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3월 08일 13시 02분 KST

바지를 '힘의 상징'으로 입어온 여성들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남성처럼' 입으려면 허가가 필요하다는 법이 2013년까지 존재했다. 사문화된 법이라고 해도, 실로 충격적인 일이다.

BERNARD HOFFMAN/GETTY IMAGES
1943년 미국 뉴런던에서 선원들이 바지 입은 여성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거의 매년, 무슨 무슨 달이 찾아와도 두 번째 주 정도면 잠잠해진다. 그러나 올해 미국에서는 흑인 역사의 달인 2월을 맞아 ‘블랙 팬서’가 등장했고, 오바마 백악관 공식 초상화도 공개되었다. 2018년 3월은 여성 역사의 달이다. 이번 달 역시 그저 달력에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다.

#MeToo 운동과 뉴웨이브 페미니즘은 여러 가지 층위에서 개인적, 직업적으로 권력 역학을 살피는 방식에 다시 불을 지폈다. 여기에는 옷도 포함된다. 2018년 여성복 F/W 컬렉션을 선보이는 파리 패션위크로 패션 먼스는 마무리된다. 디자이너들은 1980년대의 파워수트와 대담한 컬러를 통해 페미니즘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ANN TAYLOR
앤 테일러의 2018년 '바지는 힘이다'(Pants Are Power) 캠페인은 ‘패션에서의 바지의 진화 뿐 아니라 여성 평등의 상징으로서도 기념한다’. 

앤 테일러는 3월 1일에 ‘바지는 힘이다’(Pants Are Power) 캠페인을 시작했다. ‘패션에서의 바지의 진화 뿐 아니라 여성 평등의 상징으로서도 기념’하며, 관계에서의 “who wears pants?”[주: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느냐?’는 뜻이지만 직역하면 ‘누가 바지를 입는가?’이다]라는 질문을 은유적 의미 이상으로 보이게 만든다.

MUSEUM OF LONDON/HERITAGE IMAGES/GETTY IMAGES
바지 정장을 입고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 배우 사라 베르나르. 19세기 말.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바지 착용은 비교적 최근에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잔 다르크가 남성의 옷을 입은 것은 유명하다. 15세기에 강간을 막기 위해 남성 갑옷을 입었다(그리고 결국 화형당했는데, 옷차림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1850년에 여성인권 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는 ‘블루머’ 바지를 유행시켰다.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가 만든 블루머 바지는 무릎이나 발목까지 오는 헐렁한 바지였다.

20세기가 되자 여성 바지는 호스티스 파자마, 자전거용 바지 등 특정 용도로만 입는, ‘가끔씩만 입어도’ 되는 것이 되었다고 뉴욕 패션기술대학교의 박물관 코스튬 큐레이터 엠마 맥클렌든이 야후 라이프스타일에 설명했다. 1920, 30년대가 되자, 마를렌 디트리히 등의 셀러브리티는 영화 시사회에 용감히 바지 정장을 입고 갔다(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만들어 주었다). ‘캐서린 헵번의 가장 대담한 점’은 바지라고들 했다.

GETTY IMAGES
‘필라델피아 스토리’ 연극판의 캐서린 헵번. 1930년대말.

맥클렌든은 디트리히와 헵번이 셀러브리티였기 때문에 중성적 의상을 입어도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평범한 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든 법에 의해 벌금을 물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에서는 여성들이 일하거나 자전거, 말을 타기 위해 ‘남성처럼 옷을 입으려면’ 허가가 필요하다는 법이 2013년까지 존재했다(폐기되기 전까지 한 세기 이상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1939년에 로스앤젤레스 여성은 바지를 입고 법원에 갔다가 구금되었다. 판사가 바지 때문에 진행 중인 재판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명령한 것이다. 1993년 ‘바지 혁명’이 일어나 케케묵은 규칙을 없앨 때까지, 미국 여성 국회의원들은 상원에서 바지를 입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ALAMY
흑인, 레즈비언, ‘크로스 드레서’였던 미국 블루스 가수 글레이디스 벤틀리는 어느 모로 보나 선구자였다.

