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결혼식 : 마을에서 '성 평등' 결혼식 올린 신부는 멋진 웨딩슈트를 입었다

바지를 입은 신부와 조수석에 탄 신랑은 '성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너의 결혼식|친구의 연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지만, 결혼식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어디에서 하는지, 어떤 드레스를 입는지 주어를 빼면 항상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의 결혼식이 궁금해졌다. 왜냐고? 지금부터 들려줄 결혼식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혼식이다.

1부에 이어 다시 경남 산청 원산마을 길 한복판에서 트랙터를 타고 결혼식을 올린 이종혁-정푸른 부부 이야기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평소 꿈꾸던 결혼식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성 차별적인 결혼 문화를 탈피해보자는 이야기는 그렇게 나왔고, 바지는 신랑만 입는다는 고정관념부터 깨부수기로 했다.

♥ 바지를 입은 신부 : ”저는 멋있어 보이고 싶었어요”

웨딩 슈트를 입은 신부 푸른의 모습.
웨딩 슈트를 입은 신부 푸른의 모습.

- 바지를 입은 신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바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신부 푸른) 처음부터 ‘웨딩드레스 안 입으면 안 되나?’ 생각했어요. 드레스는 너무 비쌀 것 같고, 불편할 것 같고, 저한테 안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저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를 굳이 공식 석상에서 재현해주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냥 저답게 입고 싶었고, 멋있어 보이고 싶었어요. 자연스레 ‘웨딩 슈트나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입어야지’ 마음 먹었는데, 재미삼아 입어 본 웨딩드레스가 또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결혼식 1부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2부에는 웨딩슈트를 입기로 결정했어요.

- 널리고 널린 게 웨딩드레스지만, 웨딩슈트는 구하기 힘들 것 같아요.

= 맞아요. 아직 한국에서는 결혼식 본식에서 바지 입는 신부가 잘 없어선지, 웨딩슈트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나마 해외 사이트에서 괜찮아 보이는 웨딩슈트를 찾았는데, 가격이 비쌌고 시간까지 촉박하니까 배송이 또 문제더라고요. 다행히 며칠 밤잠을 설치면서 검색한 끝에 정말 좋은 가격에, 예쁜 핏을 가진 국산 웨딩 슈트를 찾아냈어요. 결혼식 당일 제가 웨딩슈트 입은 모습을 본 사람들이 ‘멋있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라고 해주셔서 속으로 ‘오예! 성공!’이라고 외쳤죠.

푸른과 종혁, 그리고 친구들.
푸른과 종혁, 그리고 친구들.

♥ ‘듬직한 신랑‘, ‘지혜로운 신부’를 거부하다

- 종혁과 푸른의 ‘성 평등’ 결혼식은 보통의 결혼식과 어떤 면에서 달랐나요?

= 으레 신랑을 먼저, 신부를 나중에 부르는 것부터 고치고 싶었어요. 결혼식은 수많은 말이 오가는 자리잖아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신부는 뒷전으로 밀리더라고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작은 것부터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자에게 차별, 편견이 담긴 표현을 조심해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했죠. 결과요? ‘신랑 이종혁과 신부 정푸른’ 이 순서를 바꾸진 못했어요. 신랑신부 순서를 계속 바꿔 부르면 결혼식장이 혼란의 도가니가 될 것 같았거든요. 😅😅😅

동시에 웃음이 터진 종혁과 푸른.
동시에 웃음이 터진 종혁과 푸른.

- 아, 생각조차 못했던 부분이에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 ”신랑 ○○○군, 신부 ○○○양” 대신 ”신랑 이종혁, 신부 정푸른”이라고 말했어요. 신랑과 신부 앞에 붙는 뻔한 수식어도 과감히 없앴어요. ‘듬직한 신랑‘, ‘지혜로운 신부’ 같은 거요. 알게 모르게 신랑과 신부의 역할을 성(性)으로만 결정짓는 것 같았거든요. (신부가 트랙터 운전대를 잡고, 신랑은 조수석에 탄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대신 저희는 그 사람만의 수식어를 서로 정해줬어요. 이렇게요.

“부처인가 요정인가! 웃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이종혁이 입장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다음으로, 남다른 호기심과 기발한 상상력, 엉뚱발랄함으로 산청은 물론 제 마음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사람, 정푸른이 입장하겠습니다. 신부, 입장!”

