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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가진 무성애자가 알려주는 정자은행 사용법

정자를 제공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들까?

지금 일본에서는 스기타 미오 자민당 의원이 “LGBT는 생산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글을 잡지에 실어 물의를 빚고 있다. 미오 의원은 남녀 커플이 아니면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그래서 “생산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도 그는 동성 커플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아이를 결코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과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공존하는 건 아니다. 결혼과 출산을 한 세트로 여기는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아이를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KAORI SASAGAWA / HUFFPOST JAPAN

만화가 카키 레이는 스스로를 성동일성 장애자로 소개한다. 자신의 성을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중성이라고 파악한 그는 연애감정과 성적욕망이 없는 무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케이는 현재 아이를 낳아 기르는 중이다. 아이를 출산한 건 1년 전이었다.

그녀는 “연애나 섹스에 대한 욕구가 없었고,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며 “그래서 결국 미국의 정자은행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여성‘과 ‘연애감정’을 연기했던 과거 

-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건 언제부터입니까?

= 사춘기 전까지는 전혀 의식이 없었어요. 남성 성향의 X젠더(남/녀라는 젠더 구분과 이분법에서 탈피하는 개념)라고 하면 흔히 보이시한 외모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어머니가 워낙 소녀 스타일의 옷을 선호했었고, 그래서 저도 어렸을 때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발레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보기에는 제 성향을 알 수 없었겠죠. 성향이 드러났다면, 소꿉놀이를 하기 싫어했다는 정도일까요? 또 유치원 시절에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신칸센의 운전기사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제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면, 저에게 “여자 주제에 이상한 말투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그때는 담임선생님도 제 성향을 의심했던 것 같아요. 그때 “나는 남들과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 연애 감정이나 성적 욕망이 없다는 걸 인지한 것도 사춘기 때였나요?

= 그건 20세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제 성향에 대해 강하게 자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가라오케 같은 곳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친구에게 나는 남자친구를 사귄 적도 없고, 섹스를 한 적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그때 친구는 “아직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것뿐”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시작했습니다.

- 그런 혼란을 느끼다가 본격적으로 자각한 건 언제였나요?

= 20세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인터넷으로 검색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남자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레즈비언인 걸까? 라고 생각하다가 LGBT 관련 사이트로 들어가게 됐죠. 그곳에서 여러 내용을 보다가 ‘X젠더’와 ‘무성애자’란 단어를 알게 됐어요. 나에게 맞는 용어를 발견하고 나자,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었고, 그래서 제 존재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에 대해서 안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 그때까지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제일 괴로운 건, 자신을 속여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대부분 상황에서 저는 이성애자인척 하면서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성향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무의식중에 평범한 여자아이를 연기했습니다. 결국 저는 어떤 친구와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높지도 않았죠. 그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무성애자에 관해서는 오해도 많았습니다. 제가 “연애감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무작정 저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했었죠. 또 예전에 남성에게 폭력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KAORI SASAGAWA / HUFFPOST JAPAN

 정자를 제공한 사람과의 인연은 1ml도 없는 게 좋다

- 카키 레이씨는 정자은행을 통해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런 구상을 오랫동안 했나요?

= 원래는 가족을 만들 생각도 없었죠. 저희 부모님이 항상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저 역시 ‘가족’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버지와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죠. 그래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려졌을 때 순간적으로 “내가 외톨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가족’이 중요하다고 여겨졌어요.

가정에 대한 집착은 없었지만, 5살 때부터인가 미래에 가족을 만든다면 ‘나’와 ‘아이’라는 단위로 만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때도 파트너를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발상은 하지 않았습니다.

- 정자은행외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나요?

= 입양제도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최소 조건이 결혼한 부부였어요. 독신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죠. 최근에는 남성 동성 커플이 아이를 입양한 사례도 있지요. 이걸 반대로 말하면 최근까지도 동성커플은 아이를 입양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요. 미국이나 캐나다, 중국의 아이를 입양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자은행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 정자은행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거부감 같은 건 없었나요?

= 저는 반대로 정자은행 외의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낯선 남자와 만나서 원나잇을 해서 아이를 만들어버리는 작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도 ‘성적인 욕구가 있는 여성’을 연기해야 하잖아요. 그것도 싫지만 상대방을 속이는 것도 싫었습니다.

또 저는 냉동정자로 아이를 가진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자은행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해외에 있을 때 알게된 분인데, 그 사람은 태어났을 때 남성으로 태어났어요. 이후 성전환수술을 했는데, 수술 전에 정자를 동결보존시켰죠. 수술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정자를 이용해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 분과 알고 지내서 그런지, 정자은행은 상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 알고 지내는 남성에게 정자 기증을 의뢰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요?

= 정자 제공자와는 1ml의 유대관계도 없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간관계에서는 어떤 확실한 약속도 불가능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이좋은 친구들에게 여러번 제 성적 성향을 이야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제 먼저 말을 걸지 말라”고 했었죠.

