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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한국의 월드컵 16강 확률은 50 대 50이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지난 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사무실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전망과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지난 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사무실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전망과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29.4%(야후 스포츠), 25%(이영표 해설위원), +2000달러 베팅(데이비드 섬프터)….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진출 확률을 보여주는 다양한 수치다. 대개 30%를 넘지 못한다. 영국 런던 출신의 수학자로 <사커매틱스>를 쓴 데이비드 섬프터의 계산을 보면 실감이 난다. 그가 연구진과 개발한 ‘사커보트’ 베팅 예측 모델의 한국 월드컵 F조 우승 전망은 +2000달러다. 100달러를 베팅하면 2000달러를 벌 수 있는 위험이 큰 투자다. F조 경쟁팀인 멕시코는 +500달러, 스웨덴은 +600달러로 한국보다 액수가 낮다. F조 최강 독일은 -325달러로 매겨졌는데, 독일의 조리그 우승에 325달러를 베팅하면 100달러만 돌려받는다는 식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일군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 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회의실에서 만난 허 부총재는 특유의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스포츠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축구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기적적으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통계나 확률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지만 꼭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견해를 축구 애국주의라고만 보지 말라. 나는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고 말했다.

누가 깜짝 스타?

허 부총재의 희망에는 오랜 월드컵 경험과 ‘감’이 깔려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선수로 나갔고, 90년 월드컵(대표팀 트레이너), 94년 월드컵(대표팀 코치), 98·2002 월드컵(해설위원), 2006 월드컵(현지 관람), 2010 월드컵(대표팀 감독), 2014 월드컵(대표팀 단장)까지 매번 현장에 있었다.

물론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 권창훈과 수비수 김민재가 부상한 것은 분명 큰 손실이다. 그는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는데 굉장히 아쉽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스포츠 무대에서는 위기 때 등장하는 새로운 스타가 의외의 활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

1974년 대학 1학년 때 국가대표로 소집된 허 부총재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했다. “당시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 이르면서 득점을 많이 했는데, 태국(타이)에서 열린 킹스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이회택 선배가 부상을 당했다. 함흥철 감독과 김정남 코치가 나를 대타로 선발했는데 첫 성인대표팀 호출이었다. 킹스컵에서 센터 포워드로 뛰었는데, 태국과 결승전 연장에서 추가골을 터뜨려 3-1로 이긴 적이 있다.”

허 부총재의 일화만이 전부는 아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마지막 독일과의 3차전 때 후보 골키퍼 이운재가 등장했다. 김호 감독은 전반에 3골을 내준 최인영을 빼고, 후반에 이운재를 기용해 2-3 추격전을 펼친 바 있다. 이운재는 8년 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하나가 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중 곽태휘가 부상해 낙마하면서 이정수가 급부상했는데, 이정수는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전에서 한 골씩을 넣었다.

이번엔 누가 깜짝 스타가 될 것인가? 허 부총재는 선수를 꼽아달라는 말에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결국은 한 명이 아니다. 작전을 잘 짜고, 모두가 조직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32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뒤에서 세 번째다. 한국(61위)보다 뒤처진 나라는 러시아(66위)와 사우디아라비아(67위)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한국 헝가리 터키 독일)부터 이번 러시아 월드컵까지 쉬운 상대와 한 조가 된 적이 없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헝가리(0-9)와 터키(0-7)에 지면서, 8강 진출을 확정한 독일과는 아예 대결조차 못했다. 1986년(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 1990년(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 1994년(스페인 독일 볼리비아), 1998년(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 2002년(폴란드 미국 포르투갈), 2006년(토고 프랑스 스위스), 2010년(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 2014년(러시아 벨기에 알제리) 월드컵까지 상대는 난적이었다.

러시아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강한 편이 아니다. 힘과 체격이 좋지만 기술적으로는 약간 둔탁하다.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나을 수 있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역대 스웨덴전 전적은 한국의 2무2패다. 멕시코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멕시코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무패 우승을 했다. 당시 동메달을 딴 한국은 예선에서 멕시코와 0-0으로 비겼다. 1948년 올림픽에서는 우리가 5-3으로 멕시코를 이겼다. 98년 월드컵에서는 1-3으로 졌지만 경기력에서 뒤지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멕시코전은 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역대 멕시코전 전적은 한국의 4승2무6패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같은 조에 절대강자가 편성된 것은 이해득실을 명쾌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허 부총재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는 B조의 아르헨티나가 무조건 3승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르헨티나에 지더라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1승1무를 거두면 올라갈 것으로 판단했다. 첫 경기 그리스전을 무조건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돌아봤다. 한국은 결국 1승1무1패로 16강에 올랐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 본선 F조에도 피파 랭킹 1위 독일이 있다. 독일이 3승을 한다고 전제하면 한국의 전략이 나온다. 허 부총재는 “스웨덴과 멕시코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웨덴도 1승을 위해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에 손흥민과 황희찬 등 빠른 선수가 있다. 이들을 활용하는 역습을 맞춤형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기지 못해도 다음 멕시코전이 있다. 그러나 첫 경기에 지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예측했다.

