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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1일 12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1일 12시 07분 KST

'쓰레기' 전 남친을 왜 못 잊는 걸까요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클립아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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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는 올해 32살로, 프리랜서 디자이너입니다. 사랑이 잘 진행되면 일도 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제게 일이고 뭐고, 그냥 확 사라지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를 만난 건 1년 전 이태원의 한 펍에서였어요. 친구가 괜찮은 사람을 ‘헌팅’하기 좋은 곳이라고 해서 갔어요. 보자마자 외모가 완전 제 스타일이라 끌렸어요. 제게 번호를 물어봤고 몇 시간 후 전화가 와 술을 마셨어요. 대화를 해보니 열심히 살고 생각도 바른 이였어요. 저와 취향과 생각이 비슷해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3살 연하의 대학생입니다. 올해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그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가 “시간을 쪼개서 저를 만난다”고 하니 더 좋았어요.

친구들은 “결혼할 남자 만나야지 정신 차려라”고 하더군요. 귀에 안 들어 왔죠. 사귀는 1년 동안 늘 감동이었어요. 경기도 용인에 사는 그가 마포에 사는 제게 새벽에도 달려왔어요. 친구들에게도 저를 소개했는데, 친구들이 여자 친구는 처음 본다는 거예요. 믿음이 더 커졌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 속궁합입니다. 너무 잘 맞았어요. 체력도, 테크닉도 엄청 좋은 이입니다.

단점이 있다면 비트코인이나 로또에 너무 매달리는 겁니다. 500만원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또 술을 너무 좋아합니다. 자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제게 오면 그날은 옷을 찢고 저를 좀 거칠게 다루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좀 힘들었어요. 그는 자존감도 낮고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봐요.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다 한 달 전쯤 삐걱거리기 시작했어요. 피곤해 한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자주 만나서 큰 걱정은 안 했어요. 전 눈치가 좀 없는 편입니다. 마음을 한번 주면 믿어버립니다. 전화를 해서 말이 없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만나 얘기를 했는데 요즘 생각이 많다는 거예요. 졸업, 취업 등. 학자금 대출도 있다며 언제 자리 잡을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잘 될 거라고 다독였죠. 그러다 결혼에 대해 묻더군요. 당장에라도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는 자기 인생에 결혼은 없고 누굴 책임질 생각도 없다고 하더군요. 전 바로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울더군요.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겠다 싶어 보냈어요. 그 친구도 울긴 했지만 단호하더군요. 그는 “너는 정말 좋은 여자이고 이제 너와 헤어지면 연애를 안 할 거야”라고 했어요. 아름다운(?) 이별을 했어요. 한 달 안에 돈을 갚겠다는 얘기도 했어요. 그런데 2주가 지나자 후회가 되기 시작했어요. 연락을 했죠. 결혼이 부담스러우면 난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결국 다시 만나게 됐어요. 뜨겁고 좋았어요.

그런데 일터에서 회식하고 온다던 그가 새벽이 돼도 안 오는 거예요. 밤새 부재중 전화가 엄청 왔더군요. 전화했더니 병원 응급실이었어요. 그가 술 마시다가 다쳤다는 거예요. 그의 친구 말이 “생각보다 크게 다쳐 병원비가 많이 나왔으니 (금액을 넉넉히) 생각하고 와라”였어요. 제가 여자 친구이긴 하지만 가족도 아닌데 병원비 얘기를 들으니 살짝 언짢았어요. 하지만 일과 관련된 미팅도 취소하고 갔죠. 가관인 거예요. 죽은 오징어인 줄 알았어요. 축 늘어져서 몸도 못 가누고 머리는 터져서 꿰맨 상태였어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어쩌겠어요. 사랑하는 남자인걸요. 집에 데리고 와 씻기고 재웠어요. 그런데 여자의 촉 아시죠. 그게 왔어요. 휴대전화 카톡을 봐버렸어요.

#베스트 프렌드’와 카톡

남친: 어제 여친 때문에 짜증남. 자기 피부에 뭐가 나고, 살도 찌고. 예민해져서 뭐 말 같지도 않은 걸로 징징댐. / 친구: 좀 달래줘 / 남친: 아, 귀찮아! 헤어질 거야. 자기 친구 결혼식에서 부케 받았다고 말하는데 뭔 뜻이냐 / 친구: 헐 압박인데. / 남친: 유학 간다고 핑계 댈까 해. 기다린다고 하면 큰일. 아직 결혼 생각 없다고 하고 헤어져야지. 못생기고 징징대서 싫음. 돈 있냐? / 친구: 돈은 왜 ? / 남친: 돈 갚기 전까진 이별 못해

이후 더 본 카톡은 ‘파트너 가슴’ 운운하며 성매매한 저급한 내용이었어요. 상처가 컸어요. 늘 예쁘다고 하고. 몇 번 토라져 싸우긴 했지만 묵묵히 받아주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또 언제인지 모르는 헌팅과 성매매까지. 다른 여자들과 한 카톡들. 제게 보여준 사진을 다른 여자에게도 똑같이 보여줬더군요. 충분히 잔 그를 깨워 본 거 다 얘기하고, 일주일 안에 500만원과 병원비 다 갚으라고 했어요. 제대로 살라고도 했죠. 그 와중에 그는 “내가 만난 여자 중에 네가 최고야. 나 이제 여자 안 만나”라는 겁니다. 헤어진 지 3주 되었는데, 전 너무 힘들어요. 남자들만 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들고 믿지 못하겠어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그냥 제가 없어졌으면 해요. 그런데도 “미안했다. 사랑한다”면서 연락이 올까 기다리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가 마지막 한 말이 맴돌아요. 자존심 회복하고 싶어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걸까요? 아니면 미련인가요? ‘쓰레기’인데 그와 좋았던 추억만 생각나요. 전 어쩌죠?

