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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팩트

ⓒhuffpost

부모님이 유튜브의 가짜뉴스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며 시청을 권해온다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둥, 박근혜 탄핵은 누명이라는 둥 하는 영상들이 지금도 유튜브 추천영상 코너에 넘쳐난다. 언론매체에서 팩트체크를 해준다 한들 유튜브 뉴스를 구독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주말 태극기 집회마다 연단에서 나오는 “텔레비전 방송을 믿지 말고 유튜브를 믿으라”는 구호가 이들에게 더 먹혀든다.

ⓒ뉴스1

노년층에게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어느 온라인 카페에서 만든 ‘페미니즘은 맑시즘의 변종’이란 선전물은 지금도 서울 시내에 꾸준히 뿌려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들으면 벌떡 일어날 이 선전물은 ‘백래시’(반격·반발)의 욕망을 품은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10대 남자아이들이 자주 찾는 어느 위키는 이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작가를 색출해 저주하는 낙서장이 되었다. 색출 규칙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다른 작가를 응원하면 덩달아 낙인’을 찍는 식이다. 이 위키는 한때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이퀄리즘’이 세계를 휩쓴다는 거짓정보를 백과사전처럼 썼다가 날조 과정이 발각되어 신뢰를 잃은 곳이다. 그러나 당시 조작을 주도한 인물들은 여전히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믿으면 거짓도 진실이 되고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즉 ‘대안팩트’란 이야기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위키나 온라인 커뮤니티가 학교 교육을 대체한 지 오래다. 남자아이들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근현대사를 배우고, ‘루리웹’에서 ‘로리짤’(아동성애그림)을 즐기며 대안적인 사회학을 배운다. 어르신들은 신문이나 방송 대신 카톡 ‘찌라시’와 유튜브 가짜뉴스를 구독하고 열심히 퍼 나른다. 5년 전 ‘언론을 믿지마 일베를 믿어’라는 구호가 일베에 등장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문장은 이후 어버이연합 집회 피켓에서 다시 등장했고, 지금은 태극기집회의 단골 구호가 되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구호가 된 것이다. 지구평평론이 퍼져나가는 미국만큼이나 한국에서도 반지성주의와 ‘대안팩트’가 팽배해진 지 오래다.

이 문제를 풀 주체는 대중의 지식과 담론을 이끄는 언론일 것이다. 인터넷 이후 미디어 과잉 시대의 언론사들은 전보다 더 권위를 끌어올려야 한다. ‘출처를 교차로 확인하고 검증한다’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원칙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뢰와 권위를 지켜내야 했을 한국 언론은 꾸준히 이를 포기해왔다. 어뷰징 기사(낚시성 기사)로 트래픽을 끌어오는 것이 한국 언론의 당면과제였고 뉴스의 질은 위키의 엉망진창 글보다 더 형편없어졌으며, 결국 언론의 기사는 위키와 유튜브 가짜뉴스, 온라인 카페 글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최근 네이버는 뉴스 편집을 개인 맞춤형으로 인공지능한테 맡기겠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이미 포털 모바일 추천 탭과 카카오채널 화면에서 뉴스와 카페 글을 섞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 세대를 아우르며 모바일 기기로 뉴스가 소비되는 시대에 언론의 기사가 ‘여러 인터넷 콘텐츠 중 하나’ 정도로만 취급되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커뮤니티 글이 ‘공을 들인 뉴스’와 뒤섞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더니, 누군가 내게 ‘커뮤니티 글에 비해 언론사 뉴스가 특권을 얻어 우대받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지금 한국 언론이 처한 처지가 이렇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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