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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전쟁터의 메이드 인 코리아

시민단체 “중동 지역 무기 수출 중단” 요구

ⓒYOUTUBE

4년째 내전 중인 예멘에서 6월18일 후티 반군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들여다본다. 아랍어로 추정되는 생경한 언어가 흘러나온다. 군복을 차려입은 반군이 무기를 바닥에 잔뜩 펼쳐놓은 채 일일이 설명하며 자랑하는 듯하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군용 망원경과 무전기, 총탄들… 그 틈에 30여 개 수류탄도 가지런히 나열돼 있다. 카메라가 ‘줌인’으로 수류탄 하나를 비춘다. ‘세열수류탄 K413 COM(P) 로트 한화보 14아625’. 어라? 예멘 전쟁터에 웬 한글이?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한글이 분명하다. 나란히 놓인 같은 모양 수류탄에도 한글 ‘세(열)’와 ‘한(화)’이 선명하다. 탄체는 작고 가볍지만 살상반경이 10~15m에 이르는 한국산 ‘살상무기’다.

ⓒYOUTUBE

예멘 속 한화의 수류탄

한겨레21이 아랍어 통역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영상 속 반군이 “(예멘 정부군을 돕는) 사우디아라비아군이 도망갔고 후티 반군이 사우디군의 무기를 얻었다”고 말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군이 “우리가 사우디군을 쫓고 있고 그들의 무기를 더욱더 많이 빼앗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쭈야는 “영상이 올라온 채널은 후티 반군이 운영하고 있으며, 반군의 전투 활약상을 홍보하는 채널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영상은 후티 반군이 찍은 것으로, 예멘과 사우디의 접경 지역인 나르잔에서 반군이 사우디군에게서 탈취한 무기라고 했다.

한화 쪽은 “중동 지역 수출 내역이 있지만 국방부와 엠바고(비보도) 사항이어서 말해줄 수 없다”며 “한 가지 분명한 건 (한화가) 예멘에 무기를 수출한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지역에는 무기 수출 내역이 있다”며 “국가 주도 방위산업이기 때문에 국가 허락 없이 무기 판매를 못한다. 국가 간 필요에 의해 수출한 것이나, 수출을 했다가 중단했다가 하기 때문에 (해당 수류탄의) 수출 시기를 특정짓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한화가 UAE에 수출한 무기가 예멘으로 흘러간 경위를 좀더 구체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영아 참여연대 국제 간사는 “(아랍) 다국적군이 UAE군을 훈련한다. UAE가 (다국적군을 이끄는) 사우디에 군대를 파병하면서 한화가 수출한 무기가 사우디로 흘러간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예멘 내전에서 쓰이는 또 다른 한국산 무기의 사진과 동영상도 떠돈다. 전쟁무기 마니아들이 ‘관심사’로 올린 것이 많은데, 평화와 인권에 관심을 둔 한국인들에겐 ‘충격적인 뉴스’다.

스스로를 ‘예멘 업저버(관찰자)’로 소개한 트위터 사용자는 6월24일 “(예멘 사다주) 바킴 지역에서 사우디군이 한국산 대전차유도미사일(ATGM·전차나 장갑차를 공격할 때 쓰는 소형 미사일)로 후티 반군을 겨냥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동영상을 올렸다. 쭈야 활동가는 사우디군이 쓰는 무기가 한국산 대전차유도미사일 ‘현궁’이라고 소개했다. 현궁은 최첨단 휴대용 중거리 대전차 미사일 시스템이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전체 개발을 맡았고, 유도탄 체계는 LIG넥스원이, 발사대는 한화가 개발과 생산을 맡았다.

ⓒTWITTER/YemeniObserv

“중동에서 현궁은 훌륭한 무기”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사우디군이 예멘(반)군을 향해 현궁을 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현궁이 맞다”며 “우리가 사우디에 현궁을 수출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중동에서 현궁은 훌륭한 무기로 평가받고 있다”며 “사우디가 현궁을 사용하는 영상을 본 UAE가 자신들도 현궁을 사고 싶다고 문의할 정도”라고 전했다.

지구촌 76억 인구가 서로 인연을 맺는 방식은 종종 우리의 상식과 편견을 뛰어넘는다. 한국 수도 서울에서 예멘 수도 사나까지의 거리는 무려 8343㎞. 한국에선 낯선 예멘인들이 전쟁을 피해 한국 땅을 밟은 일로 여전히 소란이 한창이다. 예멘에선 생소한 한국 무기가 내전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있지만, 대다수 예멘인들은 아직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테다. 한국 정부로부터 출국 명령을 받은 한 예멘 난민은 한겨레21에 “전에 어떤 예멘인이 집회에서 한국 무기가 예멘 전쟁에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도 믿지 않았다”며, 예멘에서 한국산 무기가 발견됐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예멘 출신 유학생은 “지금 예멘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한국산) 무기에 인명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방위산업을 국가산업으로 보는 한국 정부는 ‘국익’을 이야기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최재성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은 국방부에 한화 수류탄과 현궁 등 수출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급 기밀사항이라 협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국방부 관계자는 <한겨레21>에 “현궁은 애초 수출을 위해 제작된 무기다. 군수사업에는 여러 목적이 있는데 수출을 위해 제작한 무기는 대외비가 아니다. 의원실에 대외비라고 설명한 공무원은 혼을 내야 한다”고 귀띔했다.

예멘은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이영아 간사는 ‘국익론’과 ‘난민 혐오’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가 파는 무기가 예멘의 일반 시민들을 죽이고 있고, 예멘인들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한국과 예멘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한국 무기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쭈야 활동가는 “한국 무기 사진과 동영상이 이렇게 돌고 있는데 정부는 이 부분을 공개하지도 않고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며 “중동 지역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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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예멘 #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