수비 강화가 가장 큰 과제

수비 강화는 신태용호의 가장 큰 과제다. 선수 부상으로 기본형인 포백 수비 전형은 사실상 5명의 수비가 이뤄지는 스리백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전원 수비와 전원 공격 등 많이 뛰는 축구는 기본이다. 허 부총재는 “수비는 수비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까지 서로 도와야 한다. 또 느리거나 빠르거나, 크거나 작거나 등 제각각인 선수의 특성을 파악해 서로 궁합을 맞춰 진용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비의 문만 걸어잠근다면 16강은 어렵다. 최소한 1승을 하기 위해서는 득점을 해야 한다. 허 부총재는 효과적인 득점 수단으로 세트피스를 거론했다. 그는 “세트피스의 성격이 묘하다. 세트피스로 득점하면 조직에 굉장한 힘이 생긴다. 반면 세트피스로 실점하면 선수들의 맥이 빠진다. 세트피스 득점을 위해서, 또 실점을 막기 위해서는 약속된 훈련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허 부총재가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오를 때 한국은 조리그 총 6득점 가운데 4골(이정수 2골, 이청용 1골, 박주영 1골)을 세트피스로 얻었다.

수비 뒤 역습의 한국형 패턴 플레이도 정교해져야 한다. 허 부총재는 “상대에게 공격을 당하다가 공을 빼앗았을 때, 상대 지역에서 공을 소유했을 때 위협적으로 배후를 노리는 방법을 훈련 과정에서 숙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한국이 B조 아르헨티나와 두번째 경기(1-4 패)를 봐도 그렇다.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이 강팀을 만났다고 너무 수비선을 내렸다. 오히려 상대를 자유롭게 공격하도록 놔줬다”고 비판했다. 허 부총재는 이렇게 변명한다. “내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올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날 우리가 허용한 골 가운데 2골은 수비선의 높낮이를 떠나 역습에 당한 것이다. 후반에는 우리가 밀어붙였다. 역대 그 정도 (잘한) 경기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나 경기 내용을 바라보는 내외부의 시각은 이렇게 갈린다.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재기 발랄하고 신세대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신태용 감독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있다. 한국 지도자 가운데 대표적인 ‘공격 성향’을 자랑하는 낙관파 신 감독은 머리가 깨져도 정면으로 맞붙는 스타일이다. 팬들은 신태용 감독의 속도와 패스 축구를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최후에 웃기 위해서는 자신의 축구 색깔을 접고 팬들이 보기에 지루할 정도로 단조로운 경기를 할 수도 있다. 허 부총재는 “감독의 자리는 외롭고 어렵다. 어떤 전술을 펴더라도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감독의 선수 감식안과 용병술은 팀의 운명을 좌우한다. 허 부총재도 2010 남아공 월드컵 사령탑을 맡으면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선수들한테 직설적이었다. ‘왜 안 돼?’ ‘너를 위한 일이야!’ ‘그냥 나를 따라와!’ 식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하나 마나 한 일이다. 실수를 해도 좋은 점부터 얘기하고, 잘한 점을 먼저 칭찬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건 좀 아쉽더라’ 하면 더 잘 통한다”고 했다. 오랜 기간 허 부총재를 접한 이영표와 박지성이 “감독님 왜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놀랄 정도였다.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과 교감하는 데 귀재다. 신이 나서 뛸 수 있도록 기를 불어 넣어주고, 팀 융합을 위해 벤치 선수들한테 많은 시간을 쏟으며 관리한다.

하지만 선수를 쳐내야 하는 악역도 맡아야 한다. 신태용 감독은 6월2일까지 현재 소집된 26명의 선수 가운데 3명을 탈락시켜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확정해야 한다. 허 부총재도 2010년 6월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지에서 최종명단 23명을 추리면서, 동고동락하던 이근호·구자철·신형민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 짐을 싸야 하는 선수들의 당혹감과 남은 선수들의 미안함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허 부총재는 “안정환에 대해서는 끝까지 ‘한방’을 해줄 것이라 기대해 잔류시켰다. 결국 몸이 올라오지 않았다. 김보경과 이승렬 등 막내급은 미래를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태용호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허 부총재는 “지더라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특유의 투혼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의 경험 때문에 더 그런 듯싶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10번인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는 임무를 맡았다. “대표팀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뛰다가 좌우 윙과 중앙 미드필더까지 원조 멀티로 뛰어다녔는데, 아르헨티나를 만났을 때는 김정남 감독이 아예 풀백으로 내려서도록 했다. 마라도나를 전담으로 막은 것을 두고 외신은 ‘태권도 축구’라며 비난했지만 난 퇴장을 당하지 않았다. 재능과 노력으로 완성된 슈퍼스타는 똑같은 선수가 아니었다. 우리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가장 못했다는 것은 지금도 위안이 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출사표에서 허 부총재는 솥을 깨고 배에 구멍을 내 침몰시킨 뒤 싸운다는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사자성어를 출사표로 대신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워야, 아니 실제 죽어야 ‘축구정신’이든 ‘군인정신’이든 ‘기자정신’이 남는 이치와 같다. 월드컵 원정 16강 길을 닦은 허 부총재가 신태용호에 바라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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