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결혼식 : 우리는 마을회관 앞에서 트랙터를 타고 결혼식을 올렸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결혼식 풍경이다.

너의 결혼식| 친구의 연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지만, 결혼식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어디에서 하는지, 어떤 드레스를 입는지 주어를 빼면 항상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의 결혼식이 궁금해졌다. 왜냐고? 지금부터 들려줄 결혼식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혼식이다.

경상남도 산청군을 터전 삼아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 이종혁과 정푸른은 일과가 끝나면 별과 달을 바라보며 자주 맥주를 마셨다. 불 꺼진 마을이 그들의 배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푸른은 ‘정말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어느 날 종혁이 푸른에게 물었다. ”안아봐도 되나요?” 그렇게 두 사람은 좋은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평소 별과 달을 바라보던 그곳에서, 바로 마을회관 앞 길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트랙터를 몰고 결혼식장으로 입장했다. 운전대는 신부 푸른이 잡았다.
두 사람은 트랙터를 몰고 결혼식장으로 입장했다. 운전대는 신부 푸른이 잡았다.
트랙터와 신부신랑, 그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랙터와 신부신랑, 그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트랙터를 몰고 결혼식장 입장한 신부와 신랑

- 결혼식장이 마을회관이 아니라 마을회관 ‘앞 길 한복판’이에요. 어떻게 길 위에서 결혼할 생각을 했어요?

= 야외 결혼식을 원했는데, 우리 마을에는 야외 식장이 없었어요. 코로나바이러스 영향도 있어요. 실내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기보단 탁 트인 곳에서 간격을 두고 앉는 게 하객들 입장에서 덜 불안할 것 같았거든요. 그러던 중 정자나무 아래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눈에 띄었고, ‘아, 저기다!’ 싶었죠. 오순도순 동네 사람들과 잔치 느낌 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는데, 꿈꾸던 대로 된 것 같아요.

- 청첩장에는 위치를 뭐라고 적었나요? 길 위 한복판? 😆😆😆

= 아뇨. 청첩장에는 그 길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회관 주소를 적었어요. 길에는 딱히 주소가 없거든요.

- 트랙터를 몰고 식장에 입장한 게 파격적이에요. 누구 아이디어였어요?

= (신부 푸른) 결혼식을 준비할 즈음 신랑에게 트랙터 운전을 배우고 있었는데, 신랑이 ‘푸른샘이 트랙터를 몰고 식장에 입장하는 게 어때?’ 묻더라고요. (그들은 서로를 선생님의 줄임말인 ‘샘’으로 호칭한다) 너무 괜찮을 것 같았어요. 농민의 힙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보면 트랙터가 좀 멋있잖아요? 커다란 트랙터가 주는 첫인상처럼 ‘농촌·농업·농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다행히 하객들 반응도 좋았네요.

신랑 이종혁과 신부 정푸른은 신랑이 나고 자란 경남 산청 원산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청첩장엔 마을회관 주소를 적었지만, 실제로 결혼식을 올린 곳은 회관 앞 길 한복판이다. 2020.5.23
신랑 이종혁과 신부 정푸른은 신랑이 나고 자란 경남 산청 원산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청첩장엔 마을회관 주소를 적었지만, 실제로 결혼식을 올린 곳은 회관 앞 길 한복판이다. 2020.5.23
결혼식 2부를 열어준 풍물패의 길놀이♬
결혼식 2부를 열어준 풍물패의 길놀이♬
담벼락에 내걸린 종혁과 푸른의 사랑스러움. 하객들을 위해 준비한 밀짚모자마저 사랑스럽다.
담벼락에 내걸린 종혁과 푸른의 사랑스러움. 하객들을 위해 준비한 밀짚모자마저 사랑스럽다.

- 두 사람의 결혼식 계획을 들은 양가의 반응이 궁금해요. 찬성? 반대? 판단 보류?

= 처음에 신랑 부모님은 진짜 그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나봐요. ”정자나무 아래서 우째 할끼고!”라며 웃어넘기셨죠. 저희가 결혼식 전날 밤까지 무대를 꾸몄는데, 멀리서 지켜보시면서 걱정이 많으셨대요. 끝나고 나서는 무척 만족해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신부 부모님은 처음부터 너무 재미있겠다며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고, 아이디어도 내주셨어요. 오히려 가까이서 도와주지 못해 아쉬워하셨고요.

- 결혼식을 올린 ‘원산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 (신부 푸른) 경남 산청군 신안면 장죽리에 있는 마을이에요. 신랑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쭉 살아오신 마을이고, 신랑도 여기서 나고 자라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 저도 마침 살던 곳을 나와야 해서 몇 달간 그 집에서 같이 살았고요. 저도 그때부터 ‘우리 마을’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정푸른과 이종혁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정푸른과 이종혁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푸른과 종혁.
푸른과 종혁.

-안락하고 쾌적한 결혼식장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마을 결혼식’을 고집하신 것만 봐도 마을에 애정이 상당히 큰 것 같아요. 마을 자랑 좀 해주세요.

=다른 마을도 비슷하겠지만, 여전히 정이란 게 있어요. 이웃집 수저가 몇 개인지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아요. 지나친 관심이 가끔 간섭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오며 가며 인사하는 할매들의 따뜻함이 좋아요. 무엇보다 다른 사람 눈치 따위 안 보 ‘할 말’하는 할매들이 너무나 당당해 보여요. 그 할매들이 흙 묻히고 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멋짐이 마구 느껴지기도 하고요. 언젠가 저도 저 할매들처럼 멋지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 지금은 원산마을이 아닌 곳에서 살고 계시잖아요.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곳인데, 왜 거기서 안 사세요?

