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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6일 21시 54분 KST

“지적인 매력과 젊고 감각적인 유머" 윤여정의 '페르소나' 4인, 인간 윤여정에 대해 말하다 (인터뷰)

윤여정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이른바 '지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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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과 벗들의 모임인 ‘지풍년’ 멤버들. 왼쪽부터 김초희 감독, 김도훈 전 편집장, 이재용 감독,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지적인 매력과 젊고 감각적인 유머. 그 연배 배우들 중 젊은이들과 어울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녹아드는 몇 안 되는 분이다.”(이재용 영화감독)

“윤 선생님의 매력은 어디에서든 솔직한 일침을 유머러스하게 던진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고상한 척한다(snobbish)’는 얘길 평소에 했는데, 그걸 영국 아카데미 수상 소감 때 빼놓지 않고 하시더라. 유머러스하게.”(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헛꿈을 꾸지 않는 매우 현실적인 분이다. 공짜도 좋아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협찬도 싫어한다.”(김초희 영화감독)

“배우 윤여정의 연기와 인간 윤여정의 리얼리티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나는 한국에서 윤여정처럼 진짜와 같이 연기하는 배우를 알지 못한다.”(김도훈 전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평소 가까이하는 이들을 보면 된다고 했다. <한겨레>가 윤여정의 친구들을 만난 이유다. 자칭타칭 윤여정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이들은 영화감독부터 대학교수, 전직 기자, 건축가까지 다채롭다. 이름하여 ‘지풍년’. 모임명은 각자 자기 얘기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을 보고 윤여정이 던진 특유의 시니컬한 말에서 따왔다. “지×이 풍년이네~.”

윤여정을 처음 만난 날을 인생의 가장 큰 길일 가운데 하나로 치는 지풍년 멤버들에게 윤여정과의 인연, 그의 인간적 매력, 배우로서의 면모 등을 물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며칠 앞둔 지난 20일 이른 아침,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한식당 ‘한식공간’에서 시작된 지인들의 티키타카(죽이 잘 맞아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는 2시간 가까이 유쾌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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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과 에서 함께 작업한 이재용 감독. 인간 윤여정을 가장 많이 아는 지인으로 꼽힌다.


윤여정 배우와의 첫 인연을 말해달라.

이재용=2008년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시사회 때 처음 인사했고, 이후 임상수 감독 부부 소개로 종종 만났다. 처음 선생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가 기억난다. 당시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이 사건 당사자로 거론된 사람에 대해 비판하시길래 내가 “그분만의 사정이 있겠죠”라고 했더니 “얘랑 못 놀겠다. 달릴 땐 같이 달려줘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하시더라.(웃음) 선생님은 예스와 노가 분명한 분이다.

김초희=오빠가 같이 씹어줬어야지.(웃음)

이재용=본격적인 첫 만남부터 찍힌 거지. 분위기 파악을 미처 못해서.(웃음) 선생님은 유머 코드가 맞는 사람, 재밌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재승=나도 처음부터 찍혔다.(웃음) 윤 선생님과 처음 식사하는데, 배우들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라고 했더니, 제게 팬심이 헤프다며 “얘 이런 스타일이었어? 같이 못 놀겠네” 하셨다.(웃음)

김초희=나도 처음에 찍혔잖아.(웃음) 영화 프로듀서 시절 경남 통영에 촬영 가서 선생님께 여관방을 잡아드렸는데, 알고 보니 거미줄이 있는 방이었다. “여배우한테 거미줄 있는 방을 잡아줬다”고 다음날 저랑 눈도 안 맞추시더라. 4천원짜리 밥 나오는 식당 잡은 거로도 찍혔지.(웃음) 선생님에게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땐 몰랐지. 자기 맘을 몰라주는 사람을 싫어하시지. 누구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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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뇌과학을 배우고 싶다는 윤여정 배우의 말에 매료됐다고 했다.

 

김도훈=난 찍힌 거 없겠지?(웃음)

정재승=김 기자는 윤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근사하게 써서 “쟤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난 거니까 유일하게 안 찍힌 거지.(웃음)

김초희=자주 안 봐서 그래. 나처럼 선생님 매일 보면 바로 찍힐걸.(웃음)

 

김도훈 전 편집장은 2012년 <씨네21> 기자 시절 이 잡지에 ‘나는 지금 그녀와 열애에 빠져 있다’라는 제목의 ‘윤여정론’을 쓴 적이 있다. 남몰래 짝사랑하던 그의 ‘러브레터’가 윤여정에게 가닿았고, 이후 그는 지풍년 멤버로 영입됐다.

 

배우 윤여정에 관해 얘기한다면?

이재용=개인적으로 알기 전부터 좋아하는 배우였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 <충녀>나 박철수 감독의 <어미> 같은 작품 등에서 본 개성 있는 연기는 아주 놀라웠다.
정재승=만나기 전에는 잘 몰랐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인상 깊었던 배우 정도랄까. 그러다가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에서 선생님의 솔직한 모습을 발견했다. 임상수 감독님의 일련의 영화에서도 선생님 연기는 빛을 발했다. 그 후 이재용 감독님 영화들에서 최고셨고, 실제로 뵈니까 더 좋더라. 영화에서보다.(웃음)

김도훈=김기영 감독의 영화들과 <장희빈> 같은 드라마에서 선생님은 당대의 관습을 온몸으로 밀어내며 자신을 불사르는 마녀였다.(웃음) ‘국민 엄마’ 같은 캐릭터를 싫어하는 분이다. 사실 선생님은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에게 연기는 예술이자 직업이다. 선생님이 “제일 싫은 건 현장에서 새벽 3시에 감독이랑 논쟁하는 애들”이라며 “‘왼쪽으로 넘어지는 게 감정상 안 좋다. 오른쪽으로 넘어지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데 아주 돌아버리겠더라. 그런 애들 진짜 때려주고 싶다”고 한 얘기는 유명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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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의 지인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서동 아라리오 스페이스의 한식공간에서 인간 윤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초희 감독, 김도훈 전 편집장,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이재용 감독.


