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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05일 16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05일 21시 25분 KST

엄마에게 맞고 온 내게 새엄마는 제발 죽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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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fpost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작가 채이든은 최근 매스컴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아동 학대 관련 기사에 가슴이 아팠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어 학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안타까워 글을 썼다고 한다.

여섯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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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맞아서 나는 앞니 한 개를 잃어버렸다.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아빠는 말이 없었다. 나도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열 면 앞니 빠진 자리가 드러나고 아빠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의정부에서 아빠는 나를 치과에 데려갔다. 이미 엄마와 다녀왔는데. 치과에서 나온 후에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내려서 동네로 걸어왔다. 마당으로 들어올 때까지 아빠는 끊임없이 한숨을 쉬었다.

“어머나! 이든이 왔어? 엄마랑 잘 지냈어?”

마루에서 새엄마가 웃으며 아빠와 나를 반겼다. 아빠는 나를 앞세우고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새엄마를 불렀다.

“이리 와서 애 입안을 들여다봐!”

“네? 왜요?”

“가까이 와서 좀 보라고! 애 앞니가 어떻게 됐는지!”

내 앞니가 빠진 것을 보고 새엄마가 기겁했다. 아빠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그리고 이 좋은 구경거리를 혼자 보지 않았다. 나를 당장 친정집으로 데려가서 식구들에게 보였다. 외할머니가 새엄마에게 말했다.

“얘가 지난겨울부터 이갈이했잖아. 저번에는 빵을 먹다가 이가 빠졌어. 이번에도 흔들리다가 마침 손이 닿아서 빠진 거겠지. 이가 부러지도록 애를 때렸다는 말을 믿으라는 거냐?”

새엄마는 외할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엄마, 얘가 뭐로 맞았는지 알아? 손이 아니라 명패야! 사무실 책상에 사장 아무개, 부장 아무개라고 새겨놓은 명패 있잖아. 그걸로 입을 때렸단 말이야! 그리고 이빨은 부러진 게 아니야. 뿌리째 뽑혀나갔어! 오빠가 치과에 데려갔는데 의사가 그렇게 말하더래!”

나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서 치과에 두 번이나 갔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새엄마의 설명을 듣고 속상했다.

“더 큰 일 난 게 뭔지 알아? 앞니가 새로 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대. 아예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내년에 학교를 들어갈 텐데 어떡한대? 애들이 놀려대지 않겠어? 어른이 되어도 앞니가 나지 않으면 어떡한대? 앞니 빠진 아가씨라니! 상상이 돼?”

외할머니가 슬쩍 몸서리쳤다.

“나는 통 믿어지질 않는구나……. 나도 애를 다섯이나 키워봐서 화가 솟구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엄마가 어떻게 자식을 상하게 한단 말이냐.”

외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새엄마도 나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도 질문은 피해갈 수 없었다. 새엄마가 물었다.

“얘! 너희 엄마 집에 가서 장기자랑은 잘 선보니? 그 집 아저씨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저씨가 너를 키우고 싶어 했니?”

“아저씨는요…….”

나는 엄마가 사는 집에 가지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저씨를 볼 수 없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는요……. 나를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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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집에서 지냈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내 앞니에 관한 소문이 전국으로 퍼질까 봐 두려웠다. 새엄마도 한동안 나를 딱하게 여겼다. 내가 종일 방에 있어도 나무라지 않았다.

글자를 깨우쳐서 다행이었다. 동화책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였다. 이부자리에서 책을 읽으면 모험을 떠난 것처럼 즐거웠다. 마법의 주문처럼 특별한 단어도 있었다. 낙타와 당나귀, 양탄자와 레몬을 중얼거리면 왠지 행복해졌다. 조용히 노는 방법도 궁리해냈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내 숨소리를 감상했다. 발가락으로 그림자를 만들어서 벽에 비췄다.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면 벽지가 겹쳐 보여 신기했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내복을 챙겨입으라는 말을 들었다. 하루는 새엄마가 나를 조각공원으로 데려가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읍내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이틀 후에 읍내에서 사진을 찾아오고 사진을 등기 봉투에 담아서 읍내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찻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에게 말했다.

“야! 너는 엄마한테 갔을 때 잘 좀 보일 것이지! 뭐하러 성질을 돋운 거야? 내가 너 때문에 이 짓을 또 해야 하잖아! 너 그냥 차에 치여 죽어라! 애들은 교통사고가 자주 난다는데 너는 왜 밖에 돌아다녀도 차에 안 치이는 거야?”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단칸방에서 살 때 화장실이 주인집 안에 있었다. 엄마와 나는 주인집에 들어가기가 껄끄러웠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넷째 큰집으로 갔다. 그런데 큰집에서 종종 개를 키웠다. 화장실은 대문가에 있었다. 개도 집을 지키라고 대문가에 묶여있었다. 나는 큰집에 사는 개를 친척으로 여겼다. 하지만 개는 옆집에 사는 나를 친척으로 여기지 않았다. 살금살금 대문 열고 들어오는 나를 도둑으로 여기고 사납게 짖어댔다. 단지 화장실에 가려고 했을 뿐인데……. 며칠 후에 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있으면 무섭고 없으면 허전했다. 어느 날, 나는 개가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되었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구경거리를 보여준다고 강둑 다리로 안내했다.

