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잘 마신다 = 멋있다' 공식이 깨지다: 왜 Z세대는 앞선 세대만큼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을까?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 문화, 기술, 경제적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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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은 연중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시기이다.

다시 극성을 부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임이 줄줄이 취소됐지만, 연말연시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술은 거의 빠지지 않는 기호식품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부모세대들의 젊은 시절보다 술을 훨씬 덜 마신다.

국제학술지 ‘유럽공중보건저널’ 4월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미와 북유럽,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39개 고소득국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나라에서 2000년 이후 10대들의 음주량이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 음주율은 2000년대 중반 20%대 후반에서 현재 10%대 중반으로 낮아졌다. 코로나의 영향을 받은 지난해엔 10% 안팎으로 더욱 떨어졌다. 음주율은 최근 30일 동안 1잔 이상 술을 마신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단순 음주율뿐 아니라 위험음주율(남자 소주 5잔, 여자 3잔 이상)도 감소했다.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선 술을 마시는 횟수가 한 달에 한 번도 안 되는 20대 젊은이가 전체의 40%라는 조사 결과가 몇년 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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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와 스웨덴 공동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알코올과 약물 연구 저널’에 이런 현상의 배경을 분석하는 연구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연구진은 과학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에 연구 결과를 소개한 글에서 “이는 단순히 청소년 교육과 단속 정책에 따른 효과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그리고 경제적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여러 나라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를 토대로 청소년 음주 감소에 영향을 준 4가지 요인을 확인했다.

만취보단 적당히

첫째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경제 성장기에 태어난 기성세대와 달리 21세기에 태어난 Z(제트)세대는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나빠졌다. 성장은 정체하는 반면 기술 환경은 급변하고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인생 설계에 필수적인 취업과 내집 마련 여건이 팍팍해졌다. 게다가 전에 없던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불안 요소까지 등장했다.

연구진은 “수십년 전의 젊은이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성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였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며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은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을 더 이른 나이에 느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어떤 젊은이들은 술에 취할 경우 그에 따른 통제력 상실로 미래 설계마저 위태로워질까 두려워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과거의 젊은이들보다 학업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더 일찍 시작되고, 덩달아 정신 질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미래에 대한 이런 불안감이 결국 술을 멀리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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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건강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다.

연구진은 “15~20년 전 연구를 보면 당시 젊은이들은 만취해서 구토를 하거나 정신을 잃는 것을 긍정적 또는 적어도 양면적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최근 연구들을 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음주가 정신 건강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신체 건강에 끼칠 위험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물론 일부는 음주가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여기지만, 이 경우에도 만취보다는 적당량의 음주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셋째는 사회 관계의 변화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과 교제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소셜미디어는 오프라인 공간을 통하지 않고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해줬다. 이는 온라인에서의 자기 모습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음주를 상대적으로 더 멀리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요즘 젊은이들은 친구나 가족, 미래의 고용주 등이 혹시라도 소셜미디어에서 술에 취한 자신의 모습을 볼까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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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말고도 비디오 게임, 다른 디지털 미디어 등 즐길 거리가 많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시각과 내용의 정보를 접하는 것도 술을 덜 찾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

넷째는 가족과의 관계 변화다.

부모가 자녀의 생활을 감독, 관리하는 방식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등장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밀착해서 자녀들의 일상을 감독할 수 있게 됐다.

연구진은 “이는 잠재적으로 자녀와 부모 간의 소통력을 발전시켜 청소년기의 음주와 반항을 줄여준다”고 진단했다.

종합적으로 이런 변화들은 이제 많은 젊은이들이 과거처럼 술 잘 마시는 것을 멋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독립과 어른의 징표로 여기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음주 횟수뿐 아니라 1회당 음주량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