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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인터뷰] '딱따구리'의 '성평등 그림책' 구독 서비스 '우따따'를 운영하는 유지은 대표는 아이들이 더 넓은 세계를 보길 원한다

'우따따'가 선정한 그림책엔 '악당‘인 남자주인공, '조력자' 역할만 하는 여자주인공은 나오지 않는다.

  • 이소윤
  • 입력 2020.08.10 14:54
  • 수정 2020.08.10 18:25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우따따' 서비스를 운영하는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우따따' 서비스를 운영하는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 ⓒ유지은 대표 제공
‘우따따’는 3~7세 그림책 2~4권과 책과 관련해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는 워크북, 양육자 가이드들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우따따’는 3~7세 그림책 2~4권과 책과 관련해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는 워크북, 양육자 가이드들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유지은 대표 제공

“공주는 성에 갇혀있어, 왕자를 기다려야 해” 라고 말했던 아이는 이제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공주가 보호받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우따따’의 ‘성평등 그림책’이었다. 

‘우따따’는 성평등 교육을 원하는 양육자를 위한 도서 큐레이션 서비스다. 자체 ‘성평등’ 가이드라인에 맞춰 그림책 2~4권을 선별해 매달 보내준다. 그림책뿐 아니라 ‘나다움’을 학습할 수 있게 개발한 워크북, 양육자 가이드도 같이 온다. 

이 서비스를 만든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는 아이들이 ‘성 고정관념’을 깨고 변화했다는 후기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딱따구리‘라는 회사 이름에도 견고한 성별 고정관념의 벽을 뚫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부모라면 이런 편견을 배우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큐레이션 서비스는 어느새 1년을 맞이했다.  

- 주로 어떤 분들이 ‘성평등 그림책’ 서비스를 구독하나요?

= 요즘 세대 양육자분들은 아이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가르치려고 많이 노력하세요. 실제로 맞벌이 하면서, 집안일도 분담하고 공동 육아도 하는데 여전히 그림책은 ‘엄마는 앞치마‘, ‘아빠는 양복입고 회사 가는 장면‘이 담겨있으니 분노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아이의 ‘성 고정관념’ 발언을 듣고 놀라서 구독셨다는 분도 있고, 최근 ‘n번방’ 사건을 보고 신청하신 분도 있습니다.

- 아이들 장난감에도 ‘여아는 분홍색’, ‘남아는 파랑색’이란 인식이 있어요. 딸아이가 ‘분홍색 옷’이나 ‘공주 인형’을 좋아하면 억지로 뺏어야 할까요?

= 성 고정관념을 놀이문화로도 많이 흡수하게 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핑크색‘과 ‘공주’ 자체는 죄가 없어요. ‘핑크색’, ‘드레스’, ‘공주’가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문제죠.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만화 속에서 연약하게 그려지면, 아이들은 “분홍색은 여자색, 여자는 연약하구나”라고 인식하는 거죠. ‘핑크색‘과 ‘공주’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고, 좋아하면 뺏으라고 이야기하진 않아요. 

- 기존 영유아 콘텐츠 시장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영유아 콘텐츠를 만들고 판매하는 기업이 윤리적인 시각을 갖추지 않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양육자들이 모든 것을 사서 읽을수도, 걸러낼 수도 없죠. 애니메이션 여자 아이 주인공은 ‘콩순이‘가 유일해요. 콩순이 장난감도 ‘아기 인형’,’소꿉 놀이’,‘화장품’ 같은 것들이고요. 심지어 공룡 애니메이션에 남자 공룡은 멋진 기술을 쓰는데 여자 공룡은 ′ 반창고′ 기술을 써서 힐러(치료해주는 역할)를 하고 있더라고요.

조력자로 등장하는 분홍색 여자 공룡
조력자로 등장하는 분홍색 여자 공룡 ⓒYOUTUBE/핑크퐁
유명 애니메이션 중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온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다. 보조 역할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주로 분홍색으로 표현된다.
유명 애니메이션 중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온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다. 보조 역할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주로 분홍색으로 표현된다. ⓒEBS, 퍼니플러스, 올리브, 로이비주얼 /우따따 블로그

‘우따따’가 선정한  책에는 ‘성 고정관념’이 없다

유지은 대표는 해외 성평등 교육 가이드라인, 여성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성 평등 테스트 ‘벡델 테스트’, 성평등·성역할을 다룬 아동문학 연구자료 등을 참고해 자체 ‘성평등 그림책 선정 기준’을 만들었다.

수많은 그림책 중 우따따의 가이드 라인을 통과한 책만이 큐레이션 도서로 채택된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의 묘사와 설정이 성차별적이진 않은지,여성 주인공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사고하는지, 남성 주인공의 설정이 1차원적이지 않은지 등이다. 

 

- ‘성인지 감수성’과 더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으시다면서요?

