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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03일 17시 40분 KST

"자살 시도자 34% 늘어…정신건강 적신호" : 코로나19 시대, 20대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

2020년 자살 시도자 5명 중 1명이 20대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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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위기에 내몰린 20대 여성이 사회에서 조용히 설 자리를 잃어갔다. ‘조용한 학살’이라 일컬었다. 일자리에서 밀려났고, 정신건강은 취약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대 여성은 빠르게 늘었다.‘조용한 학살’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가 처음으로 나왔다. 2020년 응급실에 내원한 전체 자살시도자 5명 가운데 1명이 20대 여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세도 가팔라 20대 여성 자살시도자는 전년 대비 33.5%나 늘었다. 10대 여성·20대 남성 자살시도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최근 몇 년간 지속되던 청년세대의 정신건강 위기를 증폭시킨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020 여성·20대 남성이 자살시도자 수 증가 이끌어

3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인천 서구을) 의원실에서 받은 보건복지부의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응급의료기관 66개소 기준)을 보면, 지난해 자살시도를 한 20대 여성은 전년 대비 33.5%(1158명)가량 늘어 4607명에 달했다. 전체 자살시도자 수(2만2572명)가 전년보다 4.7%(1027명)가량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20대 여성의 자살시도 증가세는 더욱 뚜렷해진다.

20대 여성은 2020년 전체 자살시도자 중 20.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 뿐 아니라, 최근 5년간 증가세도 가장 가팔랐다. 2016년까지만 해도 전체 자살시도자 중 20대 여성의 비율은 9.8%로, 40대 여성(11.8%), 30대 여성(10.8%)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7년 12%로 자살시도자가 가장 많은 성별·연령대로 올라선 뒤, 2018년 13.8%, 2019년 16%를 거쳐 2020년에는 20.4%까지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상황을 악화시켰지만, 2017년부터 20대 여성의 정신건강에 위험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0대 여성이 전체 자살시도자 중 차지하는 비율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2016년 조사에서 10대 여성 자살시도자 수의 비율은 전체의 4.3%에 그쳤는데, 2020년에는 그 비율이 9.6%로 두배 넘게 늘었다. 2020년 10대 여성 자살시도자(2174명)는 20대·30대 여성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남성 중에서는 20대 남성의 자살시도자 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2020년의 남성 자살시도자는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조금씩 줄었는데, 유일하게 20대 남성만 전년 대비 19%가량 늘어 1788명에 이르렀다. 2020년 20대 남성 자살시도자 수의 증가율은 20대 여성 다음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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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공황장애 가파르게 늘어…정신건강 ‘적신호’

청년들의 정신건강 ‘적신호’를 보여주는 통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울증·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청년들도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진료데이터를 활용해 지난 5일 공개한 ‘2016~20년 기분장애 질환 건강보험 진료현황’을 보면,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20대 여성은 2016년 4만3749명에서 지난해 10만6752명으로 144%(6만3003명) 늘었다. 10대 여성의 증가율이 102.4%로 두 번째로 많았고, 20대 남성 증가율(83.2%)로 그 뒤를 이었다. 1020 여성과 20대 남성이 증가세를 이끌고 있는 자살시도자 수 통계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공황장애도 최근 3년간 전연령대를 통틀어 20대 청년들이 가장 많이 늘었다. 신동근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확보한 ‘2018년~2020년 공황장애 진료 인원 현황’을 보면, 지난해 공황장애로 진료를 받은 20대 여성은 5만265명으로 2018년에 비해 1만3024명이 늘었다. 전체 공황장애 환자가 68만9650명(2018년)에서 73만5100명(2020년)으로 6.5%가량 늘어났는데, 20대 여성은 34.9%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남성 공황장애 환자도 21.4% 늘어, 20대 여성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문제는 사회적 요인에 따른 우울증의 만성화”

청년들, 특히 20대 여성의 정신건강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는 소식은 ‘뉴스’가 아니다. 통계청의 2019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가 늘었다. 2020년의 사망원인통계는 9월에 발표될 예정이지만,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년 대비 43% 급증했다는 사실(신동근 의원실)이 지난해 말 공개된 바 있다.

저성장 시대 속 짙어진 청년세대의 우울이 코로나19를 통과하며 증폭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다른 연령대보다 더 강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올해 초 나온 통계청의 고용시장 관련 통계들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지난 2월 공개된 통계청의 ‘1월 고용동향’을 보면, 20대 고용률(53.9%)은 전년 동월 대비 4.2%포인트 떨어졌다. 전 연령대 통틀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1월 기준으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같은 달 발표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음식·숙박업과 도·소매업 취업자 감소 인원 58만5천명(1월 전년 대비) 가운데 20대가 16만8천명(28.7%)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성별로는 여성이 33만4천명(57.1%)으로 절반이 넘었다.

문제는 코로나19에서 벗어난 뒤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최근 청년 여성을 여럿 진료해온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원장은 “우울증이 처음으로 발병한 경우 가족 등 주변의 지지와 적절한 치료를 거치면 2년 내에도 완치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개인은 열심히 치료를 받더라도 4∼5년 넘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20대 여성들의 우울증이 ‘만성화’하는 경향이 일선 의료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주연 원장은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 의지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두고 생물학적·심리적 원인 외에 사회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안 원장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 범죄와 성범죄 등이 꾸준히 늘고, 20대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을 상쇄할 만큼 빠르게 사회 변화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정신과적 치료만으로는 우울증이 완치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사회적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20대 여성 자살시도자와 우울증 환자가 누적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겨레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