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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8일 14시 18분 KST

"왜 유독 여자 교복은 라인이 잡혀 있을까요?" : 동아리 만들어 공부하는 여자 중학생들

인천 여성청소년인권 프로젝트팀 ‘샌드위치’를 인터뷰했다.

한겨레/ ‘샌드위치’팀 제공
인천시 미추홀구 대안교육기관 ‘청청프로젝트연구소’에 모여 배지 등 홍보물품(굿즈) 디자인을 고민하는 모습.

 

버스 안에서 또래 남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년’이란 단어를 쓰며 욕설을 주고 받는 걸 들었다. 어른들이 ‘계집애’라는 말을 쓰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봤다. 왜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유독 욕설로 쓰이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혐오·차별 발언이 난무하는 사회 안에서 청소년, 특히 여성청소년의 인권은 샌드위치 안의 속재료처럼 ‘끼인 존재’ 아닐까?

인천의 중학생 6명이 모여 만든 여성청소년 인권 프로젝트팀 ‘샌드위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했다. 팀의 회장을 맡은 이승하(14)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남자들끼리 ‘놈’이란 말은 욕이 될 수 없으니 대신 여자를 비하하는 ‘년’이란 말을 쓰는 걸 보면서 화가 났다”며 “여성청소년의 인권 이야기를 당사자가 직접 하면서 주변 사람만이라도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서 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활동하던 학교 내 인권 동아리가 없어지자, 동아리 멘토였던 고명주 ‘인권을 실천하는 복지활동가 문화연대’(인복)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팀을 새로 꾸렸다. 다른 학교 또래 친구들도 합류했다. 김나영(15), 이슬기(15), 김채민(14), 박송화(14), 이혜연(13)이 ‘샌드위치’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구체적이다.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을 들었을 때 “그런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함께 응원해줄 사람을 각자 주위에 10명 이상 만드는 것, 이를 위해 여성청소년의 인권 문제를 함께 공부하고 이를 또래에게 알릴 수 있는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역할극을 담은 영상 제작도 하고, 관련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나 배지를 만들고 싶어요.”(승하)

세밀한 기획안 덕에 아름다운재단 ‘청소년공익활동지원사업’ 대상으로도 선정됐다. ‘샌드위치’팀은 일상 속에서 질문을 던진다.

“가장 먼저 잡은 주제는 ‘교복, 머리 짧은 여성, 성폭력’ 문제에요. 여성 교복은 왜 몸에 딱 붙게 라인이 잡혀있고, 활동하기 불편한 치마를 입어야 하는 걸까요?”(승하)

“‘남자는 운동하니까 편하게 만들어야 하고 여자는 가만히 있는다’는 편견 때문에 이렇게 만든 건가 싶어요. 사실 저희도 운동을 하는데 말이죠.”(채민)

“계단을 오를 땐 물론이고 뛸 때도 몸에 붙어 속이 비치기도 하니까 불편해요.”(송화)


이런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탈코르셋’(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벗어나는 일) 운동으로 옮겨간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머리를 짧게 싹둑 잘랐다는 승하는 “‘여성은 반드시 예뻐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화장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 내 정체성이 ‘예뻐야 한다’로만 규정되지 않았으면 해서 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송화와 채민은 예닐곱살인 사촌동생들이 화장품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데 놀랐다고 한다.

“친척동생이 어린이용 화장품을 쓰면서 ‘언니, 이건 매니큐어야’ 알려주더라고요. 어떻게 벌써부터 이런 걸 아나 싶었죠.”(송화)

“남자인 사촌동생은 총놀이를 하는데 여자 동생들은 화장놀이를 하고 치마만 입으려고 해요. 제가 ‘바지 입고 머리 짧아도 예뻐’라고 하니까 아니래요. ‘여자는 뚱뚱하면 안 예뻐’라고도 하고요. 요즘엔 남자도 화장을 하잖아요. 무엇보다 태어난 얼굴 그대로 인정해주는게 좋고요. 뚱뚱하면 또 그대로 매력이 있잖아요. 이런 걸 어떻게 동생들에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예요.”(채민)

 

한겨레/ ‘샌드위치’팀 제공
‘샌드위치’ 프로젝트팀의 활동 계획.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가지기’가 일순위다.