= 재미없고, 완성도 낮은 책은 선택하지 않아요. ‘성인지 감수성’이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말이죠. ‘유해한 남성성’이 강조된 책도 뺍니다. 여자 아이의 진취적인 모습을 강조하려다 보니, 남자 아이가 너무 ‘악당’처럼 그려진 책이 있어요. ‘악당’과 ‘말썽꾸러기’,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잖아요. 이런 내용은 남자 아이들에게도 유해하다고 생각해요.

- 그림책인 만큼 삽화도 중요할 것 같아요. 

= 물론이죠. 책의 내용뿐 아니라 ‘그림’까지 꼼꼼하게 봐요. 내용은 좋았는데 삽화에 엄마‘만’ 속눈썹을 강조해놔서 아쉽지만 최종 선정을 못한 경우도 있어요. 아, 전체적인 목록 구성에도 신경써요. 여자가 주인공인 책과 남자가 주인공인 책을 골고루 넣어주려고 해요. 지금부터 전세계 그림책 제작을 멈추고 “여자 주인공으로 그림책을 만들라”고 하면 50년 뒤에나 남자주인공 그림책 수와 비슷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책 주인공이 되려면 ‘남자’ 아니면 ‘동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에요. 여자아이를 서정적으로 그린 책들도 많아요. ‘말괄량이 삐삐’는 그런 의미에서 당시에도 굉장히 센세이션했죠.

책과 양육자 가이드, 워크북이 한 세트로 구성된다 / 워크북 속 인물도 다양한 인종과 체형을 그려넣는다.
책과 양육자 가이드, 워크북이 한 세트로 구성된다 / 워크북 속 인물도 다양한 인종과 체형을 그려넣는다. ⓒ딱따구리
'우따따'의 책장 평등 지수 자가진단 테스트 / 우따따도 이 기준을 통과하는 그림책을 선정한다.
'우따따'의 책장 평등 지수 자가진단 테스트 / 우따따도 이 기준을 통과하는 그림책을 선정한다. ⓒ딱따구리

아이들에게는 ‘성평등 그림책’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발표한 ‘Gender and Society’ 논문에 따르면 20세기에 출판된 아동 도서 5,618권의 제목과 중심 인물을 분석한 결과,

남성이 여성보다 제목에서는 약 두 배, 중심 인물에서는 1.6배 더 자주 등장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논문은 그림책에서 나타난 불균형이 아이들이 성별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 어렸을 때부터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요?

=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예요.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되면 무엇보다 “나는 남자니까 이런 거 하면 안 돼, 여자니까 하면 안돼”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해요. 백지상태인 아이들에게 오히려 ‘알지 못했던 편견‘을 알려줄까봐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또래집단과 어울리면서 성 고정관념이 생기고 난 후에 시작하면 늦은 감이 있어요. 이미 학습된 상태에서 고치는 건 쉽지 않아요. 사전에 방지하는 게 제일 좋아요. 만약 그게 안 되어 있으면 아이는 ‘성 고정관념적’인 말을 들었을 때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죠. 성 고정관념적인 말을 듣자마자 ‘저 말은 잘못된 건데’라고 생각하게 만들거나 ‘상처 받지 않는 힘‘을 길러주는게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에요. 

-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성평등 그림책’ 서비스를 시작하신건가요?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 결국 보편적 가치가 돼요.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영어 사교육’이 심하다고 했지만 지금 영어는 기본적으로 시키는 것이 되었잖아요. 성평등 콘텐츠도 시장에 많이 풀려야 사람들이 비교해서 구매할 수 있고,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했어요. 

- 처음 시작할 때는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반응이었다고요?

=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해야 국가지원을 더 받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기존 그림책 큐레이션에 ‘성평등’ 관점만 추가하는 건데 뭐가 다르냐”는 의문으로 투자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따따’ 서비스를 1년 동안 진행해보니 사람들의 ‘니즈’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니즈’를 언제 가장 실감하나요? 

 = ‘성평등 그림책‘을 활용한 강의도 많이 들어오고, 이번엔 정부 프로젝트도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양성평등진흥원 및 여성가족부와 진행하는 ‘영유아 성인지 감수성’ 성교육 교재는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배포될 예정이고요. 선생님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아이를 대할수 있도록 하는 교사용 지침서도 배포됩니다.

- ‘우따따’ 서비스 말고도 ‘여자 아이들을 위한 워크숍’도 기획하셨는데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 여자 아이들은 경험해볼 기회조차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전자 제품 분해, 공구 다루기, 전자 회로 기초 등을 배우는 ‘걸스 테이블’ 워크숍을 기획했어요. ‘딸이 외모에 너무 관심이 많아져서 걱정’ 이라는 육아 고민을 보내주시는데, 이런 양육자들을 위한 ‘솔루션’ 라인은 8월 말 나올 예정이고요.

‘성평등’교육은 ‘공교육’이랑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사교육 시장뿐만 아니라 공교육 시장에서의 영역도 더 넓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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