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21년 09월 20일 13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9월 21일 01시 35분 KST

민초단에 진심인 '집사부일체' 윤석열이형, '고발 사주+검찰 사유화' 의혹에도 진심을 보여주길 바라

윤석열 후보가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석열 후보.

“석열이형, 저는 형이 민초단인지 아닌지 1도 관심 없습니다”

석열이형,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당신은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일요일에 방송하는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입니다. 후보께서 선호한다는 ‘메이저’ 방송국입니다.

기대가 컸습니다. ″대통령만 보면 싸우고 싶은가요?”, ″나에게 추미애란?” 등 지난주 공개된 예고편에는 예능치고 수위가 꽤 높은 질문들이 쏟아졌거든요. 물론 ‘집사부일체’ 쪽에서는 전에 없던 대선 주자 특집이라며 엄청나게 홍보했고, 이날 방송을 시작하며 진행자인 이승기는 ”대대대기획이다. 섭외 기간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라며 설레발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SBS
윤석열에게 "대통령만 보면 싸우고 싶은가요?"라고 질문하는 개그맨 양세형.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러움만 가득합니다. 예고편에 나온 송곳 질문이 두루뭉술 맥빠지는 리액션으로 마무리된 건 차치하더라도, 실망한 이유를 굳이 나열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윤석열 후보님, 당신은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언 제조기 아니던가요. 지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하던 검사 윤석열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하고 행동하는, 국민들이 원하는 진짜 검사의 모습이었거든요.

유튜브 '오마이TV'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윤석열.

8년이 지났습니다. 대통령 경선 예비 후보가 된 당신은 어쩐지 좀 달라졌습니다. 친근함만 내세우는 모양새입니다. 당신은 ‘전직 검찰총장’을 어려워하는 네 명의 MC들에게 ”형이라고 불러”라며 살갑게 대했고, 동생들이 편하게 느껴졌는지 중간중간 반말을 섞기도 하더군요.

윤석열의 첫 씬은 부엌이었습니다. 당신은 동생들을 먹이려고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손님이 왔으니 밥을 해먹여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정(情)이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조금 과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30분 동안이나 당신은 부엌에 박혀 김치찌개를 끓이고 불고기를 굽고 달걀말이를 가지런하게 썰었습니다. 이미지 메이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 말대로 자주 하는지 무척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석열이형 그거 요즘 다 하는 겁니다. 자기 손님이 왔을 때는 직접 대접해야 하는 거죠. 당신이 검찰총장이었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고 해서 대단히 특별할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더욱이 아내분은 문화 예술 콘텐츠 기업 ‘코바나컨텐츠’ 대표잖아요.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무직 상태인 당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놓고, 요리 자주 하는 다정한 남편인 척 포장하는 모습이 미안하지만 조금 웃겼습니다.

예능은 예능으로 봐야겠지만, 마냥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닙니다. 최근 당신을 둘러싸고 몇 가지 의혹 터졌습니다.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과 당신의 장모 최모씨 변호를 위해 검찰을 동원했다는 의혹입니다. 언론에서는 검찰의 정치 개입, 총장의 검찰 사유화라고 간단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검찰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검찰이 오직 한 명의 국민을 위해 움직인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뉴스1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최근 불거진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9.8

그러나 놀랍게도 당시 검찰의 수장이었던 당신은 누군가의 ‘정치 공작’이라며 소리만 지를 뿐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지난 8일 자처한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카메라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화내기에 급급했으며 의혹을 제기한 ‘뉴스버스’에 대해서는 ‘메이저가 아니다’ ‘인터넷 매체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습니다. 언론은 원래 불편한 질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정치인은 아침저녁으로 불편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 아니던가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요?

SBS
'민초파'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윤석열 후보.

다시 ‘집사부일체’로 돌아가 정치인 윤석열이 예능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바쁜 일정이 모두 끝나면 민트 초코칩 아이스크림을 꼭 먹겠다는 당신은 음식에 정말 진심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나서 민초파 석열이형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겠다는 사람이 조금은 늘었을까요? 글쎄요.

이날 방송의 부제는 ‘물음표 청춘들,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였습니다. 하지만 미래보다는 윤석열의 과거에 상당한 시간이 할애됐고, 당신 또한 화려했던 과거에 잔뜩 취한 모습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썰, 장충동 족발 때문에 사법고시에 떨어져 9수 끝에 합격한 썰 등등.

SBS
육하원칙을 따져가며 썰을 푸는 윤석열 후보.
SBS
자신의 토크에 흡족해하는 것 같다.

40년도 지난 대학 시절에 이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사진 찍어준 썰을 풀 때 당신이 육하원칙에 맞춰 이야기하는 모습은 텔레비전 속 저 사람이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정치 공작’을 운운하며 소리 지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나? 혼란까지 올 정도였습니다.

정작 당신은 첫 예능에 만족한 모양입니다. 방송이 끝난 직후 윤석열 후보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윤석열의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검색창에 ‘집사부일체 윤석열’로 검색하시고 확인해주세요”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진짜 윤석열의 전부라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석열이형, 지금은 예능에 나와 요리하며 웃고 떠들 때가 아닙니다. 그리고 초면에 반말은 좀 넣어두시고요.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