 어려운 벽화의 특성상 현지에서 찍어온 필름을 국내에서 현상해 벽에 붙여 전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갤러리 천정 높이와 전시장 규모상 실물보다 축소인화 된 사진은 벽화의 실제 위용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빛에 반사되는 현상지 질감도 감상을 방해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헤세와 그림들 展, 나에게로의 여행' 전시는 '컨버전스 아트'라는 첨단 디지털 영상기술을 도입하면서 비주얼 면에서는 혁신적 향상을 이뤘다. 그러나 전시에 이러한 기법이 주가 됐다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 충실하지 못해 큰 아쉬움을 남겼다.

헤르만 헤세는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로 화가로서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그가 남긴 수채화작품들의 크기는 A4용지 이하, 엽서보다도 작은 크기가 대다수다. 이러한 소품을 전시장 벽면 가득 프로젝터로 확장하면서 작품 본래의 느낌이 훼손됐다. 컨버전스 아트의 콘셉트가 재해석·재창조라면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전제돼야 했을 것이다. 과연 헤세가 가진 본래의 의도를 제대로 살린 변형인지 의문이 남는다.

헤세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는데, 동영상으로 구현된 화면에서는 이 풍경 안에 헤세 본인과 부인들, 자녀 등의 인물이 뚜벅뚜벅 걸어 다닌다. 주최 측이 덧붙인 것이다. 헤세는 목련을 즐겨 그렸는데 꽃 몇 송이와 가지가 그려진 부분화를 제멋대로 전체 확대하며 분재 화분을 상상했다. 대표작 '데미안'에도 일본인 유학생이 나올 정도로 동양문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지만, 정원을 사랑했던 헤세와 같은 자유주의자가 식물의 생장을 억압하는 동양식 분재를 좋아했을지는 미지수다. 빈약한 원본 전시에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이게 다인가"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부대 전시물들에 대한 부실하고 성의 없는 안내도 전시의 격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헤세의 사진과 그림, 도록, 조각상 대부분 '연도미상'라고 표기돼있었다. 생몰연도가 분명한 현대작가인데 추정연도라도 가늠하는 것이 예의다. 노년기의 사진 대부분은 헤세의 막내아들이 찍었다는 것은 도슨트의 가이드를 통해서나 알 수 있었다. 조악한 석고흉상과 목상은 누가 만든 것인지도 알 수 없어 자칫하면 헤세 본인의 작품이라고 오해할 가능성도 있었다.

2015-09-10-1441850334-323943-IMG_3438.JPG

그나마 한글판 번역본에는 연도표기가 돼 있는데, 해방 후 판본이 분명한 '크눌프'에 1915년, '데미안'에 1919년이라고 돼 있어 의아함을 낳았다. 나란히 전시된 국적불명 외국판본의 '데미안'에는 1947년이라 표기돼 있었다. 독일어 작품발표 연도와 번역본 출판연도를 혼재한 것이다. 제대로 된 설명문들이 없어 전시가 얼마나 졸속으로 기획됐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헤르만 헤세의 팬들에게는 신종기술 자랑에 헤세가 구색 맞추기로 끼어든 듯한 불쾌감을 야기했다.

아무리 이미지가 좋은 문화사업이라 해도 사업은 사업인 만큼 이윤을 남겨야 한다. 그러나 순수고전예술을 다루는 데는 그에 맞는 품격이 필요하다. '헤세와 그림들 전'은 별 연관도 없는 활동 뜸한 연예인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이나 얼마 안 되는 밑천으로 '헤세의 초대'와 '헤세의 가을', 두 번에 나누어 전시를 벌여 장삿속을 너무 훤히 드러냈다. 전시물에 대한 적절한 정보만 제공됐어도 티켓 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익창출을 위해 끼어든 언론사·방송사가 사탕발림 식의 무조건적 홍보를 해대는 것도 문제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어린이 호객이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박물관 등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상식이 됐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다. 하지만 국내 전시에서는 한국부모들의 열띤 교육열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 너무 빤히 드러난다. 자신은 교양이 없어도 자식들에게는 고급문화체험을 시켜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동행한다면 '일타쌍피'를 넘는 장사다.

'디에고 리베라, 프라이드 오브 멕시코' 전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조잡한 대형인형들을 대놓고 입구부터 곳곳에 배치해놓아 전시의 본질을 흐렸다. 이름만으로도 흥행이 가능한 유명 예술가의 이름을 빌어 한탕주의를 노린 부실전시는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지양돼야 할 점이다

2015-09-10-1441850296-1272312-IMG_340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