신랑 이종혁과 신부 정푸른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결혼식 2부에는 각자 입장을 다르게 했어요. 딸기와 벼 농사를 짓는 신랑은 가수 홍순관의 쌀 한 톨의 무게 노래에 맞춰 하객들에게 보리를 나눠줬고요. 신부는 솔가와 이란의 같이살자와 함께 춤을 추며 식장으로 들어갔어요. ‘듬직한 신랑, 지혜로운 신부’보다 훨씬 낫죠?

신부 푸른은 신부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신랑 종혁과 함께 결혼식장 입구에서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신부 푸른은 신부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신랑 종혁과 함께 결혼식장 입구에서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 결혼식에서 부모님의 역할도 조금 특별했다고 들었어요.

= 하객일 때는 잘 몰랐는데, 제 결혼식을 하려고 보니까 부모님의 역할이 좀 구분되는 것 같더라고요. 어머니들은 화촉 점화라고 하죠? 결혼식을 시작할 때 초에 불을 붙이고 나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고, 아버지들이 주로 덕담을 하는 그런 것들이요.

저희는 화촉 점화를 하지 않고 신랑신부가 동시에 입장하면서 결혼식을 시작했고요. 부모님 모두에게 말씀하실 기회를 드렸어요. 신부 부모님은 축시를 읊어주셨고, 신랑 부모님은 자리에서 즉석으로 덕담을 해주셨어요. 네 분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깊은 사랑을 느꼈어요.

-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신 것 같아요. 두 분의 혼인 서약서가 궁금해요.

= (신부 푸른) 혼인 서약도 상투적인 말 대신,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혼인 서약‘이라는 말 대신 ‘사랑의 약속’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렇다고 대단한 약속을 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을 나눴어요. 저는 스마트폰에 써 갔고, 종혁샘(저희는 서로를 샘이라고 불러요)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어요.

푸른, 사랑의 약속
“저와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
또 그게 종혁샘이라는 것.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샘이 아무도 모르는 꽃을 알아보고 살펴보듯
샘이 하루하루 나뭇잎과 이슬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듯이
저를 잘 돌보아주세요.
저도 샘을 정성껏 돌볼게요.

이런 흔한 말을 할 줄 몰랐는데..
엄마, 어머님처럼 현명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대접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남편 먼저, 자식 먼저 안 하고 나 자신 정푸른을 잘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 저 스스로 귀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더 깊고 넓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든든한 동지가 생겼으니
더 짙은 푸른이 되어서 잘 살겠습니다.”

종혁, 사랑의 약속
“잘 살겠습니다, 싸우지 않겠습니다, 뭐 말 잘 듣겠습니다, 이런 말 별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만의 약속을 생각해봤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제가 살면서 사람들에게 ‘묵묵히 열심히 일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무슨 말을 할 거냐고 물어보길래 묵묵히 살겠다고 말한다고 했더니 ‘더 말없이 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그동안 살아왔던 것만큼 앞으로는 더 열심히 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고, 답답한 면도 있고, 부모님들께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쁜 짓 하지 않고 올바른 일,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서서 하고, 조금이라도 우리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코로나 시대’에 탄생한 신혼의 특별함

경남 산청 원산마을 정자나무 아래. 2020.5.23
경남 산청 원산마을 정자나무 아래. 2020.5.23

- 코로나19 때문에 결혼 준비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래도 코로나 시대에 결혼이라는 큰 과제를 해내셨으니 예비 부부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주신다면요?

= (신부 푸른) 코로나19 눈치를 보느라 한참 동안 날짜를 정하지 못했어요. 코로나19 상황은 날씨보다도 더 예상할 수가 없으니 진짜 난감했어요. 야외 결혼식이 실내 결혼식보다는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불안하고 눈치 보이는 마음을 조금 내려놨어요.

혹시나 저희처럼 조금 별난(?) 결혼식을 꿈꾸는 예비 부부가 계신다면, 코로나를 핑계로 어른들을 설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랜선 결혼식이라거나, 소수만 초대하는 결혼식이라거나. 결혼식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색다른 결혼 이벤트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코로나 때문에 신혼여행 계획도 바뀌셨다고요?

