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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7일 17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8일 11시 06분 KST

[What is Family?] 세상의 모든 가족을 경험한 최현숙이 가족을 말하다

이성애 중심 가족, 이혼, 동성 애인과의 사랑을 거쳐 현재 혼자 산다.

최현숙(61)은 2008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다. 첫 성소수자 후보였다. 2009년엔 진보신당 부대표에도 출마했다. 2010년에는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만난 노년·장년 여성들의 구술 생애사를 기록한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를 썼다. 최근 펴낸 ‘할배의 탄생’은 촛불정국에 힘입어 3쇄에 들어갔다.

‘정상가족’에서 나고 자란 최현숙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으며, 아들 둘을 낳았고, 커밍아웃했고, 이혼했다. 여자와 살기 시작했고, 헤어졌고, 현재 혼자 산다. 존재 가능한 거의 모든 형태의 가족을 경험한 셈이다.

한국은 유달리 아빠, 엄마, 자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핵가족만 ‘정상가족‘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성애 중심 가족, 이혼, 동성 애인과의 사랑을 거쳐 비혼주의자가 된 그를 ‘가정의달’ 5월 경기도 수원에서 만났다.

HUFFPOST KOREA/INKYUNG YOON

대한민국에서 ‘가족’하면 최고봉인 것 같아 모셨습니다. 간단한 가족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1957년생으로 5남매 중 첫째 딸로 자랐고, 1980년에 결혼했죠. 아들 둘을 낳았고 2004년부터 별거했어요. 2006년 이혼했죠. 사귀던 여성이 ‘가정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요. 2007년 말부터 혼자 살고 있어요. 연애를 하더라도 1인 가구를 고수할 생각이에요. 다시는 누구와 살고 싶지 않아서. 인생에 ‘절대로’는 없겠지만.

 

하나씩 얘기해볼까요. 태어나 자란 가족은 어떤 가족이었나요?

엄마 아버지와 5남매. 소위 말하는 딱 정상가족이었어요.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나 양반이네’하는 집안이었죠. 서울 노량진에서 컸는데 부모님이 집장사와 돈놀이를 했어요. 다섯 자식 다 대학 보내고 교수도 만들었으니 중상상층이었죠.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노상 “양반 집에 시집와서 종년으로 살아온 나”라는 레퍼토리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굉장히 적극적이고 똑똑한 여성인데, 가족관계 때문에 자기 욕망을 실현하지 못한 게 그분의 근본적 상처였어요. 양반이라는 게 그분에겐 명예이자 족쇄였죠. 남편의 가정폭력도 있었는데 가정을 깰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죠. 그런데 저는 다 깨고 사니까 나에 대한 우리 엄마의 감정은 ‘너는 왜 그러고 사냐‘와 ‘나도 너처럼 살아봤으면 좋겠다’ 사이에 있어요.

 

그런 가정사라면,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랐을 것 같은데요?

왜 엄마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저렇게 화를 내면서도 가정을 깨지 못하고 사나. 이런 생각 많이 했죠. 그렇지만 엄마나 제가 아버지 가정폭력의 공동 피해자였기 때문에 엄마를 밉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어요. 엄마가 나에게 못된 짓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같은 피해자로서 연대의 느낌이 더 강했어요. 내 인생을 한문장으로 정리하면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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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온 보험을 다 깨는 거야”

최현숙은 1980년 남자와 결혼했다. 집안 반대가 극심했다. 가난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냥 집을 나와서 같이 살았다. 첫 아이가 100일쯤 됐을 때 친정 아버지가 화해 전화를 걸었다.

내 길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했던 그 결혼 생활은 어땠나요?

당시엔 그런 생각으로 한 건 아니고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이었어요. 많은 여성들이 그런 생각으로 결혼과 남편을 선택해요. 그런데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택하거나, 다르더라도 또 다른 수렁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어요. 학벌과 집안과 돈을 전혀 안보고 결혼했어요. 나는 대학을 나왔지만, 남편은 중학교를 힘들게 졸업한 게 다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 콤플렉스로 인해 가정폭력을 휘둘렀어요. 내가 사회활동하는 것을 두고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웠죠. 남편은 누구의 아내, 엄마를 원했어요.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20년 넘게 이어온 결혼 생활을 정리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특별한 계기가 없었으면 이혼 안할 수도 있었을거에요. 근데 좋아하는 여성이 생겼고, 다른 이를 좋아해도 가족을 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대 여성이 이혼을 원했어요. 그래? 그럼 이혼하지 뭐. 하고 이혼했어요. 그때 막내 남동생이 ”누나가 평생 살아오면서 쌓아온 보험을 다 깨는거다”라고 말했죠. 전 동의하진 않았지만.

 

동성 커플이 주는 해방감

이혼의 계기는 또다른 사랑이었다. 2000년 3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최현숙은 여성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성소수자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곳에서 2004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성소수자 위원회 활동하면서 성정체성을 깨달았다고요? 

사실 그렇진 않아요. 저는 고등학교쯤부터 스스로 양성애자로 생각했어요. 오히려 ‘동성과만‘, 혹은 ‘이성과만 관계를 맺는다’, 이게 좀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남자와 결혼생활 할 때도 여성 애인, 남성 애인 있었어요. 이 여성은 굳이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었던거고.

