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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20일 11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20일 14시 27분 KST

나는 몸무게를 30kg 줄이면 더 행복해질 줄 알았다. 오해였다.

어렸을 땐 비만이 내게 일종의 갑옷이나 방패였다

COURTESY OF ROBBI ROMU
2016년 로비 로무(상), 2017년 로비 로무(하).

나는 항상 비만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을 늘 비만이라고 여겼다.

어릴 때도 덩치가 큰 편이었다. 하지만 아주 뚱뚱하지는 않았다. 또래보다 키와 몸집이 훨씬 더 크다는 게 아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다르다는 건 좋은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난 게이였다. ‘다른’ 요소로 따지자면 그보다 최악일 수는 없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유년기 내내 내 정체성을 숨겼다. 나는 캐나다 북온타리오에서 자랐다. 무지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게이라는 정체성으로 산다는 그 자체가 위험한 곳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비만은 일종의 갑옷이나 방패와 같았다.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내 안전을 지키는 데 유용한 도구였다.

고향을 벗어난 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걸쳐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노력에 나섰다. 그러나 내 희망과 달리 게이 커뮤니티는 그리 수용적이지 않았다. 나는 게이 커뮤니티가 요구하는 거의 불가능한 미의 기준에 도전하면서 암흑 같은 삶에 허덕였다. 체중을 줄이겠다는 욕망에 시도해보지 않은 게 없었다. 며칠 동안 굶기도 하고, 미친 듯이 운동도 했으며, 급기야 완하제까지 복용했다. 완하제를 잔뜩 삼킨 다음, 오늘 밤만이라도 문제없이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아픈 배를 움킨 채 기도하기 일쑤였다.

신에게 약속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살려만 주세요.” 그러나 모두 거짓말이었다. 결국 지나친 완하제 복용으로 구토까지 했고, 그 이후로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아주 더 나쁜 상태로 추락했다. 22살의 나는 완전히 격리된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나 고독했고, 불안하고 우울했으며, 거의 매일 내 뱃속의 모든 걸 토해냈다.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래서 도움을 청했고, 이런 문제를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내 경험, 아니 그런 자학적인 행동은  LGBTQ 커뮤니티가 근심해야 할 정도로 빈번한 일이다. 심리상담을 받고 밴쿠버로 이주하면서 나는 그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0, 40대 때, 내 몸무게는 출렁거렸다. 통통하던 몸매가 어느새 뚱뚱해져 있었고, 난 그런 내 몸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30대 때 크루스선을 탄 적이 있다(아래 사진). 여행에 나섰지만, 방에서 나오기도 싫고 상의를 벗는 것도 싫었다. 내 체구가 너무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적어도 배에 탄 다른 남성들에 비교해서는 말이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방황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다. 내 몸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없었다. 솔직히 난 매우 평범했다. 하지만 거울에 보인 나는 평범 이하로 보였다.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좀 더 날씬하다면 모든 게 완벽할 텐데”라고.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몸무게만 줄이면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가 사라질 거라고 말이다. 

COURTESY OF ROBBIE ROMU
크루스 선을 탄 로비 로무, 2001년.

만 48세가 된 2017년, 내 몸무게는 119kg까지 치솟았다. 키가 188cm라 볼썽사납지는 않았지만, 비만은 확실했다. 당시 여섯 가지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체중 관련한 약제였다. 우울증, 만성 불안증, 위산 역류증, 고혈압 등을 앓고 있었으니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2017년을 내가 만 49살이 되는 해로 착각하고 있었다. 내 신체는 물론 내 정신과도 분리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증거다.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헐뜯는 불행한 결혼생활에 갇혀있었고,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과식했으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눈 뜬 시간을 모두 TV나 비디오게임에 쏟아부었다. 결혼기념일, 생일, 명절. 내겐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불행한 내 삶과 내 무관심을 상기시키는 날들이므로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그러다 하루, 내 과거를 돌아보며 50이란 나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다가왔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시간 개념을 완전히 잃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69년에 태어났으니까 난 당시 만으로 48세였다. 정신줄을 어떻게 놓고 살았길래 1년이란 세월을 착각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구글에 물었다. “1969년 6월 10일이 생일인 사람의 오늘 나이는?” 구글의 답은 ”만 47세 더하기 358일”이었다.