개는 강둑다리에 매달려있었다. 온몸에 밧줄이 감겨있었다. 어른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을 피우고 솥단지에 물을 끓였다. 그리고 번갈아서 몽둥이로 개를 때렸다. 개는 오랫동안 고통받으며 소리를 냈다. 주둥이도 묶여있어서 구슬픈 신음을 냈다. 우리는 숨어서 몰래 지켜보았다. 끝까지 볼 수 없어서 골목으로 도망쳤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어떤 아이에게 물었다.

“저게 뭐야? 왜 그래? 왜 때려?”

개를 죽이는 거라고 했다. 죽음은 외롭고 불안하고 오래 겪는 고통이었다.

새엄마가 말을 이었다.

“너 제발 좀 차에 치여 죽어라. 응? 내가 누구보다 슬프게 울어주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러줄 테니까. 내가 나중에 천벌을 받아도 좋아. 지금 너랑 사는 게 지긋지긋한데 어쩌겠어? 봐서 트럭이 오는 것 같으면 뛰어들라고!”

나는 새엄마에게 물었다.

“지금 뛰어들어요?”

새엄마는 걷다 말고 펄쩍 뛰었다.

“미쳤니? 네가 지금 뛰어들어서 죽으면 내가 뭐가 되겠어? 사람들이 애 하나 간수 못 하고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할 거 아니야!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너 혼자 돌아다니다가 찻길에 뛰어들어! 내가 평생 너를 기억하고 미안해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도착해서 남은 사진, 등기 봉투에 들어가지 못한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앨범에 사진을 꽂아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표시 같은 것……. 나는 사진에다 아픈 부분을 표시했다. 파란색 사인펜으로 귀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칠했다. 눈과 코, 볼에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칠했다. 손톱 반달이 밀렸을 때 아팠으니까 손에도 동그라미를 그렸다. 앞니 빠진 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파란색 동그라미로 얼룩졌다. 사진 뒷면에는 생각나는 대로 글자를 끄적였다.

하하하 웃어요. 엉엉 울어요. 안녕하새요. 나는 당나기 친구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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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옥탑방에서 아빠에게 맞은 이후로 새엄마는 넷째 큰아빠를 들먹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빠에게 이른다고 말했다. 사진에 흔적을 남긴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새엄마가 보고 아빠에게 일렀다. 아빠와 새엄마, 나는 앨범을 가운데 놓고 마루에 둘러앉았다. 아빠는 내 앨범을 펼치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빠가 말했다.

“그림이랑 글자를 연습하려면 연습장에다 해야지. 왜 사진에다 낙서한 거야? 너 집에 불나면 제일 먼저 갖고 나와야 할 물건이 뭔지 알아? 앨범이야. 가재도구는 돈을 주면 다시 살 수 있지만, 사진과 필름은 다시 살 수 없는 거라고!”

나는 아빠가 낯설었다. 한집에 살고 있는데, 한방을 쓰고 있는데 읍내에서 마주치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아빠가 말을 이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거야.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같은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없는 거야. 추억은 소중한 거야. 앞으로 절대로 사진에 낙서하지 마!”

예상보다 크게 혼나지 않았다. 새엄마는 김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마당으로 걸어 나와서 온 식구가 마루에 처음 둘러앉은 추억을 머리에 새겼다. 시골로 이사 온 지 몇 달만이었다.

트럭에 뛰어드는 건 쉽지 않았다. 트럭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버스가 다니는 찻길이었다. 읍내거리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부담스러웠다. 내가 오산 시장에 찾아가려고 걸어간 아래쪽 찻길에는 따뜻한 추억이 담겨있었다. 꽃향기, 시외버스 꽁무니, 나를 도와준 사람들……. 그래서 위쪽 찻길을 따라서 걸어갔다. 한적한 길가에서 트럭을 기다렸다. 트럭이 나타나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발이 찻길로 뛰어들지 않았다. 발을 디뎌도 경적에 놀라서 물러났다. 

도저히 트럭에 뛰어들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데 달려들 수 없었다. 새엄마의 바람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읍내 변두리에 주유소가 있었다. 날마다 주유소로 놀러 나갔다. 주유소 입구에 웅크리고 앉아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놀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트럭이 달려온다면 성공이었다. 겁낼 필요 없이 나도 모르게 트럭에 깔리면 되니까. 그런데 주유소에 들르는 자동차는 있어도 나를 치고 가는 자동차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걸음이 무거웠다. 방에 들어가면 트럭에 치여 죽으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하루는 주유소에서 마음 놓고 앉아있었다. 며칠째 주유소에 놀러 와도 아무런 사고가 없어서 긴장이 무뎌져 있었다. 그런데 경적이 짧게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봤더니 코앞에 승용차가 다가와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닥에 고인 몇 방울의 물이나 워셔액 따위를 밟아서 미끄러졌다. 밑에서 올려다본 승용차는 트럭만큼이나 커다랗게 보였다. 나는 울먹이며 옆으로 기어갔다. 그런데 승용차도 바퀴를 슬그머니 굴려서 나를 따라왔다. 나는 반대편으로 허둥지둥 기어갔다. 큰일 났다. 저 차는 나를 치어버리려고 주유소에 온 것 같았다. 각오했는데도 몸이 이리저리 기어가고 있었다. 승용차도 구르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뒤따라왔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반복된 꿈이 떠올랐다. 회색 건물 앞에 서 있는데 괴물이 다가오는 꿈. 도망가지 않아서 괴물을 만났지만, 괴물의 얼굴을 확인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떤 아저씨가 핸들을 잡고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지 눈으로 물었다. 아저씨는 콧방귀를 날렸고 승용차는 주유소를 떠났다.

 * 소설 ‘물기 없는 자리’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