인간 윤여정은 어떤 사람인가?

이재용=나이 들어 가는 것과 죽음에 대해 자주 얘기하시곤 하는데, 그렇게 하면서 그 불편함과 두려움을 스스로 별게 아닌 것처럼 여기려는 다짐으로 읽힌다. 대부분 나이를 잊고 살려는데 선생님은 늘 나이를 잊지 않으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선생님 성격일 수도 있고 배우로서 살아온 방식일 수도 있는데,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 본능적으로 느끼는 분이기도 하다.

김초희=직접적으로 호감을 드러내 얘기하는 걸 불편해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분이다.

정재승=처음 뵀을 때보다 지금은 많이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당신의 감정조절이나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는데, 언젠가 선생님이 “모든 건 다 뇌야”라며 “70대지만 뇌과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지금은 그 말씀을 녹취해 남겨놓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지적인 욕구가 매우 강하신 분이다.

김도훈=내가 보기엔 선생님은 10년 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기 마련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열려 있다.

 

지풍년은 얼마나 자주 모이고, 밥값은 누가 내나?

정재승=한달에 한번꼴로 모이고, 누구 생일이거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시간 되는 사람들이 함께 보기도 한다. 모임 결성 이후 좋은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아 기쁘다.
김도훈=이 모임이 10년까진 안 됐고 8년은 됐는데, 회비를 걷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다.

김초희=선생님이 “초희 넌 백수니까 반만 내라”고 하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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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희 감독은 에서 윤여정 배우과 함께 작업한 뒤 지금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이재용=선생님의 특기이자 매력은 밥을 잘 산다는 거다.(웃음) 나이 들면서 한끼 한끼 소중히 여기며 당신이 즐겁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한국 사회니까 어쩔 수 없이 밥값을 많이 내신다.

김초희=본인이 안 내면 젊은 사람들이 안 만나준다는 걸 알고 계신다. 근데 계속 내다 보니 나중엔 성질이 나신 거 같더라.(웃음)

이재용=‘내가 봉인가. 얘네들 밥을 다 내가 사야 하나’ 하신 거지.(웃음) 이후 회비를 걷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해결됐지만, 다들 좋은 일 있을 때마다 쏘기도 하고 또 여전히 선생님이 많이 내셔서 처음 걷은 회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정재승=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영감을 주고받는 모임이라서 만나고 난 뒤에 계속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

김도훈=윤여정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지금도 신기하다.(웃음)


영화 <미나리>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재용=인터뷰에서 많이 얘기하셨듯이 시나리오를 받고 반쯤 읽다가 바로 출연을 결정하셨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첫눈에 감독의 진심을 본능처럼 알아차리셨을 거다. 전에 <죽여주는 여자>나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같은 저예산 영화 촬영 당시 힘들어하셨던 선생님은, 미국 영화라니까 200만달러 규모 예산을 처음에 200억원으로 착각하셨다고 한다. 뒤늦게 200억원이 아니라 20억원짜리 영화인 걸 알고는 “또 봉변을 당했구나” 하셨다. 선생님 별명 중 하나가 ‘봉변 윤선생’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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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전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은 2012년 <씨네21>에 쓴 ‘윤여정론’이 계기가 돼 지풍년 멤버로 영입됐다.

 

김초희=선생님이 누구 칭찬을 잘 안 하는 분인데,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은 유독 칭찬하고 좋아하시더라.

김도훈=정 감독은 착하고 선한, 올바른 크리스천 같은 분이지.

김초희=근데 선생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웃기는 사람이라는 거.(웃음)

정재승=자기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을 우리 모임은 좋아하는 것 같다. 서로 존중해주고.(웃음)

김초희=<미나리>로 각종 여우조연상 수상이 이어지면서 온라인 시상식에 화상으로 참여하는 선생님의 옷차림과 장소도 변화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추리닝’과 ‘티 쪼가리’ 차림으로 방에서 했다가 그다음에는 스웨터를 입었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거실에 조명도 설치하고 옷과 메이크업도 신경 썼다.(웃음)

이재용=선생님이 애플티브이(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국외 촬영과 오스카 레이스로 너무 바빠지셔서 우리도 지금은 매체를 통해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외신을 통해서.(웃음)

김도훈=영어도 잘하시니까 차기작은 할리우드에서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까?(웃음)

방담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4명의 친구들은 윤여정이 지닌 매력을 각각 상징하는 페르소나(분신)였다는 사실을. 즉, 공감과 배려(이재용), 지적인 욕구(정재승), 유머와 위트(김초희), 스타일리시함(김도훈)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분신 넷을 거느리고 있으니, 윤여정은 복도 많지. 아니, 그들 모두 서로에게 복이 될지니, 지풍년은 복도 많지.

 

한겨레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