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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 선수보다 더 심한 외상성 뇌손상을 입는 여자들: 가정폭력 피해자 51세 워커의 이야기

ⓒgettyimagesbank

미국 피닉스에서 가정폭력 보호시설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케리 워커(51세)는 30년 전, 자신도 모르는 새 달려오는 차들을 향해 도로 반대편에서 역주행한 적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는 게 정상으로 느껴졌어요.” 워커는 자신이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행히 그 날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것은 워커에게 확진 전의 뇌손상이 있었다는 첫 증거였다.

당시 그는 학대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고 한다. 워커는 2년 반 정도 동안 머리를 15번 정도 맞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한 번은 총으로 맞았다. 머리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두통이 심했고, 수시로 어지럽고 방향 감각도 잃었어요.” 워커는 1년 후, 오하이오의 지아거의료센터 의사가 외상성 뇌손상(TBI, Traumatic Brain Injury) 진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머리를 맞은 것과 이 증상을 연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트라우마와 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면,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요.”

참전군인운동선수들은 외상성 뇌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머리를 맞거나 갑자기 심하게 움직였을 때 생기는 복잡한 뇌손상이다. 이중 다수는 후에 지원과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워커가 일하고 있는 피닉스의 소저너 센터는 미국 최대 가정폭력 보호시설 중 하나다. 소저너 센터가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센터는 이 지역 병원 및 의료 시설들의 외상성 뇌손상 전문가들과 손을 잡고, 가정폭력 환경에서 사는 여성들과 아이들의 외상성 뇌손상을 연구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소저너 BRAIN(Brain Recovery And Inter-professional Neuroscience·뇌 회복과 상호 신경 과학) 프로그램은 가정폭력과 관련된 외상성 뇌손상이 얼마나 흔한지 연구하고, 단기/장기 영향을 조사하고, 가정폭력에 특화된 머리 외상 검사 툴을 개발하고, 개인에 맞는 치료 계획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여성들은 소외되고 있어요. 전염병과 같은데도 아무도 이걸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제가 보기엔 범죄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는 소저너 센터의 CEO 마리아 E. 게레이의 말이다.

BRAIN의 임시 디렉터인 로버트 넥텔은 가정폭력 경험자들의 외상성 뇌손상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연구가 운동선수나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거예요. 추정하기로 이 집단은 군인들과 운동선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큰 집단일 걸요.”

그들이 제일 먼저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 중 그로 인해 외상성 뇌손상을 입은 사람의 비율이다. 넥텔은 센터를 찾는 매년 9천 명 정도의 여성과 아이들을 조사해 정확한 추정치를 알아내고자 한다.

소저너 센터는 방사선 전문의이자 뇌진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비영리단체 CEO인 허쉬 핸드메이커와도 협력한다. 핸드메이커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외상성 뇌손상을 겪는 여성이 매년 2천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이 숫자가 맞는다면 매년 미국 인구의 6%가 가정폭력으로 인한 외상성 뇌손상을 당하는 것이다.

질병 대책 센터에서 매년 외상성 뇌손상을 경험하는 사람이 170만 명이라고 추정하고, 인구의 2%, 즉 530만 명의 미국인이 그로 인한 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는 것과 이 숫자를 비교해 보라.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머리 부분에 부상을 입는 경향이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핸드메이커의 말이다.

그래픽: 미국질병대책센터

외상성 뇌손상의 증상은 손상을 입은 뇌 부위와 손상의 강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 증상으로는 두통,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것, 불균형, 운동 능력 감소 등이 있으며 기억, 계획과 학습, 공격성, 과민성, 우울증 문제를 가져온다. 의사들은 테스트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초기에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저너의 CEO 게레이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머리 부상 병력이 있을 가능성이 큰데도 보호시설들이 표준검사에 외상성 뇌손상 검사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문진도, 치료도 하지 않고 있어요.”

소저너 프로그램의 목표 중 하나는 사회복지사나 보호시설 직원 같은 비의료인들도 쓸 수 있는 검사 툴을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피닉스 어린이 병원 신경과학자 조나단 리프쉬츠는 일단 군인과 운동선수들을 위해 이미 개발된 툴을 사용할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치료할 이들에게 어떤 테스트가 가장 효과적일지 아직 모릅니다. BRAIN 프로그램은 우선은 이 분야의 관행을 바꾸는 데 필요한 증거를 제공하게 될 겁니다.”

‘가정폭력 종식을 위한 국립 네트워크’ 회장 킴 갠디는 학대를 당하면서도 자신을 학대하는 파트너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미확진 외상성 뇌손상의 영향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 뇌손상을 입으면 직업을 갖고 자신과 아이들을 부양하는 게 훨씬 힘들어집니다.” 갠디의 말이다. 기억력 및 방향감각 상실 등이 여성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법적 조처를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판사나 경찰에게 신고하고, 금지 명령을 받아내는 게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갠디는 또 외상성 뇌손상 증상이 있는 여성은 법정에서 비협조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갠디는 뇌손상이 가정폭력 분야에서 아직 탐구가 제대로 이뤄진 적 없는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진단을 너무 강조하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양육권 싸움 등 여러 가지 경우에 여성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어요. 아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실제로 스포츠 레거시 협회의 크리스 노윈스키 이사는 외상성 뇌손상 진단은 운동선수들에게도 ‘낙인’을 남기는 사례가 있다고 증언한다. “NFL(미식축구) 한 시즌에 뇌진탕을 두 번 입은 선수가 ‘뇌진탕 환자’로 낙인 찍혀 다시는 다른 팀에 들어가지 못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윈스키는 환자로서는 뇌손상 진단을 받는 쪽이 엄청난 혜택이라고 덧붙인다. “재활, 치료, 그리고 왜 내가 변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가 뇌손상을 극복하고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2012년 손자 닉과 함께 놀고 있는 케리 워커. 출처는 워커의 페이스북.

외상성 뇌손상 진단은 워커에게 그에게 일어났던 인지 관련 문제를 전부 설명해줬다. “우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계속 반복해서 하는 말은 우리가 멍청하다는 거예요. 정말 많은 여성에게 이 진단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예요.”

워커가 뇌손상을 입은 후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에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워커가 그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자와 헤어지고 4달 후, 뇌동맥류가 파열돼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후 그는 자기가 뇌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여러 해에 걸쳐 누적된 뇌손상의 영향을 갖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 이후 내 인생이 영영 달라졌어요. 단기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글을 쓰다 보면 글자들이 섞여요. 갑자기 E를 뒤집어서 써요. 그게 나에게는 있을 수 있는 정상적인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했죠.”

*허핑턴포스트US의 The Women Who Face More Traumatic Brain Injury Than NFL Players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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