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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한국인 가족과 무슬림 예멘 가족이 함께 지낸 지 2주째다

이들을 들인 이유는 빈방이 있어서다.

제주 주민 ㅇ씨의 집에 머무는 압둘라(가명) 가족이 산책하고 있다.
제주 주민 ㅇ씨의 집에 머무는 압둘라(가명) 가족이 산책하고 있다. ⓒ한겨레/임재우 기자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제주의 ㅇ씨 가족은 예멘의 무슬림 가족과 2주째 함께 살고 있다. ㅇ씨의 남편과 어린 두 자녀에 예멘인 압둘라(가명·42) 부부, 그들의 다섯명의 딸까지 모두 11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한 집에 북적이며 산다. 국적과 종교, 문화가 다른 ‘예멘 가족’을 ㅇ씨가 맞이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집에 빈방이 있어서 오시라 한 거예요.”

예멘에서 말레이시아를 거쳐 지난달 7일 가족과 함께 제주로 온 압둘라는 공무원이었다. 33년간 예멘을 통치한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이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의 여파로 2012년 축출된 뒤, 예멘은 수니파 정부와 시아파 후티 반군, 알카에다 등으로 사분오열해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지금 예멘에서는 당신이 누구의 친구인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향해 싸우고 있죠. 전기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징집되고, 누군가는 죽어 나가죠.”

압둘라씨는 2012년 예멘을 탈출해 그리스 등 여러 나라를 떠돌다 2015년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에 정착했다. 난민 지원제도가 제대로 없었던 말레이시아에서 압둘라 부부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딸 나디아(가명·18)와 과학자를 꿈꾸는 히얌(가명·17)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압둘라 가족이 제주로 온 이유다.

ㅇ씨는 종종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하루는 ‘할랄푸드’(이슬람 율법에 허용된 음식)만 먹을 수 있는 압둘라 가족을 배려해 돼지고기 대신 삼계탕을 대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닭고기도 이슬람식 도축법으로 피를 완전히 빼내지 않으면 ‘할랄푸드’로 인정되지 않았다. 율법이 허용하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압둘라 가족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먹었다. 며칠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ㅇ씨는 젤리를 살 때도 돼지고기 성분 함유 여부를 살핀다.

ㅇ씨의 지인들도 힘을 보탰다. 그들은 압둘라 가족에 이불 등 생필품뿐만 아니라 자동차까지 한 대 내어줬다. 제주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제주에서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는 대만인 ‘제인’(가명)은 하루에 한 번 한국인 친구와 함께 이 집을 찾아 압둘라의 자매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자신처럼 낯선 땅에 정착한 예멘 자매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시작한 한국어 수업이라 한다.

하지만 ㅇ씨와 주변인들의 선의로 이뤄진 ‘제주살이’를 영영 이어갈 수는 없다. 압둘라 가족은 “언제까지 제주도의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출도 신청을 해둔 상태다. 압둘라 부부는 수도권에 있는 이슬람 커뮤니티의 도움을 얻어 자력으로 돈을 벌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나디아와 히얌의 꿈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은 한국 부모들의 마음과 다름없다.

하지만 최근 압둘라 가족을 둘러싼 제주의 분위기는 예사롭지 않다. ㅇ씨 가족이 압둘라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이웃이 찾아와 이 가족이 언제 떠나는지 물었다.

ㅇ씨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뉴스를 보면 한 무리의 낯선 외국 남자들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 안의 두려움과 불안을 꺼낼 수 있는 도구로 예멘인들을 쓸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ㅇ씨는 낯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한다고 했다. “저도 지나가는 외국인을 보면 두려움을 느끼는 걸요. 이해하고 존중해요. 다만 저는 이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내적인 에너지, 따뜻함을 많이 얻었어요. 그것만큼은 확실합니다.”

24일 현재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주민들의 도움으로 ‘제주살이’를 이어가고 있는 예멘인 가정은 압둘라의 가족을 포함해 네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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