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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시대, 사회개혁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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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매일 역사의 강을 건너고 있다. 70년간 지속돼온 적대와 대립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 시대가 동트는 것을 예감했다면, 6월13일 지방선거에서는 구시대가 저무는 것을 목도했다. 분명 대전환의 시대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얼어붙게 한 강고한 냉전체제가 허물어지면서, 평화체제가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바로 이러한 ‘대전환’의 증거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정치지형의 변화가 아니라,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지난 7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구질서가 무너졌고, 구세력이 수명을 다했으며, 구시대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선거 결과는 냉전 해체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대전환이 몰고 온 후폭풍이요, 수구 붕괴라는 남한 사회를 강타한 거대한 지각변동이 남긴 여진이다.

국내 언론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한목소리로 이번 선거에 대해 ‘보수의 참패, 진보의 압승’이라고 보도했다. 잘못된 평가다. 이번 선거의 본질은 수구(자유한국당)에 대한 보수(더불어민주당)의 승리, 좀 점잖게 평하더라도, 수구 보수에 대한 합리적 보수의 승리일 뿐이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 이렇게 반지성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민주적이고, 반사회적인 ‘보수’가 존재하며, 대체 어디서 ‘진보’가 승리했단 말인가? 정치 언어의 무능이 도를 넘었다. 이번 선거가 확인해준 것은 보수의 몰락이 아니라, 냉전에 기생해온 수구의 역사적 수명이 다했다는 사실이다.

수구를 키워온 것이 냉전이라면, 수구를 지켜준 것은 불합리한 선거제도다. 수구는 1등 하나만을 뽑는 단순소선거구제라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기대어 보수와 손잡고 기득권을 지켜왔다. 요컨대 수구-보수 과두지배는 단순소선거구제가 잉태한 괴물이다. 현행 선거제도가 지속되는 한 수구는 언제든 다시 지역감정을 선동하며 컴백할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절실한 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이다. 개혁의 주체가 자기희생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의 정치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 정치계급’ 전체가 뭉쳐서 개혁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면, 먼저 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선거법 개정을 통해서만 시대착오적인 수구 집단의 확산을 저지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실천적으로 구현하며, 새로운 사회적 의제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하여 수구-보수 과두지배 질서의 일부로서 편안하게 기득권에 안주할 것인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같은 합리적인 대의방식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여 새로운 정치지형을 창출할 것인지 양단간에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좌우할 역사적 결단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권이 교체되어도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구도’의 문제다. 냉전체제와 수구-보수 과두지배에 의해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구도가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좋은 보수’로서 오른쪽으로는 수구의 생존공간을 좁히고, 왼쪽으로는 진보의 활동공간을 열어주어, 평화시대에 걸맞은 정의로운 정치 구도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책무이며, 선거법 개정은 그 실천의 첫걸음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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