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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08일 10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22년 03월 08일 10시 54분 KST

눈 감고 귀 막은 대한축구협회 :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남자들보다 '절반의 돈'만 받고 국대 경기를 뛴다

왜 국가대표를 차별하지?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제1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이토록 한가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사이에도 여성들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동력을 평가절하 당한다. 남자와 똑같이 일을 하고도 남자만큼 돈을 벌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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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뇌피셜이 아니라 통계가 말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5.9%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겨우 64만 1000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OECD 평균 성별 임금격차가 12.8%인 것을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 국가대표: ‘성별임금격차’ 50% 수준

스포츠계는 더하다. 우리나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얼마 전 여자 아시안컵 대회에서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역사상 길이 남을 빛나는 성과다. 임금은 어떨까. 놀라지 마시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받는 훈련 수당은 남자 대표팀과 비교하면 정확히 절반이다.

지난 2019년 SBS 보도를 보자. 대한축구협회는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을 소집할 때 훈련 수당으로 10만원을 지급한다.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 5만원 받는다. 잉글랜드에서 뛰는 토트넘홋스퍼 손흥민과 첼시 FC 위민 지소연이 프로 리그를 뒤로 한 채 조국인 ‘대한민국’을 위해 훈련에 참여하지만, 손에 쥐는 훈련 수당은 지소연이 손흥민의 절반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별 임금격차는 50%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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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간판: 손흥민과 지소연.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SBS에 “남녀 대표팀 임금격차와 관련해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개선 중이다. 더 노력하겠다”라는 입장을 전했는데 3년이 지난 2022년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게으른 축구협회의 해명은 진정성마저 의심된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축구협회에 남녀 축구 국가대표팀의 훈련 수당을 문의하자, 축구협회 관계자는 “대외비라서 별도로 공개하기 어렵다. 국위선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당이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심지어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수당이 10만원인지, 5만원인지 확인조차 해주지 않았는데 괜한 논란이 생길까봐 사실 확인을 해주기보다 취재 단속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우승보다 값진 일”을 만들어낸 미국 여자 축구

게티이미지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대한축구협회가 여자 축구 선수들의 처우를 외면하는 사이에 미국에서는 승전보가 울렸다. 미국축구협회는 앞으로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남자 선수들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미국 축구협회가 알아서 남녀 선수들의 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여자 축구 선수들이 축구협회를 상대로 소송전을 제기했고 6년 간의 법적 분쟁 끝에 양측이 합의한 결과다. 미국축구협회는 여자 대표 선수들에게 손해배상액 2200만 달러(약 262억원)를 즉시 전달하고 200만 달러(약 24억원)를 출연해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Christian Hartmann via Reuters
알렉스 모건. 

전 여자 축구 미국 국가대표팀 주장은 알렉스 모건은 이번 승리를 쟁취한 뒤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여성들과 연대하는 일은 위대하다. 경기에서 선발로 뛰면서 골을 넣거나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값진 일이었다”라는 소회를 남겼다. 미국을 비롯해 브라질과 잉글랜드의 축구협회가 남녀 동일 임금을 약속한 상태고, 네덜란드·노르웨이·호주는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여자 축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전 세계 축구장에서 ‘성별 임금격차’ 문제가 화두지만, 한국은 여자 축구 선수들의 처우 개선에 여전히 무관심하다. 여자 축구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도 성별을 차별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국내에서 여자 축구 입지가 약하다 보니 그냥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한축구협회가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여자 축구 선진국인 미국의 상황을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라고 전했다. 

축구협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여론은 근거가 부족한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악플러들은 남녀 프로 축구 리그의 규모 차이를 운운하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임금을 후려친다.

분명히 말하지만, 프로 리그에서의 연봉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국가가 불러 국가대표로 소집되는 기간에 선수들이 받는 ‘훈련 수당’이 잘못됐다는 거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면, 군대를 떠올려 보자.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에서 무엇을 했든 간에 군복을 입는 순간 모두가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

올해 기준 이등병의 한 달 봉급은 51만89원이다. 명문대를 다니든, 고졸이든, 아이큐가 두자리든 세자리든 무조건 51만89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협회는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주는 훈련 수당을 남자 선수들이 받는 것보다 절반이나 깎아 지급한다. 

 

억대 포상금 홍보에만 진심인 축구협회 

더욱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대한축구협회의 태도다. 축구협회는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불합리한 훈련수당에는 침묵하면서 애먼 일에 생색은 잘 낸다. 지난 4일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한 여자 축구 대표팀에 4억6천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보도자료를 대대적으로 뿌렸다. 포털 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축구협회는 직전 대회에서 지급한 포상금보다 2.5배 많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들이 절대 알리지 않는 씁쓸한 현실을 하나 공개한다.

대한축구협회
여자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역사를 쓴 여자 축구 국가대표 23명의 선수들은 당시 경기가 열리는 인도로 가는 비행기조차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몇 명은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실었고, 운이 좋은 몇 명만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다.

축구협회 관계자 말처럼 선수들에게 쥐뿔 주지도 못하면서 ”국위선양”이라는 뻔뻔한 대의만 내세운다면, 적어도 태극마크 달고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값은 차별하지 말자. 우리가 돈이 없지, 상식이 없냐. 대한축구협회와 달리 대한체육회는 이미 남자든 여자든 어떤 종목이든 상관없이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1일 7만원’이라는 동일한 훈련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도혜민 기자: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