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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03일 10시 59분 KST

예멘 난민 ‘아민’, 제주도민 ‘와르다’를 만나 결혼하다

함께 음식점을 운영 중이다.

한겨레 임재우 기자
제주도민 하민경씨와 예멘인 모함마드 알마마리씨가 2일 오후 제주시 용담2동에 있는 할랄 음식 레스토랑 ‘와르다’에서 마주 섰다. 음식점 사장으로 주문과 서빙을 맡은 하씨와 요리를 담당하는 알마마리씨는 7일 결혼한다. 알마마리씨는 내전을 피해 지난해 제주에 온 예멘인 중 한 명이다.

제주도민 ‘와르다’ 하민경(39)씨와 예멘인 모함마드 알마마리(36)씨는 지난해 11월 제주시 삼도2동 골목 어귀에 작은 음식점을 열었다. 하씨가 주문과 서빙을 담당하고, 아민(알마마리)은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음식점 이름은 ‘와르다 레스토랑’이다. 지난해 제주로 온 예멘인들이 하씨에게 붙여준 ‘이름’에서 따왔다. ‘와르다’는 아랍말로 ‘꽃’을 뜻한다. 와르다와 아민, 두 사람은 봄볕 가득한 4월 제주에서 결혼한다.

제주에서 할랄 음식(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파는 곳은 와르다 레스토랑이 유일하다. 아민은 “아랍인과 한국인이 친구가 되는 곳”이라고 했다. 아민은 지난해 5월 전쟁을 피해 제주로 온 500여명의 예멘인 중 한 사람이다.

하씨는 초등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친다. 음식점에는 오후 늦게 나온다. 아민은 음식점이 문을 여는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방을 지킨다. 두 사람은 영어, 아랍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식당에 대해,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사랑이 싹텄다. 하씨의 친구로 와르다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이예수씨 말을 빌리면 “눈치채진 못했지만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와르다 레스토랑 페이스북
제주시 용담2동에 위치한 와르다 레스토랑은 ‘할랄음식’을 찾는 이들로 붐빈다. 

결혼식은 7일 제주에서 전통혼례로 치른다. 1일과 2일 와르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아민과 와르다는 결혼까지 하게 된 이유를 ‘존중’에서 찾았다. “민경은 저를 존중하고, 저는 민경을 존중하죠.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존중하는 훌륭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 예상하지 못한 만남들은 제 삶에 축복이 되었어요.”(아민) “저는 아랍어와

영어를 조금밖에 못하고, 아민은 한국어랑 영어를 조금밖에 못해요. 그렇게 말하는데도 죽이 잘 맞아요. 가끔 싸울 때도 몸짓을 섞어가며 말하면 결국 웃으며 끝나게 되요.”(하씨) 그래서 친구들 청첩은 두 사람의 사랑을 엮어준 한글과 영어, 아랍어 3개로 했다.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멋진 사람들의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하씨는 예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지난해 6월 초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따라 제주는 쌀쌀했고 비가 왔다. 한국 무용과 국악을 전공한 하씨는 100㎡ 정도 되는 연습실을 갖고 있다. “난민을 돕는 분께 연락해서 ‘제 연습실이 비어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었죠.” ‘지붕만 있으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날로 예멘인 10여명이 하씨의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 연습실은 예멘인들을 위한 ‘비공식 쉼터’가 됐다. 법무부가 지난해 말 난민 심사를 마칠 때까지 제주에 발이 묶인 예멘인들은 하씨의 연습실에서 일자리 상황을 공유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낯선 이의 ‘환대’를 경험했다. 그렇게 연습실을 거쳐 간 예멘인만 100여명에 이른다.

와르다 레스토랑 페이스북
아민이 만든 아랍음식 ‘훔무스’. 병아리콩을 으깬 무스 형태의 향토음식. 

늘 음식이 문제였다. 이슬람 율법에 따른 음식만 먹을 수 있는 무슬림들은 젤리를 먹을 때도 ‘돼지고기’가 들어 있는지 성분표를 살펴야 한다. 제주도에 등록된 외국인은 2만명이 넘는다. 상당수는 농사일을 하거나 양식장에서 일하는 무슬림이다. 제주에는 제대로 된 할랄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었다. 연습실에 모인 예멘인들은 어렵게 사 모은 식재료로 고향 음식을 해 먹었다.

와르다 레스토랑 아이디어는 여기서 시작됐다. 제주 앞바다에서 뱃일하던 아민은 예멘과 말레이시아에서 요리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스파게티, 샐러드, 수프 등 테스트 푸드를 만들어서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실력을 인정받아 ‘셰프’로 영입됐죠. 긴장되는 자리였어요.”

지난 1일 밤 찾은 와르다 레스토랑에는 빈 테이블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관광객들, 제주에 정착한 예멘인들, 성산포 양어장에서 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왔다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할랄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하씨는 이 모든 게 “물 흐르듯 일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이 결혼이 특별한 일처럼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연히 만나 이뤄진 일이니까요.”

지난해 ‘난민 공포’가 무색하게 제주와 ‘육지’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와르다와 아민의 사랑이라는 작은 결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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