새천년이 되었으니 여성의 옷에 대한 단속이 없어졌을 거라 생각하는 건 순진하다. 2009년에 수단의 한 여성은 녹색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었다(태형은 피했다). 2017년에 생긴 ‘풍기문란 법’을 어겼기 때문인데, 여성 프로 골퍼들도 레깅스를 입을 경우 이에 따라 벌금을 내게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요가 팬츠가 여성들에게 나쁘다’는 뉴욕타임스의 기고 글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LEVI STRAUSS CO
1918년에 등장한 리바이스 프리덤-올 광고. 여성들이 당시 인기 휴가지이던 ‘남성들의 목장’에서 야외 활동에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옷이다. 십 년 정도 후에 리바이스는 ‘레이디 리바이스’를 선보였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기까지는 정치적 변화도 있었다. 근면한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차용한 미국 데님의 주도자 리바이스는 딱 한 세기 전에 ‘프리덤-올’을 만들었고, 후에 레이디 리바이스도 선보였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났던 1918년에 리바이스는 프리덤-올을 내놓았다. 당시 새로이 인기를 얻던 야외 활동인 하이킹이나 운전, 또는 집안일을 할 때 여성들이 입기 좋은 옷이었다. 이 이름은 또한 여성 의류의 해방을 암시하기도 했다.” 리바이스의 역사가 트레이시 패넥이 야후 라이프스타일에 전했다.

“한 여성은 웨딩 드레스로 프리덤-올을 입고, 식이 끝나자 말을 타고 남편과 함께 애리조나의 자기 소유 양 방목장을 돌았다. 네바다주 리노의 이디스 캐스트 하트만은 임신했을 때 배를 덮기 위한 천을 덧댄 프리덤-올을 입었다. 리바이스는 1920년대에 상하의를 분리시킨 ‘하이킹 토그’를 내놓았다. 카키 바지와 상의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실용보다 패션이 중요한 세계에서 여성을 드레스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입생로랑이었을 것이다.

REG LANCASTER/GETTY IMAGES
입생로랑의 핀스트라이프 바지 수트를 입은 모델. ‘르 스모킹’이라 알려진 입생로랑의 보다 평범한 야회복은 그의 시그니쳐가 되었다. 
AFP/GETTY IMAGES

맥클렌든은 “실험적인 60년대, 70년대가 되어서야 여성 패션의 분수령이 찾아왔다. 입생로랑은 여성들이 어디에서나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길을 닦은 데 대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드레스를 입을 자리에 턱시도를 입고 간다거나, 여성들이 사파리 수트를 입는다거나 등의 선례를 만들었다. 그는 바지를 전혀 여성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여성에게 그냥 남성복을 입혀버려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프랑스의 다른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는 입생로랑이 1966년에 ‘르 스모킹’을 선보이기 전에 여성들에게 바지를 입혔다. 1964년 봄, 쿠레주는 여성들에게 바지를 입히고 플랫 부츠를 신겼다. 또한 맥클렌든의 말처럼 가끔 입는 게 아니라, 매일 이렇게 입으라고 장려했다.

WHITE HOUSE COLLECTION
힐러리 클린턴은 공식 백악관 초상화에 바지를 입고 등장한 첫 퍼스트 레이디였다.

이러한 선구자들 덕에 ‘애니 홀’(1977)에서의 다이앤 키튼, 1980년대 브룩 쉴즈의 ‘마이 캘빈’ 등 우리 시대 대중 문화의 기념비적인 순간들이 있을 수 있었다. 재널 모네 등이 멋지게 소화하는 팬츠수트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

“옷은 점점 더 정치 행동의 최전선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옷에 내재된 권력 역학을 점점 더 의식하고 있다.” 맥클렌든의 말이다.

* 허프포스트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