졸지에 1년을 번 셈이었다. 1년을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다음 1년은 선물이었다. 헛되게 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얼마 후, 난 결혼생활을 청산했고, 더 적극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식단을 개선했고 운동도 시작했다.

우선 모든 가공식품, 설탕, 탄수화물 등 ”나쁜 음식”을 식단에서 제거했다. 도리토 한 봉지(대형)와 초콜릿 우유 1리터를 매일 먹고 마시던 나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식을 참기 어려울 땐 새로 지은 구호를 되풀이했다.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이다. 허비하지 말자.” 과일과 채소를 먹기 시작했고, 견과류와 살코기를 먹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COURTESY OF ROBBI ROMU
로비 로무, 2018년.

처음엔 동네를 산책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친구와 테니스를 쳤다. 얼마 후 등산을 시작했다. 계속하다 보니 등산이 재미있어졌다. 야외활동에 푹 빠진 것이다. 그리고 몇 달이 안 돼,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깨어 등산길에 나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테니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쳤다. 그러자 체중은 저절로 빠졌다. 여름이 끝날 무렵 등산은 조깅으로 조깅은 달리기로 바뀌었다. 몸무게가 그렇게 빨리 줄면서 기분도 우쭐해졌다.

장거리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느 날이었다. 운전 중이었는데, 갑자기 엄습한 슬픔 때문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난 ”대체 뭐가 문제인데?”라고 나 자신에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아직도 늘 불안감에 떨던 그 어린아이야. 포장만 다를 뿐이지.”

수년 동안 나 자신에게 반복해 말하던 ‘좀 더 날씬하다면 모든 게 완벽할 텐데’라는 말의 실태가 밝혀진 것이었다. 완전한 거짓말이었다는 깨달음으로 말이다. 체중을 약 23kg 뺀 시점이었다. 하지만 겉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내 속은 그대로였다. 정말로 슬픈 건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무리 예쁜 드레스를 입었다고 해도, 돼지는 돼지다.”라는 말이 기억났다. 평생 느껴왔던 불안감이 아직도 내 곁에 남아있었다. 난 그 돼지와 별다르지 않았다. 나는 몇 년 사이에 30kg을 뺐다(대단한 성과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몸무게는 87kg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뚱뚱한 어린아이 같을 때가 아직도 많다. 난 나에게 정말로 매력을 느낄 사람은 없다고 믿으면 살아왔다. 나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단순히 친절을 베푸는 것이거나, 날 불쌍하게 여겨 동침해준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게이를 포함해) 이전보다 나에게 훨씬 더 친절하다. 그런데 그 자체도 왠지 우울하며, 새로운 공포로 다가온다. 남을 못 믿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는 나를 발견한다. 날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간들이 관심을 보인다.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또 쉽게 상대방과 소통을 하고 칭찬도 오간다. 그럴 때 당연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게 내게 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나는 자기 정체성이 무엇이든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을 해도 그렇게 안 되는 게 내 현실이다. 내겐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하는 태도를 가진 그런 사람은 놀라우면서도 두려운 존재다. 그런 이에 대해 나는 ”정말로 당당하네.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지?”라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유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보면 살 빼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몸무게나 나이에 개의치 않고 나를 수용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지금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거다. 치료제도 이젠 복용하지 않는다. 지금 내 건강은 10개월 전보다 훨씬 더 좋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정말로 노력해야 하는 건 심리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내 일생의 여정은 날씬함에서 뚱뚱함으로도 아니고, 젊음에서 노령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존재감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신은 외부가 아닌 내 내면에서 비롯돼야 한다.

내가 내 체구에 완전히 만족하는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란 선물을 헛되게 다루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장거리를 횡단하며 많은 것을 극복했다. 30kg을 뺀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훨씬 더 중요한 일도 할 수 있다고 다짐해 본다. 

로비 로무는 디지털 마케팅 매니저이자 작가다. 그의 첫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다. 42stillnoclue..com에서 그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다. 

 

*허프포스트US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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