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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풋린이 시점] 축구하는 여자들은 왜 욕먹을까? '골 때리는 그녀들'을 무시하는 악플러들에게

'입축구' 사절이요.

'골때녀' 송소희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골때녀' 송소희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SBS/대한축구협회

″모든 팀들이 스케줄과 상관없이 매일 연습하고 계신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조금만 더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출연 중인 국악 가수 송소희가 프로그램에 과몰입한 시청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전한 당부다. ‘골때녀’ 방송이 있는 날이면, 출연자들은 온갖 악플에 시달린다.

장진희와 김재화.
장진희와 김재화. ⓒSBS

‘FC액셔니스타’ 골키퍼인 배우 장진희는 실점한 뒤 ”너만 나가면 우승한다. 골키퍼만 실력 발전이 안 됐다. 왜 쟤는 팀에서 민폐가 되냐?”라는 악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같은 팀에서 수비를 담당하는 배우 김재화는 악플 때문에 프로그램 하차까지 고민했는데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개인 인스타그램을 닫았다”라고 했다. ‘골때녀’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SNS까지 찾아가 악플을 퍼붓고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욕먹는 국대 선수들

비단 ‘골때녀’들만의 문제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들 또한 악플의 피해자다. 사실 승패가 확실한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받는 악플은 남녀가 무관하다. 경기에서 크게 지는 날이면 남자든 여자든 모든 선수들에게 살벌한 악플이 쏟아진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남녀 선수들에게 달리는 댓글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17일 열린 아시아 지역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살펴보자. 이날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라크 상대로 3대0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9년 5개월 만에 따낸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승리였고, 주장 손흥민이 A매치 30골을 터트린 날이었다. tvN 스포츠가 올린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각 선수들의 플레이를 칭찬하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조규성 진짜 잘한다 … 등지고 내주고 압박하고…”
″확실히 황인범이 패스 길에 눈을 뜨면서 경기력이 확 좋아졌네”
″희찬이가 확실히 침착해지고 여유가 보이네요~~^^ 기량 발전이 보기 좋아요”
″김진수 개쩌는 어시스트인데 쿨하게 수비하러 자기 자리 가네”

대승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는 대체로 팀 전술과 개인 기량을 분석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성별’ 시비가 눈에 띈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해 여러 차례 친선 경기를 치렀고, ‘여자 축구 세계 1위’ 미국과의 1차전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발전된 기량을 보여줬다. 이런데도 여자 국대 선수들의 경기 영상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플이 꽤나 달린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유튜브 KFATV_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유튜브 KFATV_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유튜브 KFATV_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달린 악플. ⓒ유튜브 KFATV_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크림 발랐다고 욕먹는 여자 선수들

대부분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부 악플러들은 오직 ‘여자’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악플을 시전했다. ”여자가 무슨 축구야?”, ”걍 시집이나 가라”, ”소꿉놀이 하냐” 등 근거 없는 비방 일색이었고,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영상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 2015년 축구 전문 매체 풋볼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악플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선수들은 경기 중 명백한 실수를 지적하는 댓글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외모나 화장 관련 악플은 당황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김도연 선수는 ”선크림을 왜 바르냐는 지적은 처음 받는 것 같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하나 더 바르는 건데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라며 탄식했다.

27일 오후 경기도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여자축구국가대표팀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친선경기에서 임선주가 역전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상대 자책골과 임선주의 결승골로 여자축구대표팀이 2대 1로 역전승했다.  2021.11.27
27일 오후 경기도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여자축구국가대표팀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친선경기에서 임선주가 역전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상대 자책골과 임선주의 결승골로 여자축구대표팀이 2대 1로 역전승했다. 2021.11.27 ⓒ뉴스1/대한축구협회 제공

악플은 그냥 악플일 뿐

도대체 축구하는 여자들은 왜 욕을 먹는 것일까? ”시집이나 가라”는 악플에 대단한 이유가 있을리 없다. 그냥 여자가 축구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다. (납득될 만한 이유가 있으신 분은 꼭 연락을 주시라.) 대한민국에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라는 것이 생긴 건 1990년이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48년에 창설됐다. 남자들만의 잔치였던 축구장에 여자들이 발을 딛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2년이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동안 여자 축구 선수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시안컵 4강, 동아시안컵 우승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써왔다. 

뉴질랜드와 2차 평가전을 앞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9일 오후 경기도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하고 있다. 2021.11.29/
뉴질랜드와 2차 평가전을 앞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9일 오후 경기도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하고 있다. 2021.11.29/ ⓒ뉴스1

여자들은 축구에 진심이다. 국가대표가 됐든 프로가 됐든 아마추어가 됐든 모두가 그렇다. 축구장에 서 있는 모든 여자들은 승리가 간절하고 패배하고 싶지 않다. 풋살과 축구를 시작한 지 이제 3년차인 에디터가 감히 악플러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입축구’ 그만하고 너희들이 한 번 뛰어보시지?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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