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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가 보수세력 항의에 결국 '인권·젠더 강의’ 필수교양 지정을 철회했다

2020학년도 신입생부터 필수과목으로 수강하게 할 예정이었다.

  • 김태우
  • 입력 2019.09.22 15:05
  • 수정 2019.09.22 15:10

연세대학교가 내년도 신입생부터 필수과목으로 수강하도록 추진했던 인권 수업이 보수단체의 항의 때문에 선택과목으로 전환됐다. 연세대가 외압에 의해 입장을 번복했다고 비판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은 ‘학교가 혐오세력에 굴복해 필수과목 지정을 철회했다’며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세대는 지난 19일 학교 누리집 공지사항을 통해 “교양과목 운영 체계를 논의하는 ‘학사제도운영위원회’를 거쳐 2020학년도부터 ‘연세정신과 인권’을 선택교양 과목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총 13개 강좌, 15명의 교수진이 참여한 이 강의는 이번 학기 온라인 선택과목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다.

앞서 연세대는 지난달 6일 인권·사회정의·젠더·아동·장애·노동·환경·난민 등을 주제로 한 교양수업인 ‘연세정신과 인권’을 2020년부터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단체 등을 중심으로 학교 쪽에 강의를 폐지하라는 항의가 이어졌고, 같은달 13일에는 연세대 정문 앞에서 ‘해당 강의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무분별한 난민 수용을 부추긴다’고 주장하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연세정신과 인권’ 필수수업 지정 철회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제작한 포스터.
‘연세정신과 인권’ 필수수업 지정 철회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제작한 포스터. ⓒ‘연세정신과 인권’ 필수수업 지정 철회를 규탄하는 학생들

당초 예정대로 강의를 진행하겠다는 방침(▶관련 기사 : 연세대 ‘인권과젠더’ 수업 우파모임 집단항의에…“예정대로 진행”)이었던 연세대는 지난 10일 ‘수강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관련 논의를 통해 교과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겠다’고 밝힌 뒤 9일 만에 돌연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이에 필수강의 지정을 철회한 학교를 규탄하는 학생들은 19일 입장문을 내어 “‘연세정신과 인권’ 강의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서 학교 당국은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내걸었던 ‘인권’을 스스로 짓밟은 셈”이라며 “연세대는 인권 강의 필수과목 지정 취소를 철회하고 의견수렴 과정부터 다시 진행하라”고 요구하며 온라인 구글 문서를 통해 나흘째 연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 페이지 : 혐오 선동에 굴복해 ‘연세정신과 인권’을 스스로 저버린 연세대학교 학교당국 규탄한다)

연세대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보수단체의 항의 때문이 아니라 교양과목 필수 지정에 따른 학생들의 부담, 동문들의 의견 등을 종합해 ‘연세정신과 인권’의 필수과목 지정 계획을 변경하게 된 것”이라며 “현재 재학생(학부) 2400여명이 해당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며, 23일 강의가 공개되는 ‘젠더’ 주제 역시 기존 안에서 변경된 내용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전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대학에서 결정한 교육 방침이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번복된 셈이며, 교육기관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사건”이라며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권 관련 정책이 부당한 압력에 의해 폐기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고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켜야 하는 대학마저도 그런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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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젠더 #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