또 아는 남성에게 정자를 부탁했을때, 그가 마음이 바뀌어서 나중에 양육권을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그렇게 되면 재판에서 질 확률이 매우 높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에게 정자를 제공해준 그 남자들은 혹이 제게 나중에 양육비를 요구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그분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할 때 정자 제공으로 낳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려운 일이 많을 겁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과 관계가 나빠지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디까지나 나 혼자 키워야 하고, 정자를 제공해 준 사람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KAORI SASAGAWA / HUFFPOST JAPAN

 

정자은행을 이용하는 방법

- 정자은행을 이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 ‘sperm bank’(정자 은행) 나 ‘cryo bank’(동결 은행)를 검색하면 많은 정자은행이 나와요. 저는 여러 ‘은행’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냉동정자를 일본까지 보내줄 수 있는지 확인했어요.

배송비는 비싼 편입니다. 영하 200도에 가까운 액체질소로 얼린 정자를 보온병 같은 것에 넣어서 신속하게 배송되어야 하니까요. 배송비는 대부분 80만엔(약 805만원)에서 100만엔(10007만원) 정도였습니다.

제가 선택한 곳의 배송비는 20만엔(약 2백만원) 정도였어요. 또 2ml정도의 정자가 들어있는 앰플 하나에 3만엔(약 30만원)이었죠. 처음에는 20만엔이어도 배송비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정말 단 하루만에 도착했어요. 나름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냉동정자를 받으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나요?

= 도착한 정자를 주사기 같은 실린더에 넣고 작업을 합니다. 제 경우에는 한 달에 앰플 3개를 사용했는데, 2개월 만에 임신이 됐어요.

- 이런 노하우는 정자은행에서도 알려주나요?

= 따로 강좌는 없습니다. 제가 이용한 정자은행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함께 있었어요. 이용자들끼리 여러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었죠. 예를 들면 이런 질문입니다. “액체 질소에 보관하고 있으면 정말 차가울 텐데,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건가?” 또 같은 사람으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은 사람들끼리 모임을 약속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처럼 정자은행이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것 같습니다. 

-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선택하기 전에 기증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어느 정도인가요?

= 인종, 국적, 머리색, 머리카락의 두께, 눈동자 색, 골격, 신장, 체중, 오른손잡이 또는 왼손잡이의 여부, 취미, 아버지와 조부모의 병력과 사망이유, 본인의 유전병 검사 결과, 과거에도 정자제공으로 탄생한 아이가 있었는지의 여부 등등 정말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처음 검색해서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신장과 체중 정도입니다. 하지만 2천엔(약 2만원) 정도를 지불하면 모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원하는 기증자를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타당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 누군가와 결혼을 할 때도 다 얻을 수 없을 만큼의 정보량이군요. 정자 기증을 하려는 사람들의 각오도 상당히 필요하겠네요.

=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자를 제공한 기증자의 대부분이 “학비를 벌기 위해서”라거나, “기본 생활비가 필요해서”라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만큼 장벽이 높지 않은 거죠.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정자를 한 번 제공할 때마다 약 5천엔(약 5만원) 정도를 받는 것 같습니다.

 

‘엄마’라 불리는 게 어색하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아기가 건강하다”고 말했을 때도 임신이 실감 나지 않았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내가 정말 아이를 가졌구나라고 안심했죠. 그리고 저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인 내가 출산을 했다!”라는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 자녀가 태어난 후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 대인관계가 바뀌었어요. 저는 이전에는 친구나 이웃을 거의 사귀지 않았어요. 몇몇 친구와만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서 더 많은 사람과 만나려 하고 있어요.

- 반대로 고민하는 게 있다면요?

= 제가 ‘엄마’로 불리는 것에 위화감이 있습니다.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산부인과에서 저를 ‘아이 엄마’로 불렀습니다. 그때도 ‘나를 부르는 건가?’라고 할 정도로 낯설었죠. 앞서 말했듯이 제가 저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른 좋은 호칭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는 정자은행 제도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단, 부부의 불임치료 과정에는 타인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법은 제정되어 있지 않아요.

= 미국처럼 정자은행이 인정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나잇’을 통해 아이를 만들려하거나, 지인들에게 제공 받으려 할테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가정이 악화되는 경우도 나올 수 있습니다. 법이 정비되어 누구에게나 선택이 가능하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파트너없이 아이를 갖고 싶은 분들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 자녀가 성장한 후,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할 생각인가요?

=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이건 선택적 미혼모 커뮤니티에서도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그때 아이의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죠.

진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에 대한 방법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카카 케이씨에게 이제 가족은 무엇인가요?

= ‘방파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때, 나를 받아줄 수 있고 그래서 슬픔을 막아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취재 · 글 : 佐々木ののか

편집 : 笹川かおり

*허프포스트일본판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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