 

‘동성커플’이라는 가족은 기존 가족과 어떻게 달랐나요?

이것이 여자의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남편은 ‘유부녀가, 애엄마가, 누구 여편네가’ 이런 말로 나의 활동, 생각을 계속 반대했고 그것이 싸움의 핵심이었어요. 남편은 나에 대한 콤플렉스를 푸는 방식으로 소위 여자의 일이라는 걸 전혀 안했어요. 이혼하고 여성과 살면서는 그 고민이 없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어떤 일을 할 수는 있는데 그게 ′여자니까 해라′ 이런 식으로 주어지진 않으니까. 아버지가 나를 양반집 규수 만들고 싶어했는데(웃음) 그러는 아버지와의 싸움이 내겐 큰 스트레스였고 고민거리였어요. 근데 남편과도 똑같은 주제로 다퉜죠. 여성과 살면서 그 고민을 안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 머리를 가볍게 하는 것이었죠.

 

앞으로 1인가구로 살 거라고 하셨는데, 그 형태를 종국적인 형태로 결정하신 이유는 뭔가요?

저에겐 자유가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물론 누구를 사랑하고 책임지고 이런 걸 계속해왔고, 지금도 엄마로서 애인으로서 자식으로서 남매로서 그런 역할 하기는 하지만, 제가 잡고 싶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자유인 것 같아요. 다시 누구랑 같이 살면서 일상을 조정하고 이런 건 안하고 싶고요. 특히 다른 한사람과의 관계를 국가에 등록하는 건 절대로 안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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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로 살다 때 되면 스스로 죽겠다

남동생의 대사(”쌓아온 보험을 다 깨는 거야”)가 가족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1인 가구로 살다보면 가족 안전망이 없다는 불안감이 들진 않나요?

없어요. 적당한 시기에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작정을 하고 나니  불안이 없어져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능력과 내가 주는 부담을 비교해서 어떤 시점엔가 그렇게 할 거예요. 그 전에 사고로 죽으면 땡큐고(웃음). 지금 이 고령화사회에서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그 작정을 하고 나면 상당히 마음이 편해져요.

 

최현숙 개인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가족들은 지극히 보편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연로한 부모님은 고급 실버타운에 살고 있다. 5남매는 성공한 큰 오빠를 중심으로 자주 뭉친다. 두 아들도 모두 결혼해 아이가 있다. 며느리는 그를 ‘시엄마’라고 부른다.

 

주변엔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들이 많아요.

맞아요. 친정이 그런 거 아주 중요시하는 이들이죠. 내게는 그들이 중요한 관찰 대상이에요. 저 정상가족이 무엇에 기반해서 저렇게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을까 싶어요.

 

관찰 결과는 어떤가요?

돈이 있으니까 화목한 거예요. 독거노인 현장에 가보면 돈이 없어서 가족이 깨진 경우가 많거든요. 독거노인, 고독사 이런 문제들도 돈이 좀 여유가 있으면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일들이에요.

 

부자들 중에도 화목하지 않은 집안 많은데요.

물론 그렇죠. 다행히 이 집안 사람들은 가족 간에 서로 돌봐야 한다, 그런 게 있어요. 그런데 돈이 없으면 그런 마음이 유지되기 어렵거든요.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에. 이쪽 집안은 가부장 질서대로 아들들이 돈을 왕창 내요.

 

가부장적 질서를 따라 굉장히 안정적으로 구축된 가족이군요.

그렇죠. 다행히 가장 많은 자원이 집중된 큰 아들이 성공해서 가장 많은 자원을 내면서 잘하자고 하니 아무도 부담이 없고 화목한거죠. 

 

잘 벌게 된 것은 아들을 특별히 더 지원해서인가요?

그런 측면이 있죠. 오빠는 부모들이 자기에게 집중하느라 나를 적극 지원하지 않았다며 미안해해요. 그 맘이 이해는 되는데 그래서 내가 그것 때문에 내 삶을 못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그 김에 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이 상황을 수긍은 하죠.

 

폐쇄적인 가족이 만악의 근원

최현숙은 구술생애사를 기록하는 작가다. 타인의 가족사를 누구보다 많이 듣고 기록했다. 그는 ”폐쇄적인 가족주의가 한국 사회 구조적인 악의 근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기본단위인 가족이 더 큰 공동체를 향해서 개방돼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안으로만 뭉쳐요. 내새끼, 내부모 이러죠. 내새끼를 위해서만은 내가 어떤 희생도 하고, 내 식구를 위해서만은 누구에게 해가 되더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죠. 그러다보니 부의 분배도 안되고, 부가 축적되고 대물림되죠.” 

 

최현숙은 가족이 그 폐쇄성 때문에 구성원들에게도 상처를 준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 내면의 상처들은 거의 다 가족관계 안에서 생겨요. 폐쇄적이다보니 그걸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채 늙어가요. 타인이 준 상처는 ‘남이 한 거니까’ 이러면서 털어내거나 싸울 수 있는데 가족이 준 상처는 그렇게하기 어려워요. 가해자가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을 돌보기도 했고, 잘해주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뒤엉킨 기억이 있어서 그 상처를 끝까지 가져가는 것 같아요. 전생에 원수를 가족으로 만난다고 하잖아요. 나 이 말 믿어요. 많은 경우에 사실이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