= 네, 처음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고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져서 그 계획은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온 신경을 결혼 준비에 쏟아붓다 보니 신혼여행은 전혀 준비하지 못했어요. ‘일단 결혼식 끝나고 생각하자’ 그랬죠.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부터는 그동안 못 잔 잠도 몰아자고, 결혼식 장소 청소도 하고, 빌린 물건들을 돌려드리느라 바빴고요.

어느 정도 마무리될 쯤에야 ‘아, 우리 신혼여행 가야 하지 않아?’ 싶더라고요. 급하게 제주도 항공권을 검색했는데, 엄청 저렴한 거예요. 바로 예약을 하고, 아무런 계획 없이 제주도로 떠나버렸어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나무에 지어놓은 집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나무에 지어놓은 집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제주에서도 저희 취향대로 주로 숲과 독립서점을 찾아다녔고,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어요. 그랬더니 주변에서는 ‘벌칙 여행 다니냐’고 하더라고요. 하하. 뒤늦게 조금 슬픈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보다 4성급 호텔이 더 저렴했어요. 저희는 고급 여행을 한 셈이죠.

♥ 결혼식, 마음 맞춰 속도 맞춰 함께 해나가는 첫 경험


- 남다른 결혼식을 하려면 신랑신부 의견이 잘 맞아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두 분은 정말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로에게 “결혼식 어떻게 하고 싶었어?”라고 물어보는 거였어요. 둘 다 결혼식장에서 하는 결혼식, 번쩍번쩍 화려하고 도시적인 결혼식을 원하지 않았고, 우리가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관례를 굳이 지키거나 따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을 것들’을 걸러내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결혼식을 기획해보기로 했어요.

- 천생연분인 두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져요. 평범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신부 푸른) 경남 산청에는 지역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웃들과 재미난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렇게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희도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어느 날, 저희 단둘이 강변에 앉아 맥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눈 일이 있었어요. 그 뒤로 청년모임에서 종종 보게 되거나, 서로 도울 일이 생기기도 했고요. 점점 더 자주 만나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어요. 일이 끝나고 저녁에만 만났기 때문에, 주로 별과 달을 보러 갔고요. 각자 산청에서 아지트로 여기는 장소를 공유했어요.

종혁을 등에 업은 푸른.
종혁을 등에 업은 푸른.

신랑은 말이 없는 사람이라 침묵이 흐르는 시간도 많고, 맥주를 마시면 잠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대화 속에 서로 잘 맞는 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서로 좋은 동료, 친구로만 대했죠. 서로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신랑이 고백인 듯 아닌 듯 마음을 표현하면서부터 관계가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 것 같아요.

신부 정푸른과 신랑 이종혁.
신부 정푸른과 신랑 이종혁.

- 결혼식을 하고 두 달이 조금 지났어요. 두 사람에게 결혼식은 어떤 의미였나요?

= 저희 둘에게 결혼식은 ‘우리답게’를 알아가고, 만들어가는 재미난 프로젝트 같은 거였어요. 한 가지 일을 마음 맞춰 속도 맞춰 함께 해나가는 첫 경험이었거든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여러 형태의 결혼 의식을 생각해봤는데 그중 하나가 ‘찾아가는 결혼식’이었어요. 하객들을 결혼식장으로 초대하는 대신에 저희가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거예요. 전국을 다니면서 저희 지인들을 만나 축복받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 나누는 여행 같은 거죠.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받고, 앞으로의 삶을 응원받을 수 있다면 어떤 결혼 의식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셀프 웨딩을 준비하시는 분들 중에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저희에게 연락 주세요. 저희가 아는 만큼, 되는 만큼 도와드릴게요!

- 남다른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의 신혼 생활이 궁금해서 푸른씨 인스타그램을 살짝 염탐했어요. 두 분이서 재미난 걸 많이 하시더라고요.

= (신부 푸른) 최근에 ‘서로연구소’ 집들이를 열었어요. 제가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하는데요. 서로연구소는 종혁샘과 제가 사는 집의 애칭이에요. ‘서로를 연구하면서 살자’라는 의미예요.

다같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친구들과 서로연구소 집들이 연습편을 함께 했는데요. 친구들에게 집들이 선물로 저희 두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책 속 문장과 글을 받았어요. 두루마리 휴지보다도 저희에게 큰 보탬이 됐는데, 이 글귀들과 함께 저희는 앞으로 평생 서로를 연구하며 살아갈 예정이에요!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