= 저희도 정말 살고 싶지만, 아쉽게도 집을 구하지 못했어요. 원산마을 분들은 집을 거의 내놓지 않으시거든요.😂어쩔 수 없이 지금은 10km 정도 떨어진 면 소재지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마을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면서요. 도시와 달라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마을에는 우리가 애타게 찾고 그리워하는 뭔가가 있어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보여준 그 시절 그 감성 같은 거요.

신랑 종혁의 아이디어로 마을에 내건 결혼식 플래카드. 농촌에서는 경사가 있을 때면 이렇게 현수막을 단다. 종혁과 푸른처럼 당사자들이 직접 다는 경우는 드물테지만.
신랑 종혁의 아이디어로 마을에 내건 결혼식 플래카드. 농촌에서는 경사가 있을 때면 이렇게 현수막을 단다. 종혁과 푸른처럼 당사자들이 직접 다는 경우는 드물테지만.

<소맥처럼 너희도>

-신부 아버지 정경식 씨가 결혼식에서 낭독한 축시

소주와 맥주가 한 잔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소맥이라 부르지.
소맥의 매력은 무엇보다 맥주의 시원함과
소주의 진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지.

종혁, 푸른아
너희의 시선은 우리보다 바르고
너희의 가치관은 우리보다 훌륭하다고 믿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 교과서처럼 말하고 싶지가 않네.

소맥처럼 살아가길 바라.
둘의 시원하고 진한 향기가
세상 사람들을 맑고 투명하도록 취하게 했으면 해.
그리하여 둘의 예쁜 삶이
술술술 흘러들어 주위를 아름답게 물들였으면 해.

부디 그러리라는 믿음과 다짐의 뜻에서
푸른 종혁아, 건배!

♥ 스몰웨딩? NO! ‘지인찬스’ 활용한 조금 특별한 ‘빅웨딩’

- ‘스드메(스튜디오 + 드레스 + 메이크업)’는 하셨나요? 결혼 준비할 때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잖아요.

= (신랑 종혁) 스튜디오 촬영은 안 했어요. 대신 지인 사진가를 섭외해서 산청에서 하루종일 야외 촬영을 했어요. 5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촬영용 턱시도, 원피스, 구두 같은 것까지 빌려주셔서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야외 촬영 때 입은 드레스는 형수님이 결혼식 때 입은 드레스를 빌린 거고요, 메이크업은 가장 가볍고 자연스럽게 해줄 곳을 골라 당일 새벽 대구에서 간단히 하고 왔어요. 정말 열심히 발품 팔고, 검색하지 않으면 ‘웨딩’ 두 글자가 들어가는 모든 것에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 같아요.

- 흔히 말하는 ‘스몰 웨딩’ 아닌가요? 비용도 진짜 ‘스몰’인지 궁금해요. 총 비용은 얼마 정도 드셨어요?

=(신랑 종혁) 모두 합쳐서 1400만원을 썼어요. 그중 400만원 정도는 결혼식을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 선물을 드리는 데 썼고요. 촬영, 무대 세팅, 공연, 음향, 식사, 식기 대여 등 거의 대부분을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거든요.

흔히들 스몰 웨딩과 셀프 웨딩, 야외 웨딩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희는 스몰 웨딩이라고 얘기한 적이 없는데, 많은 분들이 스몰 웨딩 아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사실 저희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기를 원했어요.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았고, 결혼식을 핑계로 이참에 다 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선 오히려 ‘빅 웨딩’에 가까울 것 같네요. 조금 특별한 빅 웨딩을 위해 저희만의 지출 기준을 정하긴 했지만요. 들어보실래요?

1. ‘적은 비용’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말자. 아쉽지 않도록 하고 싶은 걸 하자! 다만,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우리 힘으로 하는 방법을 먼저 찾아보자.

2. 훌륭한 이웃과 지인들의 힘을 빌리자. 설령 그분들께 드리는 비용이 업체에 지불하는 비용과 같더라도 그런 비용은 아깝지 않다! 훨씬 더 의미있고, 우리와 잘 어울리기도 할 것이다.

푸르른 두 사람💚
푸르른 두 사람💚
푸른과 종혁은 스튜디오가 아닌 산청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했다.
푸른과 종혁은 스튜디오가 아닌 산청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했다.

♥ ”농민의 아내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결혼식 이후 생활도 궁금해요. 농촌 생활은 어때요? 종혁씨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를 도왔지만, 푸른씨는 농사일이 처음 아닌가요?

= (신부 푸른) 농사일은 처음이지만, 농촌생활이 처음은 아니에요. 산청에 처음 온 건 2016년이에요. 대안학교 자원 교사로 일하면서 대구에서 산청을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러다 2018년 산청에 완전히 살게 됐고요. 농촌 생활의 장점이자 단점은 일정한 시간표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약속도 미리 잡을 수가 없어요. 그날 날씨에 따라 논밭에서의 스케줄이 나오거든요. 비가 많이 오면 집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맑은 날엔 밭에 있어야 할 시간이 늘어나죠.

🍓🍓🍓🍓🍓🍓
🍓🍓🍓🍓🍓🍓

어릴 때부터 자연을 좋아하긴 했지만, 농촌에서 결혼을 하고, 농민의 아내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시골에서 사는 건 왠지 갑갑하고 따분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매력이 넘쳐요. 딸기와 벼 농사를 짓는 남편의 일을 가끔 돕는데요. 그야말로 신세계예요.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해요. 자연의 신비로움이죠. 그리고 도시에 살면 땀 흘리면서 일할 일이 별로 없잖아요. 땀 흘리는 노동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해요.

이들의 특별한 결혼식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