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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수익 떨어진다"…청년임대주택 막는 주민들

서울 강동구 성내동 현장 가보니

11일 서울시 청년임대주택부지인 강동구 성내동 87-1번지에 임대주택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11일 서울시 청년임대주택부지인 강동구 성내동 87-1번지에 임대주택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한겨레

지난 10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천호역에서 걸어서 4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지금은 폐쇄된 서울상운차량공업 부지에는 ‘990세대 임대주택 건설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서울시는 이곳에 저소득 청년에게 시세의 60% 수준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 7층, 지상 35층 규모의 임대주택 건물이 신축될 계획이다. 인근의 한 부동산에서 공인중개사에게 청년임대주택에 대해 묻자 “지금 주민들이 너무 예민해진 상태여서 말을 조금이라도 잘못 꺼내면 난처해진다”며 손사래를 쳤다. 성내동 주민 수십명은 전날 강동구청 앞에서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성내동뿐만이 아니다. 최근 영등포구 당산동2가 하이마트 부지에 626가구 규모의 청년임대주택이 추진되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5평짜리 빈민 아파트가 들어오면 아파트 가격 폭락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는 안내문을 붙여 논란이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추진 중인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사업 중 현재 18곳이 인가를 받았고 15곳에서 인가 절차가 추진 중인데, 거의 모든 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갈등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대상이 최근 빈곤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뿐 아니라 청년·신혼부부와 같은 젊은 층으로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서울시는 현재 57곳에서 2만2천가구의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을 추진하고 있고, 2022년까지 8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한다. 과거 임대주택은 도심 외곽의 신규 택지에 지어졌기 때문에 기존 주민과의 갈등을 피할 수 있었지만, 청년임대주택은 학업·일자리 문제로 도심에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공임대가 단순히 값싼 집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주거를 발판으로 청년들이 창업도 하고, 취업도 하는 성장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며 “결국 어떤 형태로든 도심 안에 만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청년을 위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청년임대주택 30만실을 공급할 계획이다. 기성세대보다 주거부담이 훨씬 커진 청년층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한 것으로,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행복주택’(청년임대주택) 14만가구의 갑절에 이르는 물량이다.

갈등의 양상은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다. 당산동의 경우 청년임대주택을 빈곤층이 모여 사는 일종의 ‘혐오시설’로 여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님비 현상에 더 가깝다면, 성내동의 경우엔 민간임대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성내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부가) 임대 들어오는 조건을 까다롭게 내걸긴 하겠지만, 워낙 저렴하게 나온다고 하니 주변에서도 제값을 받기 힘들지 않겠느냐”며 “이 동네에는 월세를 받아서 생계를 꾸리는 노인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청년임대주택 부지에서 골목길을 사이에 둔 바로 옆 블록은 10년 가까이 재정비촉진지구로 묶여 있다가 2015년 지정 해제되면서 몇년 사이 9~10층 규모의 원룸과 오피스텔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현재 5~6평 원룸 하나의 평균 시세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5만~65만원이다. 이에 견줘 서울시 청년주택 임대료는 소득 수준에 따라 최소 10만원대에서 많아야 시세의 60%대 수준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지역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세 60만~70만원이 넘는 민간임대주택과 청년임대주택은 대상도 다를 뿐 아니라, 공급이 늘어나면 탄력적으로 수요도 늘어나 가격 하락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은 외려 반색하고 있다. 천호역 근처에서 휴대폰 매장을 운영하는 강승구(29)씨는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인구가 많이 유입되면 좋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 동네 상권이 좀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임대주택 부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중반의 김아무개씨 역시 “임대주택 싸게 공급해서 청년들이 월세 아끼면, 한끼 거르는 대신 밥이라도 한끼 더 사먹고, 이왕 먹는 거 좀더 맛있는 걸 먹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골목길을 건너면 갈등 양상은 또 바뀐다. 이 동네에 주택을 보유한 한 주민은 “수십년 동안 개발이 제한된 탓에 주민 대부분이 단층이나 2~3층 낡은 주택에 살고 있는데, 바로 골목길만 건너면 10층짜리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에 35층 건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내동의 한 공인중개사 역시 “임대주택 생긴다고 집값 하락이나 임대료 하락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무임대 기간이 끝난 8년 뒤에는 저 35층 건물이 온전히 민간 소유가 된다. 너무 큰 특혜”라며 “주민들 요구는 우리도 토지 용도를 변경해 개발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내동 청년주택 부지 일대는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용적률이 250%로 제한된다. 천호대로 건너편은 상업지역으로 지정돼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등 발전했고, 골목길 건너편도 상업지역의 배후지인 준주거지역으로 지정돼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골목길 하나를 두고 토지 가격이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청년주택이 주민들의 박탈감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사업은 순수한 공공임대가 아닌 민간이 보유하고 공공이 지원하는 공적 지원 주택이다. 민간 토지 보유자가 자신이 보유한 토지에 청년임대주택을 지어 8년 이상 임대주택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면, 서울시는 용적률을 상향해주고, 대신 토지의 10~30%를 기부채납받는 방식이다. 의무임대 기간이 끝난 이후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사업에 참여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를 특혜라고 보고, 자신들의 땅도 일정 정도 용적률 상향을 해주거나,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반대로 서울시는 “청년주택 사업에 참여하면 마찬가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설명드렸다. 500㎡ 이상 일정 규모 토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웃들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도 다 알려드렸다. 그런데 기부채납이나 8년 임대 같은 의무 조건은 피하고 혜택만 보려고 하니 이렇게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임대의무기간 8년이 지난 뒤 문제점에 대해서는 임대의무기간을 20년 이상으로 상향하거나, 아니면 8년 이후 공공리츠가 매입해 공적임대를 지속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토지의 공공성이 취약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부동산학)는 “모든 도시계획은 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로 인해 막대한 이익이 발생해도 민간이 독차지하고, 손실이 발생해도 민간이 떠안다 보니 이런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갈등도 공적으로 해결하고, 이익과 손실 역시 공적으로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현재 보유세나 임대소득세가 너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경우 정부가 제안할 수 있는 혜택 자체가 제한돼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은 포화 상태기 때문에 이 안에서 계속 재생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사람들이 심지어 자산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건 어린이집이나 소방서까지 무조건 다 반대하는 등 님비 현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도시나 부동산에 대한 공적 개념이 사회적으로 확립될 수 있는 제도적 기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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