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하반기에 본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예능은 티브이엔(tvN) 〈식스센스〉였다. 쇼의 기본 플롯은 추리 예능인데, 출연자들은 매회 이색적인 테마의 식당이나 회사, 인물들을 찾아가 체험하면서 그중 제작진이 숨겨둔 가짜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식스센스〉 팬들이 주로 열광하는 건 쇼의 추리 요소가 아니다. 매회 공들여 그럴싸한 가짜를 만들어낸 제작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진짜 열광하는 건 메인 엠시(MC)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들 사이의 호흡이다.
개성파 여성들에 쩔쩔매는 유재석
에스비에스(SBS) 〈런닝맨〉과 〈미추리 8-1000〉 등으로 유재석과 합을 맞춘 경험이 있는 연출자 정철민 피디(PD)는, 유재석이 개성이 강한 출연자들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순간의 웃음이 얼마나 강력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유재석을 제외한 〈식스센스〉의 고정멤버들은 전원 개성이 강한 여성 연예인이다. 배우 오나라와 전소민, 가수 제시와 러블리즈의 미주로 이루어진 멤버 조합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있다. 1회부터 초면에 자기들끼리 가슴 사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천하의 유재석이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했던 이 여성 멤버들은, 마지막 회인 8회쯤 가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유재석을 골려먹기에 이른다. 일찍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유재석의 모습이자, 일찍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호흡이다.
이미 〈런닝맨〉에서 통제 불능 예능 폭주 기관차로서의 면모를 입증한 전소민이나, 탈아이돌급 예능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는 미주의 활약도 눈부시긴 하나, 역시 〈식스센스〉의 가장 큰 동력은 제시다. 가슴을 비롯한 여성의 육체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꺼낸 것도, 매번 아슬아슬 선을 넘나드는 야한 농담을 시작한 것도, 매회 방문하는 남자 게스트들에게 “좀 조용히 해”라며 파격적인 게스트 환대의 포문을 연 것도 제시였다. 여성 연예인은 친절하거나 조신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고정관념이 아직은 다 가시지 않은 방송계에서 제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캐릭터고, 그런 제시가 열어젖힌 틈 사이로 예능 베테랑 전소민과 넘치는 끼의 미주가 비집고 들어와 활약하며 〈식스센스〉는 고유의 독특한 질감을 지닐 수 있었다. 여성 멤버로만 이루어진 ‘여성 예능’을 표방한 것도 아닌데, 여성 멤버들이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제 욕망을 마음껏 이야기하며 쇼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예능. 〈식스센스〉의 성공 뒤에는 제시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