추신) 돈은 받았고요. 헤어진 다음날 전화가 오긴 했어요. “그날 정신이 없어서 말을 거의 못했다. 카톡 변명할 여지 없고 미안하다. 만나면서 좋았던 것도 많았고 고마웠다. 이 얘긴 하고 싶었다. 네 말대로 내가 어떻게 살진 모르겠지만 잘 못 살면 기뻐해 달라.” 이중인격자인가요?

 

사라지고 싶은 여자

A. 일단 한 가지 묻겠습니다. 쓰레기가, 이중인격을 소유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어째서 궁금한가요?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입니다. 그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 것이지 이 쓰레기가 어떤 성분으로 되어 있는지 애써 고민하고 분석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아주 간단하죠? 자, 그런데 왜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저급하다‘, ‘더럽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도, 이 저급하고 더러운 쓰레기 같은 남자를 자꾸만 생각하는 걸까요? 깔끔하게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말이죠.

해답 역시 간단합니다. 그를 쓰레기로 여겨야 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사람을 쓰레기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에요. 진심으로 쓰레기라고 생각될 때도 가끔은 있겠지만, 이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원하고 갈구하는 마음이 그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고 말았겠죠. 그러니 그를 당신의 인생에서 혹은 기억에서 몰아내려고 애쓰기보다, 당신 스스로 사라지는 편을 원하게 될 수밖에요.

왜 이렇게까지 당신은 쓰레기를 쓰레기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까요? 역시 문제는 자존감으로 귀결됩니다. 당신은 시간을 쪼개서 나를 만나주고, 먼 길인데 새벽에도 달려와 주고, 처음으로 여자 친구로서 소개하기까지 하고. 이런 것들에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는 얄팍한 자존감의 소유자였으니까요. (사실 이런 행동들은 사귀고 사랑하는 사이에서 그렇게 특별한 행동이 아닙니다. 백수가 아닌 한 누구나 자기 시간을 쪼개서 상대방을 만나는 거고요, 저도 먼 길이지만 좋아한다면 기꺼이 새벽에 달려갈 것이고요, 친구들의 말은.... 글쎄요 신뢰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네요.)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나도 괜찮아’라고 물러설 정도의 자존감이 당신 것이었으니까요. 그의 비열한 카톡 내용을 확인하고도, 그가 성매매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아직 그를 못 잊는 정도의 자존감이 당신을 지금의 고통으로 이끈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추가됩니다. 그는 당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남자였던 것이죠. 체력이나 테크닉이 좋은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며 일종의 해방감을 갖고 싶었던 욕망을 해소하게 해주는 남자, 그런 남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한 가지 더 발견되는데요, 그건 바로 나쁜 남자를 만나서 힘든 연애를 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이런 성향의 여자는, 착하고 나만 바라보는 남자에겐 매력을 잘 못 느껴요. 쉽고 평범하게 흘러가는 연애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갈증을 일으키는 누군가에게 더 끌리거든요. 의아하실 수도 있어요. 난 좋은 남자인 줄 알고 사귄 건데, 내가 사실은 나쁜 남자를 만나길 원했다고? 이렇게요. 누구나 자기는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건, 당신처럼 상대가 확실히 나쁜 남자라는 게 명확히 밝혀졌는데도 그 남자를 버리지 못하는 순간 밝혀지는 거죠. 이제 아시겠어요? 당신은 좋은 남자인 것 같아서 그를 고른 게 아닙니다. 나쁜 남자에게서 보이는 어떤 요소를 본능적으로 감지했고, 그래서 끌린 겁니다. 그러니까, 로또와 비트코인에 매달려 당신에게 거금을 빌려 가는 이상한 남자인데도 1년이나 사귀었겠죠.

자존감의 문제, 어쩌면 단순할지 모릅니다. 인생이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의 자존감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기에, 어떻게든 자존감을 높이고자 마음먹는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고 성과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최악의 경우 이런 남자를 만나 더 당하고 깨지다 보면 뭐 언젠가는 그렇게라도 생각이 들겠죠. ‘나는 이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어‘, ‘너는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할 권리가 없어’하는 것들이요.

하지만 당신의 욕망에 관해서 만큼은, 저는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당신의 욕망은 당신의 전 인생에 걸친 히스토리와도, 당신의 자존감과도,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와도, 또한 당신이 지금껏 만났던 남자들과도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욕망이란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당신의 욕망에 대해서만큼은 감히 조언하거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뭐든 당신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 욕망이 만들어진 것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그 욕망에 대처하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에 휩싸여 그 욕망이 내 인생을 쥐고 흔들도록 허락할 것인지, 내 욕망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그 뜨거운 마음을 조절할 줄 아는 주인이 될 것인지 당신의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가 조언을 해주고, 귀에 따가운 말도 건넬지 모르겠지만, 결국 당신의 길을 선택하는 건 당신이란 거죠.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자신도 오답이라 생각되는 무엇을 자꾸 반복해 찍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닐까요? 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욕망에 휘둘리시겠습니까, 욕망의 주인으로 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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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