성폭력·성희롱에도 관심이 많다. 각종 성범죄 기사를 접할 뿐 아니라 게임 등을 통해 이들도 일상적으로 성희롱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제가 하는 게임에선 사진이나 게시글을 올릴 수 있는데 여성이 다 벗고 있는 사진이 올라오더라고요. 학생들도 다 하는 게임인데 왜 그런게 제한이 안 되나 모르겠어요.”(혜연)

“채팅창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욕설은 기본이고요. 엄마 욕을 하면서 공격하기도 해요. 처음엔 충격 받아서 게임을 1년 동안 안한 적도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신고해도 규제가 안 돼, 요즘에는 화면 녹화 기능을 틀어놓고 게임을 하거나 아예 채팅이 안 되는 게임을 하죠.”(채민)

“‘몇 살 여자를 구한다’ 이런 얘기도 끝없이 올라와요. 여자라고 하면 그걸 증명해보라고 요구하고, ‘나랑 사귀자’는 얘기도 하고요. 다같이 볼 수 있는 채팅방에 이런 게 너무 많이 올라오니까 규제도 안 되는 것 같아요.”(승하)

 

관심은 자연스럽게 성교육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아직도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영상을 틀어주고 “여러분이 미숙하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식으로만 성교육이 이뤄진다고 했다. ‘데이트 폭력’처럼, 현실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정작 관련 교육 시간엔 ‘속옷에 생리대를 어떻게 붙이는지’를 알려주는 데 그쳐 답답하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보건 선생님이 생리대를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주신 적이 있어요. 생리대를 마치 이상한 것처럼 느껴지게요.”(채민)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식의 교육을 많이 해요. 피해자의 대응방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가해자가 왜 잘못했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비단 성교육 시간이 아니어도 성차별에 대해서도 더 자세하게 알려주는 교육이 있으면 하고요. 어떤 종류의 성차별이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궁금하거든요.”(승하)

 

한겨레/ ‘샌드위치’팀 제공
‘샌드위치’팀의 회장 이승하는 장애인, 퀴어 등을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배지(오른쪽)를 직접 디자인한 바 있다. 가운데 배지는 지난해 교내 인권동아리를 했을 때 “‘너’와 ‘나’는 모두 ‘사람’이다”라는 뜻을 담아 제작한 배지, 왼쪽 배지는 고명주 활동가가 함께 만든 배지다.

 
‘샌드위치’는 이런 수많은 의문점들을 주변으로 확장해 갈 예정이다. 유튜브 영상은 물론이고, 배지·스티커를 나눠주며 홍보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런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물어보고, 그걸 토대로 또 이야기를 계속 나눠보고 싶어요.”(채민)

활동을 통해 여성청소년의 고민이 사회에 보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스톱모션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바꿔주는 걸 표현하고 싶거든요.”(혜연)

장애인·퀴어 등 소수자를 혐오하지 말고 성차별도 하지 말자는 내용을 담은 배지를 직접 디자인한 경험이 있는 승하는 이번엔 영상 제작과 역할극 등에 도전한다.

 

이들과 함께하는 고명주 활동가는 “청소년이 인권을 말하고 혐오·차별을 이야기하면 아직도 ‘뭘 안다고’란 시선으로 보며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성교육 강사로 초청돼 중학교에 가보면, 학생들은 실제로 데이트 폭력과 같은 문제를 궁금해 하는데도 교장 선생님이 ‘이런 얘기는 하지 말라’며 사전에 교육 내용을 확인하기도 한다”며 “이런 현실에서 더 다양한 청소년들이 인권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권 수업을 들은 뒤 혐오·차별을 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은 배지를 어떻게 디자인할지, 영상엔 무엇을 담을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기안84 웹툰에서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한 표현이 나와 논란이 됐잖아요. ‘가디언테일즈’란 게임에선 대사에 ‘년’이란 단어를 써서 비판을 받자 이를 뺐는데, 이후 ‘남성혐오’란 비판이 나오자 다시 ‘년’이란 단어를 포함시켰고요. 이런 표현을 해야만 남성들에게 자유가 허락된다면 그게 과연 진정한 자유인지 궁금해요. ‘샌드위치’ 활동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발견해나가고 싶어요.”(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