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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26일 16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8월 26일 17시 00분 KST

"이상적인 '여성상' 그런 게 어딨어?" 일본 여성 아나운서들이 오랜 차별에 맞서기 위해 뭉쳤다 (인터뷰)

″젊고 예쁘고 똑똑하면서도 남성을 결코 능가할 수는 없는 여자.”

©️鈴木愛子
코지마 케이코

일본의 여성 아나운서들이 ”이상적인 여성상은 없다”를 외치며 여성 아나운서 네트워크 단체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F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전 일본 방송국 TBS 아나운서 코지마 케이코가 대표를 맡았다. FAN에는 현재 프리랜서, 현직 및 전직 아나운서나 디렉터, 연구자 등 67명이 참가해 온라인 스터디 그룹 및 정보교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아나운서의 ‘성별 고정 관념’을 벗어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여성 아나운서들이 장기적으로 경력을 쌓는 것을 목표로 여러 활동을 펼친다. 

허프포스트 일본판에서 코지마 케이코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코지마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닿는 일이다. 여자 아나운서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일이 흔했다. 또 여자 아나운서를 남성 사회에 아첨하여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Kojima Keiko
코지마 케이코

 

일본 사회는 ”젊고 예쁘고 똑똑하면서도 남성을 결코 능가할 수는 없는 여자”를 이상적으로 생각해 왔다

″대체 이상적인 ‘여성스러움’은 무엇인가? 많은 여자 아나운서들은 이런 시선에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없었다. FAN은 그런 역할을 한다.”

코지마가 FAN을 시작한 구체적인 계기는 3월 ‘세계 여성의 날‘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성 아나운서와 미디어 표현’이라는 주제로 현역 아나운서와 연구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방송국 내 직원 간 큰 성별 격차였다. 의사 결정을 하는 주요 자리는 주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코지마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전통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이렇다.

″젊고 예쁘고 똑똑하면서도 남성을 결코 능가할 수는 없는 여자다.”

코지마는 대부분의 여성 아나운서들이 ”장기적인 경력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매년 수많은 여성 아나운서를 뽑는다. 하지만 중년기 이후 중요 포지션에서 새로운 활약의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압도적으로 대부분 남성 아나운서들이다. 남성 아나운서는 고령이어도 ‘외모나 늙었다’는 이유로 일선에서 멀어지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여성 아나운서는 경력이 좋아도 계속 외모로만 평가받는다.”

 

PHILIP FONG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여성은 사회에서 ‘귀여운 부하‘에다가 ‘귀여운 여자’라는 역할까지 강요받는다

코지마에 따르면 많은 여성 아나운서가 전문성을 쌓고 경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 대학원 등에서 공부하거나 기자로 경험을 쌓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보도국에서는 ‘화제성’만을 이유로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 아나운서를 기용하곤 한다. 방송국은 이를 ‘신선함’으로 포장한다. 

이외에도 코지마는 ”여전히 일본에서 여자 아나운서는 성공하기 위해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귀여운 여자’라는 사회적 평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남성도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은 ‘귀여운 부하‘에다가 ‘귀여운 여자’ 역할까지 강요받는다. 정말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경우도 많다.”

″물론 남자는 사회의 험한 굴레를 버텨라라는 ‘남성다움’의 강요도 겪을 수 있다. 즉 이는 사회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지, 개인이 문제라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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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송 자료사진

 

여성 아나운서들은 차별 없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 중이다

FAN의 멤버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공부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다음 세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코지마의 말이다. 그는 젊은 세대가 점점 TV 기존 방송국을 멀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기존 방송국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방송을 만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낡은 감각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차별’에 관한 용어가 뭔지 직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여전히 성별 평등에 관한 의식은 높다고 할 수 없다. 요즘 젊은 층은 그런 걸 바로 알아챈다.”

코지마는 아나운서들과 계속 공부하며 어떻게 해야 ‘차별 없는 방송’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본에 ‘여성에게 편리한 제품‘이라고 나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별 불문 누구나 사용 가능한 제품이라면 이렇게 바꾼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편리한 제품이네요’라고. 그걸 먼저 제작진에게 제안한다.”

“FAN의 취지에 동의하는 아나운서들은 차별과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말을 현장에서 알아채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다른 제안을 하곤 한다. TV 화면에 비치지 않는 곳에서도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방송국 내 성별 격차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다. 영국 공영 방송국 BBC50:50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TV를 비롯한 미디어 업계에서 아나운서나 해설자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사실에서 비롯했다. BBC는 제작진 및 출연자의 남녀 비율을 동일하게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호주ABC 방송국은 휠체어를 탄 기자나 장애인 리포터를 고용하고 있다. 전 세계 방송국은 나이, 성별, 인종을 넘어선 다양한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

코지마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일본 사회와 방송국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프포스트 일본판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